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경제활동은 아이들 학교 방학에 의해 계획된다.
스웨덴의 길고 긴 여름휴가는 사실 아이들을 위한 제도였다.
아이를 낳기 한 참 전, 갖 회사에 입사한 신입이던 내가 회사 이사회의에 우연히 참석한 적이 있다. 한 해 회사 마케팅 활동을 거시적으로 계획하는 자리였는데 너무 인상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신제품 런칭은 학교 여름 방학이 끝나는 8월 말로 잡고 마케팅 활동도 그때로 몰아넣읍시다. 6월에 런칭을 해도 금방 아이들 방학과 함께 고객들이 휴가를 가기 때문에 관심받기 힘듭니다. 8월 셋째 주에 학교가 개학하면 8월 말부터 고객들의 정상적인 생활이 시작되어요. 나머지 부서들도 이때 런칭 이뤄지도록 맞춰주세요."
우와. 한 회사의 경제활동이 학생들의 방학일정에 따라 결정되다니. 우리 회사는 절대 육아나 아이들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회사인데 너무 쇼킹했다. 우리 회사의 고객은 절대적으로 성인이고, 주요 고객 연령 스펙트럼도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며 절대 학부모 계층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아이들 방학이 비지니스 플랜을 짜는데 중요한 요소라면 이는 사회 자체가 아이들 방학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
아직 아이가 없었고 스웨덴에서 자라지 않은 나는 이런 생각을 미처 못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스웨덴 사회와 경제가 학교의 학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여름휴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스웨덴은 6-8월에는 개인이 휴가를 쓰고 싶다고 하면 4주까지 연속되는 휴가를 쓸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 회사와 협의만 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비육아자였던 나는 단순히 4주를 이어서 쉬어야 진짜 휴식이 취해져서 그런 법령이 있는 줄 알았는데,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회사에 다니는 부모가 방학을 맞은 자녀들을 돌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해서 그런 법령이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스웨덴 학교는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2달 정도의 긴 여름 방학을 보내는데, 그중 3-4주 정도는 아이들의 방과 후 수업마저 없는 완전한 방학이 주어진다. 그때에 맞추어 보통 부모들이 긴 여름휴가를 내고 아이들과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스포츠 방학 또한 그 예이다. 스키를 사랑하고 스키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가진 스웨덴은 2월 중순에서 말쯤 지역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주일 정도 스포츠 방학을 가진다. 이때 또한 스포츠 방학과 관련 없는 비지니스는 휴가에 들어간다. 비슷한 방학으로 가을방학이 있는데, 그때 또한 온 나라 전체가 바쁜 경제활동을 한 풀 쉬어가는 분위기로 들어간다.
회사의 비지니스 활동이 방학에 맞추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회사 내 회의나 일정도 이에 따라 조정된다. 이는 사내 부모들이 아이들 방학에 맞추어 휴가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의 회의 일정은 거의 다 비우고, 웬만한 일은 그전에 끝내 두려고 박차를 다하기도 한다.
어디서든 일하는 사람들도 집에 돌아가면 누군가의 부모고 평범한 삶을 산다는 인식이 있고, 대부분 가정에서 부모 모두 사회생활을 하기에 성별 관계없이 아이들의 방학은 책임져야 할 일이기에 사회에서 이를 맞춘 문화와 인식이 발달한 것 같다.
이런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문화를 알음알음 알아나가며 얼마나 스웨덴 사회가 아이에게 중심을 두고 돌아가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부모가 되고 나서는 이미 잘 닦여진 문화와 제도 위에서 유난 떨지 않아도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어서 감사하단 생각이 든다.
여름휴가는 그저 개인의 휴식을 위함만이 아니라 가정과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임이 한국에서도 알려졌으면 좋겠다. 경험에 의한 바, 이런 감사한 시간을 몇 주 지내고 나면 회사에 출근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의 소중함과 감사함도 느끼게 된다. 이게 진정한 워라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