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탄생> 을 읽고
지능(intelligence)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지능은 단순히 IQ 검사에서 얻을 수 있는 수치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뿐만 아니라 소위 “지능이 있다”고 여겨지는 다른 생명체에게도 공히 적용될 수 있는 지능이란 무엇일까?
30년 이상 신경과학을 연구한 신경과학자 이대열의 <지능의 탄생>은 지능의 기원에 대해서 진화론과 뇌신경과학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인간 외의 존재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하여 사유하는 독특한 존재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어 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능 또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여겨지는 고도로 발달된 지적 능력도 유전자의 존속과 복제를 돕는 유용한 도구일 뿐이다.
“지능이란 진화 과정에서 획득하는 능력 중 하나로, 자기를 보존, 복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지구상에 우연하게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존재가 탄생한 이래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킬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명체들이 진화해왔다.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생물이 출현하였고, 세포가 분화와 분업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게 되었으며,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행동을 제어하고 선택하여 유전자의 번식을 돕는 큰 뇌가 탄생하기까지 이르렀다. 뇌는 어디까지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의 복제를 돕는 '대리인'에 불과하다. 유전자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고도로 특화된 뇌의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지능인 것이다.
환경에서 특정한 감각 정보가 입력되면 신속하게 유발되는 고정적인 행동을 '반사(flex)'라고 한다. 반사는 유전자에 저장되어 있는 행동 레퍼토리 중 하나로, 보통은 종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예컨대 바퀴벌레는 배 쪽에 바람의 변화를 감지하는 촉수가 있는데, 공기 흐름에서 미세한 변화를 탐지하면 재빠르게 도망간다. 이러한 반사적 행동은 잠재적인 포식자의 공격을 피할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개체의 생존에 유리하다. 하지만 포식자가 아닌 대상의 움직임에 의해서도 무조건적으로 도주 반응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사가 때로는 쓸데없는 에너지 손실을 야기하기도 한다. 생명체가 반사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행동하게 된다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개체의 존속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 레퍼토리를 전부 미리 예측해서 보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도 유전자가 미처 다 예상할 수 없는 환경 변화에 개체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고안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학습(learning)'이다. 학습을 통해서 반사적 반응 이상의 다양한 행동을 생성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체는 보다 효율적으로 환경과 상호작용 하면서 유전자의 존속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다.
지능이란 생명체가 습득한 다양한 학습 기제를 당면한 환경 속에서 생존과 유전에 적합하도록 조합하여 사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적 조건화, 도구적 조건화, 잠재학습, 관찰학습(모방) 등 여러 학습기제가 우리 인간의 행동 범위를 넓히고 더욱 유연하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인간은 다른 종과 다르게 언어를 사용하여 다른 개체와 소통을 하며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지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 지능 가설’ 또는 ‘마키아벨리적 지능 가설’에 따르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사결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큰 뇌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홀로 자급자족하기 보다는 무리를 지어서 살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타성과 협동성이라는 속성이 자연선택되었을 것이다.
사회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때 타인의 의도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마음이론(theory of mind)’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뿐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지를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아는 것 또한 적절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필요하다. 이때 필연적으로 ‘자기(self)’에 대한 인식이 요구된다.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며 개체의 생존에 유리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저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자기’에 대한 인식이 부수적으로 산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가 개발되어 연구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 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확장되어 왔다. 뇌에 대해서 아직 알려진 것보다 알아야 될 것들이 더욱 많지만, 뇌 영상 연구, 동물 실험 연구, 뇌 손상 환자 연구 등을 통해서 지금까지 인간의 정신적 활동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밝혀졌다. 그중 흥미로운 것은 사회적 사고를 담당하는 뇌 영역들이 ‘디폴트 네트워크(default network)’와 관련성이 높다는 것이다.
뇌의 여러 부위 중에는 특정 과제를 수행할 때보다 피험자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해마와 내측 전전두피질이나 후측 대상 피질 같은 곳)이 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대개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것들을 생각한다. 오늘 아침에 마주쳤던 사람을 떠올린다거나 몇 시간 뒤에 있을 사람과의 약속과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 혹은 과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던 경험을 반추하거나 앞으로 닥칠 인터뷰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면서 걱정하기도 한다.
인간이 특정한 과업에 몰두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상황과 관련된 생각을 끊임없이 한다는 사실은 집단에 소속되고 성공적인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우리 유전자의 존속과 번영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타인의 존재와 뗄 수 없는 관계인지 반증하는 결과로 보인다.
다양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뇌가 발전해온 만큼 그에 따른 한계와 부작용들도 많이 나타났다. 인간의 지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 선택한 행동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앞으로 하게 될 행동 중 무엇이 최선의 선택일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후회, 걱정, 시기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발생한다.
그러한 감정들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로 기능하고 앞으로 특정 행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뇌손상으로 인해 이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 사건을 시뮬레이션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현재 적절한 선택을 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부정적 사고와 감정이 지속될 때 우울장애이나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장애를 겪을 수 있으며 심지어 유전자의 소멸을 가져오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뇌의 기능이 정교화 되는 만큼 역설적으로 뇌가 오작동하여 유전자의 존속에 해를 끼치게 될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난 셈이다.
저자는 다른 흥미로운 부작용(관점에 따라서는 부작용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으로 사람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는 대상을 사람처럼 취급하는 ‘의인화’도 언급하고 있다. 원시시대에 천재지변을 신의 형벌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현상을 인간 나름대로 이해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며, 이러한 믿음이 어떤 면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종교에 관해서는 저자가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현상에 의도를 부여하는 것은 종교적 사고와도 관련된다.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 더이상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인 생각이 아닐지라도, 어떤 대상이 저절로 만들어지기 보다는 누군가가 만들듯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우리를 창조한 누군가가 배후에 존재할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믿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지능을 이야기할 때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인공지능은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 대개 이러한 영화의 요지는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가진 로보트가 나타나 인간을 대신하여(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지구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능이 왜 탄생하게 되었고, 지능이 주체인 유전자를 위해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생각들은 ‘아직까지’ 현실성이 부족하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능가하는 바둑실력을 선보이고, 인공지능이 조정하는 탐사선이 지구 밖에서 다른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탐험할 수 있을지라도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인간이 지정해준 문제를 해결하는 대리인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공지능이 지능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자기존재의 '증식'을 위해 지능을 사용하게 될 때 진정한 의미의 생명체가 될 수 있으며, 공상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도 고려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지능에 대한 이해와 이를 활용하는 수준을 고려했을 때 아직까지는 요원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최근에 출간한 뇌과학과 관련된 국내 저서 중 매우 추천할 만한 책이다. 지능이란 무엇이고 왜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30년 이상 뇌과학을 연구해온 저명한 학자가 논리정연하고 명쾌하게 기술해 놓았다.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신경과학, 유전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배경지식이 요구되기는 하나, 논지 파악을 위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기초적인 개념에 대해서 저자가 비교적 친절하게 기술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야에 문외한인 독자들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이 있더라도 집착하기 보다는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특히 인간이 나타내는 고차적인 사고능력(윤리적 사고, 메타인지) 및 다양한 부정적 감정의 기원을 이해하고 싶은 심리학도들이 있다면 밑줄 그어가면서 꼼꼼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책에 기술된 사소한 오류를 언급하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ebook이어서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으나) 저자가 출처기억의 문제로 인해 꿈과 현실을 착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언급하면서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이처럼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경계선의 ‘경계’라는 용어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된 개념으로 이해가 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그러한 개념이 이 장애의 핵심을 이룬다고 보지 않는다. 경계선 성격장애를 진단하는 9가지 진단기준 중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편집증적인 사고를 보이거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해리되어 기억을 하지 못하는 기준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도 꼭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있다고 말할 수 없다. 경계선 성격장애로 진단된 환자들 중 일부가 꿈과 현실을 혼동하는 일을 겪을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현상이 이 장애의 지닌 사람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오인될 수 있게 기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현실과 망상적 사고 및 지각의 경계 구분에 어려움을 가장 빈번하게 나타내는 장애군은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이다.
아울러 같은 페이지에 “지나친 심적 시뮬레이션 중에서도 특히 부정적인 사건과 관련된 상상을 지나치게 하는 경우를 ‘반추’라고 하는데”라고 되어 있는 부분도 사소하지만 짚고 넘어간다. 맥락 상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상상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반추(rumination)’라기 보다는 ‘걱정(worry)’이라고 기술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회고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반추’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걱정’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