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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영 Aug 19. 2018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정신장애라는 낙인 때문에 겪는 이중고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이 주는 고통

정신장애(mental disorder)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증상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고 힘든데 ‘정신장애 환자(정신병자, 미친 사람 등)’라는 낙인 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 주변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아도 정신장애가 있다는(있었다는) 이유로,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건강한 다수(어쩌면 신화일지도 모르는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경험을 한다. 정신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만 하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조차도 도움을 구하기 힘들다. 수치심과 소외감이 고통을 더욱 가중시킨다.



진단의 이중적 성격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장애를 진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증상이나 행동을 장애 혹은 문제라고 명명할 수 있어야 그에 맞는 치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신이 정신장애 환자로 범주화되는 것이 두려워(물론 증상의 심각성에 대한 자각이나 이해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필요한 약물 치료나 심리 상담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또한 정신장애 환자라는 꼬리표에 걸맞게 자신을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로 여기게 되면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대로 증상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


누구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고통을 겪는 사람 누구나(정신건강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조차도)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웠던(고통스러운, 앞으로 겪을 고통스러운) 경험을, 누군가가 ‘정신장애’라는 이름을 붙였을지언정, 도려내고 제거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요즘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나의 경험이나 여러 측면을 돌아보면서 나 자신과 화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나 또한 살면서 정신장애에 준하는 여러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고 그 경험을 잊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조차도 지금의 나를 이루고 내게 영향을 주는 경험 중 하나다. 어느 날 문득,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억압하고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곧 나를 억압하고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는 일이며, 이미 아픈 상처에 스스로 고통을 더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전보다 나에게 더 너그러워졌고,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경험도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정신장애 진단의 한계와 문제점

‘정신장애’ 범주화가 순기능이 있지만 동시에 한계와 문제점도 있다. ‘과학적’ 연구 성과에 근거한(근거했다고 알려진) 현대 정신장애 체계는 전혀 ‘완전무결’ 하지 않다. 정신건강 분야 종사자들은 대부분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 fifth edition, DSM-5)에 따라 정신장애 여부를 판단한다(우리나라는 정신과 의사들만 DSM-5에 근거해서 정신장애를 ‘진단’할 수 있다). 여기에 실린 특정 증상의 집합들만 특정 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DSM-Ⅲ와 DSM-Ⅲ-TR 작업에 참여하고 DSM-IV 작업 팀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는 DSM-Ⅲ 이전에는 진단이 너무 적게 내려졌다면 지금은 진단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하고 ‘약간 아픈 사람’과 ‘아마도 괜찮은 사람’을 가르는 구분선이 훨씬 더 모호해져서 과잉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제약 산업을 비롯하여 정신건강 분야의 종사자들의 이해관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진단체계도 사람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앨런 프랜시스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완벽하게 정상인 사람과 틀림없이 아픈 사람을 더없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분에 어떤 조작도 적용될 수 없다. 그러나 약간 아픈 사람과 아마도 괜찮은 사람을 가르는 구분선은 훨씬 더 모호하다. 그 판단은 쉽게 조작될 수 있고, 실제로 자주 조작된다. 정상인 사람도 가끔은 정신 장애로 오해할 만한 약하고 일시적인 증상을 겪는다(슬픔, 불안, 불면, 성기능 부전, 물질 남용 등). 제약 산업은 그 점에 착안하여, 질병의 범위를 넓히는 것을 사업 모형으로 삼는다. 아마도 정상일 사람들이 스스로 약간이라도 아픈 사람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창의적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고객층을 넓히는 것이다. (64~65p)    
오늘날 정신 의학이 제 범위를 넓히면서 ‘정상’의 탄력적인 경계를 잡아 늘임에 따라, 정상의 범위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우리 아들의 짜증은 성장 과정의 일부일까, 양극성 장애의 이른 증후일까? 우리 딸이 학교에서 주의가 산만한 것은 주의력 결핍 장애 때문일까, 친구들보다 똑똑해서 수업에서 다루는 시시한 내용에 질렸기 때문일까? 아들이 로켓과 과학 소설에 조숙한 흥미를 보이는 것은 기뻐할 일일까, 자폐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일일까? 내가 겪는 근심과 슬픔은 충분히 겪을 만한 것일까, 일반적 불안 장애 증상일까? 내가 사람과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이 목전이라는 뜻일까? 내 슬픔은 속상한 심정을 드러내는 유용하고 필수적이고 강렬한 신호일까, 중증 우울증일까? 우리 십 대 딸은 창조적 괴짜일까, 장차 위험한 마약을 하게 될 미래의 정신병자일까? 타이거 우즈는 정신병 환자일까, 그냥 바람둥이일까? 잔혹한 강간범은 단순히 나쁜 놈일까, 미친놈일까? 누구나 때때로 약하고 일시적인 정신 장애 증상을 겪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정신 질환과 아슬아슬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뜻일까? (71p)     


누구나 일시적, 경미하게나마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렇게 점차 진단기준이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약하고 일시적이나마 정신장애로 분류된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단지 느슨한 진단기준 때문이 아니더라도,  취약성-스트레스 모델(vulnerability-stress model)에 따르면, 특정 정신장애에 대한 ‘생물학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마든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 내가 그 생물학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최근에는 경기불황이나 환경오염과 같은 스트레스 요인(stressor)도 심각해서 취약성이 증상으로 발현되기도 쉽다. 나도 진단체계에 분류한 ‘정신장애’나 경미하게나마 유사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 ‘정신장애’를 겪고 있을 때 남 일처럼 여기면서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정신장애에 대한 무지도 편견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왜 일어나고 예후는 어떤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고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의 경험을 객관성이라는 미명 하에 몇 줄로 요약하는 데 그친다면 그 사람은 욕망과 꿈과 기억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지기보다는 흥미와 공포와 편견의 ‘대상(object)’으로 전락하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장애를 겪는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우리가 좀 더 공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드러내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찰자가 아니라 경험자가 그러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해외에서는 장애를 겪는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담과 장애에 대한 생각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는 일이 흔하다. 몇몇 책들이 국내에 번역되었는데, <조울증과 함께 보낸 일 년>, <보이는 어둠>,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가 바로 그러한 사례들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자신의 기분부전 증상에 대한 경험담을 담은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에세이가 나왔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용기 있는 시도는 아직 너무나 드물다. 정신장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여전히 팽배하기 때문이다.


장애를 겪는 당사자가 좀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데 내 작업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곁에함께심리상담센터 대표/ 임상심리전문가 백소영


추천도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앨런 프랜시스, 사이언스북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반비

<보이는 어둠>, 윌리엄 스타이런, 문학동네

<조울증과 함께 모낸 일 년>, 제이 그리피스, 행성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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