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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윤 Nov 03. 2021

카페 소스페소

모두를 위한 커피 COFFEE FOR ALL

얼마전 임경선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통해, 합정동 커피발전소가 오는 11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들이 탄생한 곳이어서 '꼭 가봐야지' 했던 곳이라 괜히 서운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보다 더 내 마음을 찌릿하게 한 건 '카페 소스페소'라는 단어와 이 단어에 대한 설명이었다. 작가님의 정의를 빌리자면, 카페 소스페소란 이탈리아어로 '맡겨둔 커피'라는 뜻으로 나폴리 사람들이 커피를 사마시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한잔을 미리 계산하고 나가는 풍습이라고 한다. 내가 애정하는 이탈리아, 역시 너무 멋진 풍습을 갖고 있는 나라다! 라는 생각과 함께 작가님의 작은 커피나눔 소식 덕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원래 카페 소스페소 풍습에선 커피를 나누는 사람이 누구인지, 커피를 나눔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서로 모른다는게 설렘 포인트인데, 지난 8년간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시간을 보낸 단골공간과의 이별을 기념하는 한 작가의 공개적인 카페 소스페소 또한 너무 낭만적이다.





임경선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포스트를 본 이후에도 카페 소스페소가 내게 준 감동, 여운 같은 것들이 잔잔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카페 소스페소 : 모두를 위한 커피'라는 다큐멘터리를 발견했다. 리프레시 휴가 6일차에 집에서 빈둥거리던 참이었기에 고민할 틈도 없이 바로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모니터 속에서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탈리아 풍경, 스페인어를 눈꼽만큼 배운 덕에 친숙하게 들리는 여러 단어들, 그리고 커피에 대한 다큐멘터리인만큼 바로 내 코 앞에서 커피 향이 나는 듯한 카페 장면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카페 소스페소라는 주제 아래에서 커피를 나누는 사람들과 나눔받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조명한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음료를 마신다는 것을 넘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인간관계적 활동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문화로까지 연결된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카페 소스페소를 통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받아 벤치에 앉아 마시는 노숙자와, 노숙자 옆에서 편하게 말을 건네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커피 한 잔 앞에서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눈을 마주치고 웃을 수 있었다. 커피를 통해 사람들이 연결되고 그 속에서 위로와 여유를 느끼는구나 싶었다.


이탈리아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커피, 이탈리아 속 커피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카페 없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는 나라지만, 이탈리아처럼 커피가 사람들 사이 연대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커피 본연의 맛에 진심인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구정물 맛 난다고 표현한다는 말에 놀란 적이 있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기던 사람들이 에스프레소 샷을 물에 탄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그런 기분이 들 것 같기도 하고. 카페 소스페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2016년 겨울 가족들과 이탈리아에 갔을 때 들렀던 로마 3대 커피숍 '타짜도르(TAZZA D'ORO)'에서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를 처음 맛본 기억이 났다.


로마 판테온을 등지고 걸어가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타짜도르를 만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계산을 한 뒤 스탠딩 바에서 내가 원하는 바리스타에게 주문서를 건네면 그 자리에서 커피를 바로 만들어준다. 에스프레소는 1유로도 안될 정도로 저렴했고, 아마 내가 살면서 처음 에스프레소를 마셔본게 이 때가 아닌가 싶다. (인생 첫 에스프레소가 타짜도르라니 럭키! 그 당시에는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억지로 마셨었더라도...) 바리스타에게 주문서를 건네는 경험, 내 눈 앞에서 바리스타가 접시와 스푼을 세팅해서 커피를 담아주는 경험 등 '이게 이탈리아 카페 문화구나' 싶었던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준 공간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지인분들께 선물할 홀빈 원두를 사셨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요즘 서울에 스탠딩 바로 구성된 에스프레소 전문점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것 같던데 기회가 되면 꼭 가봐야겠다.



지금은 집 앞 이디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간단하게 씻고 츄리닝 차림으로 노트북을 들고 와 짧은 글을 쓰기에도 내 옆에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글을 쓰며 타짜도르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때 그 공간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 하다. 전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작은 카페 안에서 바리스타들은 바쁘게 커피를 내리고 있고, 사람들은 각자 서서 한 손에는 접시와 스푼을 다른 한 손에는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로마 대표 커피의 맛을 음미하던 모습. 카페 소스페소가 작은 공을 쏘아올려 타짜도르 추억까지 떠올려봤다. 타짜도르에서 경험한 '나만을 위한 커피' 그리고 카페 소스페소가 의미하는 '모두를 위한 커피'. 결국 커피를 통해 나는 내 방식대로 여유를 느끼면서 단단해지고, 이렇게 각자 단단해진 우리가 커피를 통해 연결되는 선순환. 평생 이 선순환 속에서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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