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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Nov 06. 2018

[뉴욕] 0. 타이포그래피 인 뉴욕

2018년 가을 뉴욕 여행기

서체는 다분히 인공적인 기호 체계이며, 이것은 그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그곳이 무수한 인공물로 이루어진 대도시라면, 도심 속의 타이포그래피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환경과 문화를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훌륭한 소재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인공적인 도시와 언어, 그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주는 생생한 뉴욕 속의 타이포그래피를 관찰함으로써 독자들은 뉴욕의 겉모습만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와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교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뉴욕 여행을 떠나기 전, 뉴욕과 관련된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 중 두 권은 뉴욕 속 '서체'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주위 대부분의 것들은 이름을 갖기 마련이고, 그 이름은 서체를 통해 표현되어 사람들에게 인지된다. 그리고 그 서체는 '그것'들의 성격을 담아내곤 한다. 이러한 점에서, 두 권의 책을 통해 뉴욕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인 서체를 미리 구경한 후 뉴욕으로 떠났다.



사용자 중심적 타이포그래퍼로 유명한 아드리안 프루티거에게 있어 좋은 타이포그래피란, 인식되기보다 '느껴지는' 타이포였다. 잘 읽혀져서 잘 느껴지는 타이포. 이러한 디자인적 관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산세리프 글꼴이 '헬베티카(Helvetica)'이다. 스위스 태생의 이 서체는 맥도날드, 삼성, 노스페이스 등의 브랜드 뿐만 아니라 CNN과 같은 미디어, 미국 정부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프루티거가 "헬베티카는 청바지이고, 유니버스는 디너재킷"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서체다. 그리고 뉴욕 지하철의 메인 서체가 바로 헬베티카이다.


뉴욕 지하철은 1904년에 처음 개통되었는데, 이탈리아 디자이너 마시모 비넬리가 뉴욕 지하철 사인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헬베티카가 사용되었다. 간결하고 반듯한 헬베티카 서체는,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과 꽤 잘 어울렸다. 어느 나라 사람의 눈에도 편안하게 읽힌다는 점도 그렇고, 꾸준히 전세계의 관심을 받는 뉴욕의 당당한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또박또박 말하는 빈틈 없는 도시 사람 느낌.



헬베티카 사인과 더불어, 뉴욕 지하철에 남아있는 옛 타일형 사인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타일을 구성하는 색감도 역마다 다르다. 여행하면서 자주 들른 역들은, 타일형 사인의 색감으로 내 머릿 속에 인지되곤 했다. 이렇게 디자인은 말 없이 조용히, 하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뉴욕 지하철에서 올라와 길거리를 거닐며 발견한 서체들은 다양성 그 자체. '날 좀 봐줘요!'라고 소리치는 듯한 서체가 있는가 하면, '관심 있으면 보시던가' 식의 시크한 느낌의 서체도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좀 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서체들을 주목해본 것은 꽤 흥미로웠다. 주목하기 어려울 정도의 섬세한 다름이 모여 차별화된 서체를 만들고, 그러한 다양한 서체들이 뉴욕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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