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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Mar 03. 2016

Tee와 Flag 사이

골프, 내가 만났던 공간과 나의 인격

내가 서있다. 그리고 공간은 늘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내가 공간에게 말을 걸지 않듯이 공간도 조용히 내 곁에 있다. 말소리는 없지만 무언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 소통한다. 내가 공간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공간이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대부분은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던 공간이, 그 공간 속에 들어온 나를 변화시킨다고 할 수 있다.




The Ritz Carlton Half Moon Bay (2014년 미국에서)


골프장. 나에게 있어 매우 인상적인 공간이다. 중학교 때부터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 처음으로 필드를 나간 날이, 나와 골프장이라는 공간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나의 인격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를 의미하는 인격이라는 단어. 골프장은, 많은 부분에서의 됨됨이 중 나 자신과 내가 설정한 목표와의 관계, 그리고 목표를 도달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의 나의 태도나 마음가짐에 어느 정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대입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왔고, 24살인 지금은 내가 직업으로 삼으며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공간 못지않게,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한 '목표'라는 개념에 있어 나 자신의 됨됨이가 변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골프장을 처음 들어서는 순간 푸르른 잔디가 보이고 풀 냄새가 코를 시원하게 해준다. 눈 앞에 펼쳐진, 땅에서 솟아나 있는 초록색 생명들을 보고 또 맡고 있으면 편안함을 느낌과 동시에 몸과 정신이 생기를 되찾게 된다. 그러한 기분을 느끼는 중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저 멀리 그린 위에 꽂혀있는 깃발. 즉 내가 도달해야 하는 목표다. 그리고 코스를 따라 나있는 나무들은 때로는 방해꾼의 역할도 하지만, 내가 가야 하는 길의 방향을 보여주는 안내자 역할도 해준다.


골프장 안에서는 내 목표가 어디인지 계속해서 인식하며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몸의 각도, 바람의 세기, 스윙의 강도와 속도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계산하고 조절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떻게 보면 추상적일 수 있는 목표를 좇지만, 골프를 할 때는 내 눈 앞에 보이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나의 조그만 행동 하나하나에 온 집중을 다하게 된다.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의 정도도 더 커진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환경에 탓하기보다 그 환경 속에서 내가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고 그 방법을 실행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즉 환경과 내가 이상적인 조화를 이뤘을 때 성공하는 것이고 그 조화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깃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던 중 연못도 만나게 된다. 이때쯤 나는 공을 치면서 저지른 여러 실수들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는 상황이다. 연못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속에는 수많은 공들이 빠져있다. 잘못 보면 개구리가 낳은 알같이 보일 정도로 그 수가 많다. 나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도 이전에 실수를 해서 공을 물에 빠뜨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속에서 나는 알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마음의 위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공을 치기 시작한다.


코스가 짧을 때는 내가 공을 칠 수 있는 횟수, 즉 기회가 적다고 생각해 긴장하게 되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반면 코스가 길 때는 긴장도 하지만, 그에 비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실수에 대해 관대해지곤 한다. 하지만 긴 코스에 있어서도 시작과 함께 최선의 집중과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비교적 많다고 하더라도 만회하기가 어렵고 결국엔 결과가 좋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실력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가졌던 여러 목표들을 향해 달려오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에 좌절한 채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수도 있었으며 나태한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순간순간을 헛되이 낭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골프장이라는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의도치 않게 얻은 경험을 통해서 환경과 어우러져 사는,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는, 그리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할 수 있었다.




골프의 시작점인 Tee와 최종 목표인 Flag 사이,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이 내 모습의 일부를 만들어냈다. 공간은 조용히 나를 에워싸며 침묵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골프장 또한 내가 땀 흘리며 잔디밭을 걷고 공을 치고 공을 줍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말을 조용히, 어찌 보면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변화했고 나는 그러한 변화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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