"할머니, 또 올게요."
올해 2월, 설날 때였다. 설을 맞아 엄마, 남편과 함께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할머니는 부쩍 약해져 있으셨지만, 그래도 우릴 보고 반겨주셔서 좋았다. 할머니를 위해 새우도 구워서 함께 먹고, 떡국도 먹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다시 집으로 가기 전, 냉장고에서 이것 저것 챙겨주고 싶어하셨다. 약해진 할머니를 그냥 두고 가기가 마음이 편하지 않아, 할머니께 또 오겠다며 인사했다. 할머니의 인자한 얼굴, 미소띈 모습이 자꾸만 눈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정신없이 살았다. 새로 옮긴 일터는 내게 많이 힘겨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일도 낯설어 쉴 겨를이 없었다. 방학 때에는 이사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추석 때에는 가족들이 우리 집에서 모였다. 그래서 할머니께 들리지 못했다. 할머니 생신 때에도 직장이 바쁘다는 핑계로 내려가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대. 요양병원에 계셔. 엄마가 갔다 올게."
엄마는 요양병원에 다녀오신 뒤, 나도 병문완을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일 갈까? 2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데 내 체력이 버틸수 있을까? 좀 더 일이 마무리 되고 난 뒤, 다음 주에 가는 건 어떨까?'
여러 계산 끝에 다음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엄마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메시지였다.
툭 하고 마음이 무너졌다. '더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일상이 뭐가 그리 바쁘다고.......'
바로 고향으로 향하지 못하고, 직장에 들려 다음 주에 해 놓을 일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향했다. 이 바쁜 와중에도 일에 집착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일이 무엇이기에 나는 이렇게 일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일까?
장례식장에는 친척들이 와 있었다. 고모는 슬픔을 못 이기고 계속 우셨다. 장례 절차는 계속 진행되었고, 나는 사촌들과 정신없이 손님 음식 서빙을 했다. 서빙을 하느라, 할머니의 죽음을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셋째날이 되었고, 발인 예배를 할 때였다.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들려 할머니를 묻을 장소로 이동하는데 그제서야 눈물이 자꾸 나왔다. 할머니 댁 문 앞에 할머니가 마중나와서 인사하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할머니, 미안해요. 또 온다고 했었는데....... 할머니 아프실 때, 찾아뵙지도 못하고. 죄송해요.'
자꾸만 죄송한 마음에 마음이 더 아팠다. 작은 고모는 '엄마, 미안해.'하며 통곡을 하셨다.
누군가 떠나고 나면, 미안한 일들이 자꾸만 마음 속에서 고동친다. 더 잘해드리지 못해 속상하고, 더 도리를 다 못한 것 같아 죄스런 마음이다. 나 또한 한 인간으로 살지만, 뭐가 바쁘다고 사람 도리를 못 하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이 험하고 거친 세상을 살아내느라 애쓰신 할머니, 그 와중에도 자식들, 손주들 하나라도 더 챙겨주시고자 하시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할머니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리고, 기도해 드리면 좋았을 텐데. 할머니, 하고 한번 더 불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저리다. 부족한 죄인이, 할머니의 평안과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