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를 읽고
요즘 서점에 가면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자존감이라는 정확한 용어는 쓰지 않더라도 사실 자존감을 논하는 책이 상당히 많다. 자존감 서적은 대부분 자존감을 개인적인 문제로 다룬다. 물론 낮은 자존감 형성에 영향을 미친(혹은 미치고 있는) 성장배경과 주변환경을 살펴보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존감 문제를 야기하는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주로 초점을 두고, 이를 개선하여 자존감 '향상'을 돕는 이런저런 워크북을 제공한다.
사실 많은 개인 심리상담과 치료에서도 비슷한 접근을 취한다. 상담 및 치료 장면에 찾아온 내담자에게 심리치료자가 줄 수 있는 도움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내담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주로 다룬다. 즉, 그 개인이 처해 있는, 변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주로 내담자에게 고통을 주는) 타인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내담자가' 환경과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이나 ‘대처하는 방식’에 변화를 유도하여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더 나아가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사회적 구조와 같은 거시적인 차원의 환경을 의미하기보다는 주로 가족, 학교, 직장과 같이 개인이 체감할 수 있는 미시적 수준의 환경을 의미한다. 우리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개인치료를 넘어 지역사회와 연대하여 심리적 고통을 야기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미미하게나마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비용, 인력부족, 필요성에 대한 인식 결여 등으로 실천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넓게 보면 심리치료(혹은 정신의학)가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도 하며,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 할 수 있지만 본 글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다만 자존감에 대한 대부분의 담론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다보니 서두가 길어졌다.
고려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을 전공한 김태형 소장의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자존감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논의한다는 점에서 여타 자존감 서적과 구별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은 저자의 현 한국 상황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과 고민을 바탕으로, 한국에 왜 자존감 열풍이 불고 있고, 한국인의 자존감이 낮은 이유(근거는 부족해 보인다)가 무엇인지 하나의 입장을 밝힌 글이다.
현재 온라인 서점들에서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만 확인해도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독자들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주는 면이 있는 매력적인 저서로 보인다. 이 책은 ‘지금 네가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단지 네 잘못 때문이 아니야. 한국 사회의 병리적인 구조가 문제니까 이 사회가 바뀌어야 해’라며 돌직구를 날린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다소 공허하고 일반화된 논의가 아니라 한국식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청년실업문제 등 한국 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어 세대에 걸친 문제를 양산하고, 가정, 학교, 지역사회, 미디어 환경 내에서 ‘가짜 자존감’을 부추기고 ‘진짜 자존감’ 저하에 영향을 주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일부 자존감 관련 저서는 남과의 비교가 자존감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도록 노력하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사회적 비교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성적 측면이며, 비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준을 가지고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존감을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가치에 대한 평가’에서 ‘가치’는 저자의 기준에 따르면 ‘사회적 쓸모’라고 한다. 한국 사회에서 숭배되는 돈, 학벌, 외모 등의 ‘잘못된’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쓸모’를 자존감 평가의 올바른 기준으로 삼아 ‘진짜 자존감’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나는 왜 학벌이 안 좋지?’, ‘나는 왜 돈이 없지?’ 하며 자책하고 있던 사람이 있다면 학벌, 돈을 기준으로 좌우되는 자존감이 ‘가짜 자존감’에 불과하다는 말에 큰 위안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잘못된 기준으로 스스로를 가혹하게 비난 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쓸모’를 기준으로 ‘진짜 자존감’을 추구해야 한다고 의지를 다지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과연 ‘사회적 쓸모’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저서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책의 내용상 사회적 쓸모를 ‘병든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 정도로 추측할 수는 있겠으나 저자가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면 사회적 쓸모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사회적 쓸모를 객관적으로 평가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평가 결과를 정말 수긍할 수 있을까? 등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특히 사회적 쓸모의 예시로 세종대왕과 같은 위인의 사례를 드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실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사회적 쓸모의 예시를 다양하게 들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도 든다.
정리하면,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쓸모’를 평가 기준으로 삼은 ‘자존감’ 개념은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실천에서 발을 빼는 것 자체도 필연적으로 자기 가치를 낮게 평가하도록 만든다’는 주장에서 논리적으로 귀결되듯, 사회 개혁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거나 잠재적으로 자존감이 저하될 예정인 사람들이 된다. 자존감 유지 및 향상을 위해서라도 사회 개혁을 위한 노력을 꼭 기울여야만 한다.
물론 인간에게 타인과 연대하고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으며, 그러한 노력이 의미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사회적 쓸모가 자존감을 평가하는 기준이 꼭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사회적 쓸모를 위한 노력이 곧 사회 개혁을 위한 노력이어야만 하는가도 사람마다 입장이 다를 것이다.
끝으로, 이 책 전반에서 돈, 학벌을 추구하는 행동 자체를 문제시하는 전반적인 뉘앙스가 다소 아쉽다. ‘맹목적’으로 돈을 더 많이, 학벌을 더 높게 추구하려고 할 때 마음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나, 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자존감 문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돈과 학벌에 대한 건강한 태도(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있지만, 적어도 자존감을 개인 내적 문제로만 여기지 않고 한국 현 상황에서 자존감 문제가 어떤 식으로 발생하고 유지, 악화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사회적 측면에서 자존감 개념을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다 네 문제 때문이다’라는 어투의 책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부분 +
프롤로그 중,
서구 사회와 달리 한국에서는 자본주의화가 급속히 추진되었던 1980년대까지도 민중 공동체가 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한국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세월 동안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며 살아왔으며, 가장 강력한 집단주의 심리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70~80년대의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물결 속에서도 한국인들은, 적어도 기층 단위에서는, 공동체를 지켜왔다. 덕분에 이때까지만 해도 마을 공동체, 직장 공동체, 학교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가능했다.
물론 당시에도 계급적 차별과 무시는 엄연히 존재했으며 공동체의 붕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80년대까지는 적어도 처지가 같은 동료들끼리 서로를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한테 괴롭힘을 당하는 일, 직장에서 동료한테 무시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IMF 경제 위기를 전후해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를 휩쓸면서 민중의 기층 공동체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전면 붕괴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체제가 정착된 이후에 비로소 자존감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것은 이러한 사회적 흐름과도 관계가 있다.
자존감 문제가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나타났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나, 이전에는 “공동체 사회가 유지되어 서로 존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자존감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 ‘자기(self)’와 같은 서구적 개념이 자본주의와 함께 밀려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자존감’ 문제가 화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물론 한국적 자본주의의 질곡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자존감 문제가 더욱 불거져 나왔을 수는 있겠지만 자존감 문제가 우리나라에서 유난한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자존감에 바탕을 두고 있는 ‘독립된 개별자로서의 자기’ 개념은 사실 동양적 시각에서는 낯선 개념이다. 동양에서의 ‘자기’는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누구의 자녀, 누구의 부모, 누구의 제자, 동네 이장, 학교 선생’ 등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개념이었다. 자본주의 물결과 함께 서구의 사상들이 유입되면서 이전에는 인식하지 못하거나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겼던 각각의 욕구, 감정 등을 가진 개별자로서의 ‘자기’ 개념(및 이에 기반을 둔 자존감 등 여러 자기 개념들)이 우리들의 일상에 자리하게 되었다.
공동체 사회 속에서 서로 존중받고 살아서 자존감 문제가 없었다기보다는 자기 개념이라든지 자기를 존중해야 한다든지 하는 개념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점차 사람들의 사상이 서구화되어감에 따라 그전에는 크게 인지하지 못했던 자기 개념이 중요하게 부각되었고, 개인이 희생되기 쉬운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 특성상 자존감 문제가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