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타고난 환경의 불우함을 노력으로 개척해나가고 싶었다. 뭐든지 남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었다. 정말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인생을 뒤돌아보니 내 열심에는 전략이 빠져 있었다.
인생 계획을 세울 때,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했어야 했는데 열정만 앞섰다. 아니, 직장에서의 생존과 열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작한 사회생활은 녹록치 않았고, 그 때부터 심장의 답답함과 두통을 안고 살았다. 내 성격과 맞지 않는 일을 하기 위해 난 온 힘을 짜내듯 일했다. 늘 내가 부족하다고 닦달했다.
교사로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박사과정까지 졸업하며 나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밤잠을 줄이며 치열하게 임했던 공부는 조용히 나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게다가 가임기를 놓치는 바람에 시험관 시술을 여러 차례하면서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복통으로 인해 응급실을 자주 방문했다.
왜 나의 노력은 이렇게 통증이 되어 찾아왔는가? 내가 그 동안 나를 너무 채찍질하여 내가 지쳐버린 것인가? 몸이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내가 노력해서 이룬 건 학위와 단독저자 책 한권, 그리고 6만 가량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이다. 그러나 몸에 통증을 느낄때마다 허탈함이 강하게 밀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계발’ 책을 읽다보면 때로는 책의 내용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하라는 거야?’
난 얼마나 더 노력해야 나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걸까?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해야 사회가 원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무한한 욕망과 높은 기준을 쫓으며, 몸과 마음은 더욱 지쳐간다.
요즘은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뛰어나지 않더라도, 탁월하지 않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안아준다. ‘아프지 말자, 건강하자.’ 좌절된 마음을 안아준다.
반신욕기에 들어가 배를 따뜻하게 해 준다. 그러면서 글을 끄적인다. 내 속에 울분과 분노가 씨실과 날실처럼 얼기설기 엉키다가도, 글을 쓰다보면 좀 더 명징해진다. 내 마음에 어둠을 직면한다. 그래도 괜찮아. 춥고 추운 마음에, 온기를 전하고자 반신욕기의 온도를 높인다.
<생각 질문>
1. 애쓴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나요?
2. 그럴 때, 애쓴 자신을 어떻게 다독여 주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