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란다.
우리는 남들에게 이기거나 지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내 몫만큼 즐겁게 살려고 온 것이지.
한상복 『재미』中
개학을 앞두고, 괜스레 우울해졌다. 그것도 그럴것이 2주 동안 눈병으로 거의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을 보냈었다. 해야할 일들이 쌓여있었는데, 방학을 그렇게 보내버려 너무 씁쓸했다.
눈이 조금 나아질 때쯤, 유튜브에서 '탱로그'라는 채널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신데 음악교육을 전공하러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영상을 너무 재미있게 제작해서, 어떤 분인지 궁금해 검색해 보니, 출신대학교가 나와 같았다! 이럴수가! 같은 음악교육과였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웠고, 그분의 멋진 행보와 개성이 참 멋져보였다. 성격도 낙천적이고 에너지가 넘친 것 같아서 부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 자신은 어떤가를 보게 된다. 해서는 안 되는 비교의 덫에 빠진다.
'너도 유학가고 싶었잖아. 20~30대때 뭐했어?'
'원하는 걸 강하게 밀어붙였어야지,왜 그러지 못했어?'
이러한 자기비난은 깊은 우울을 불러온다. 왠지 내 인생은 성공하지 못한 것 같고, 열심히 살지 못한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돌아보면, 얼마나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나는 왜 이렇게 쉽게도 나의 애씀과 노력을 평가절하해 버리는 걸까?
직장에 출근했을 때에도, 직장 동료들의 대화 주제는 '자녀 교육'이다. 자녀가 아직 없는 난, 그 대화에 속에서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낀다. 그러면, 자녀가 없는 내 인생은 왠지 잘못된 것만 같은 나 혼자만의 착각에 빠진다.
이 결핍과 반복되는 좌절의 굴레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아직도 낫지 않은 눈으로 안과에 다녀오며 운전 중 들으려고 유튜브를 검색했다. 유튜브의 한 영상에서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다음과 같았다.
1. 좋아하는 일 써 보기
2. 좋아하는 일 중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 하기
참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생각하니 마음 속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자꾸만 '좌절'과 '분노'를 반복하던 마음인데, '좋아하는 일'을 생각하는 것 자체로도 그 행위가 주는 힘이 있었다. 그래, 비록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할 수 없더라도, 소소하게 사부작 사부작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지. 무엇을 먼저 해 볼까?
신기하게도, 같은 날 비슷한 결의 문장을 발견했다. 한상복 작가의 '재미'에 나오는 문장이었다.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란다.
우리는 남들에게 이기거나 지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내 몫만큼 즐겁게 살려고 온 것이지."
내 몫. 내 몫이 많든 적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내 '몫'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몫'은 내 노력일 때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거저 주어진 것이다.
내가 태어난 것도 나의 노력이 아니었고, 부모님의 사랑도 공짜가 아니었다. 소중한 가정을 이루게 된 것도 귀한 인생의 선물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면, 결핍된 것도 많고,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그럼에도 내 인생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내 몫만큼 '즐겁게'. 그래, 조금씩 더 즐겁게 사는 법을 연습해야겠다.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작은 즐거운 일을 내게 선물해줘야겠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유학도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유학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힘겹고 버티기 힘들 때도 있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살만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타인과 경쟁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속상해 하지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안 정말 애쓰며 살아온 나에게 '인정'을, 그리고 '감사'를 표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소소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은 뭘 해 볼까?'
푸르빌의 절벽 산책로, 클로드 모네(18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