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멈추기 연습
“아, 어떻게하지?”
걱정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하지만, 내 해석은 엉망진창이다.
5월 말 즈음, 2개의 원고 마감일이 임박했다. 12시 이전에 잠자는 것이 철칙이었으나, 원고와 논문을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원칙보다 앞섰다. 새벽 한시 반, 새벽 두시 반, 세시… 마감일이 가까울수록 취침시간이 늦어졌다. 덕분에 월간지 원고도, 소논문도 벼락치기로 마감기한을 맞춰 제출했다. 그러나, 내 몸에서는 이상신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소화였다.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 들어가지도 않았고, 가끔씩 살짝 헛구역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먹고나면 속이 쓰렸다. 헛트림이 계속 되었다. 소화가 안 될수록 먹는 양이 줄었고, 살이 쭉쭉 빠졌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병원에 갔다.
“기침을 한다고 폐암은 아니잖아요?”
원장님은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켜 주시며 소화에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해 주셨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그날 저녁밥은 술술 들어갔다. 역시 마음의 문제였던가?
그러나, 그 다음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밀라아제는 129, 리파아제는 123이네요.
지난번 검사때는 괜찮았는데, 빈혈 기준이 12인데 11.9에요. 단백질 수치도 낮구요. 전체적으로 영양 결핍 상태네요. 병원 방문하셔서 약 처방 받으세요. 건강검진도 한번 더 하시면 좋겠네요.“
전화를 받은 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불안감이 몰려왔다. 수치가 늘 기준치를 웃돌았지만, 이번에 수치는 지금까지의 수치 중 가장 높았다.
올해 건강하려고,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쓴 학습연구년이었지만, 내가 마음 관리를 못한 탓일까?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쎘던 것일까? 내가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였을까? 논문을 쓰겠다고 바득바득 나를 들볶아서였을까? 슬픔이 몰려왔다.
아프면 늘 나의 과거를 탓한다.
‘박사 과정때 너무 무리했어.“
“시험관 시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은 깊은 늪에 빠진다. 무언가를 얻고자 한 노력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유튜브에서 한 목사님 설교를 튼다. ‘어차피 인생은 종말이 있다. 걱정하며 인생을 살지 마라. 아기가 엄마 품에 있으면 평온하듯 하나님 품에 안겨라.’ 이런 골자의 메시지였다.
‘내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구나.’
나의 유한성을 마주한다. 인간 본연의 불안이 날 휩쓴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임을 직면한다.
사실 검사 수치가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음에도, 내 생각은 극단에 극단을 달린다. 불안은 불안을 낳고, 걱정은 눈덩어리처럼 부풀어오른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검사 수치가 나온 날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헛트림도 덜 나왔다. 그러나 나는 과거의 고통, 이틀 전 검사 수치에 공포를 느끼며 나의 하루를 망치고 있었다.
나의 하루를 어떤 생각을 하며 살 것인가?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살고자 하는 강한 열망.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이구나.
사는게 두려워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동전의 양면처럼 난 간절히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하게, 평온하게 살고싶은 강렬한 바람이 내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었다.
‘살고 싶은 거였어.’
영원히 살 수 없는 유한성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다. 내 건강도, 내 수명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늦었지만, 최선으로 나를 돌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을 돌본다고, 논문을 쓴다고, 책임을 다한다고, 또 무언가를 이루고자 압박하던 마음의 소리를 멈춘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괜찮아.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돼.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돼.
실망시킬 수도 있지, 모든 일에 완벽할 수는 없어.
그냥, 네가 평온하면 좋겠어. 몸도, 마음도.
좀 쉬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