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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fulsunnyday Aug 13. 2019

나의 30대와 우리 할머니의 30대

가끔씩 내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어떤 순간에 감사함이 밀려온다. 오늘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잠깐 산책을 하던 순간이었다. 회사 뒤 숲 속에 산책길을 따라가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적당한 긴장감과 책임감을 주는 회사 업무와 이제 조금은 쉬어진 육아를 생각하며 내 삶에 감사했고 순간 기분이 참 좋았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우리 할머니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할머니도 내 나이 즈음에 내가 느끼는 삶에 대한 소소한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을까.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가 아닌 하나의 개인으로서 느끼는 삶에 대한 감사함. 성취감과는 다른 충족감. 우리 할머니들도 나처럼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며 그런 느낌을 받을 순간이 있었을까. 3대라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하루하루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로 할머니들과 나는 참 다른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시큼했다. 


그 3대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할머니들은 집안에서 정해준 혼인을 했고, 아들을 낳는 것이 젊은 여자로서 해야 하는 가장 큰 의무였던 세월을 살아갔다. 딸이기에 불평등한 어린 시절을 겪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또 그런 불평등을 본인의 딸들에게 물려주었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기에 남편과 함께 나가 일을 해야 했고, 적어도 3명, 4명은 되는 어린 자식들의 빨래와 삼시 세 끼를 챙겨주다 보면 어두워져 그만 자야 했겠지. 일에 끝은 있었을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아들들이 학업을 잘한다는 소식에 가슴 벅차 하고 큰 아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 내 줄 등록금을 모으고 또 모았을 것이다. 


그렇게 키운 아들들의 딸인 현재의 나는 스웨덴에서 30대를 보내며 두 아들들을 키우고 있다. 장녀인 나는 부모님이 대학까지 큰 서포트를 해줘 외국에서 공부도 해봤고 영어도 배워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되었다. 연애결혼을 한 만큼 남편과 절친이고 대화도 많다. 매일 육아에 대한 고민거리를 남편과 이야기하고 저녁에 무엇을 먹을 건지, 내일 아이들 유치원에 챙겨줄 것은 무엇인지 대화한다. 먼 곳에 와서 살면 내 직업적인 발전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스웨덴 이란 곳에서는 외국인이고 두 아이의 엄마인 내 사정을 너무 잘 봐준다. 그래서 회사에서 일하는 즐거움도 있고, 사회에 기여하며 얻는 아이덴티티도 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직접 경제활동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개인으로 생각한다. 퇴근 후 어린 두 아이들을 챙기고 나면 하루 한두 시간쯤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보통 운동을 하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감사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나도 우리 할머니만큼이나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난 아이들의 사회적 성공보단 그들의 행복에 더 가치를 둔다. 그래서 아이가 나중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찾아나가는 길에 내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까 옆에 서 있을 생각이다. 아이의 삶의 주인은 내 아이이지 내가 아님을 안다. 


10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 3대는 참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하루하루 정신없다가도 문득 이렇게 큰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게 되면 삶에 경건해지고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누리는 내 삶은 결코 내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거대한 시대적 흐름에 살아가며 주어진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또다시 진정한 감사함을 느낀다. 내 아이들은 또 어떻게 다른 삶을 나와 살아갈까. 혹시 나에게도 미래에 손자 손녀가 있다면 그 아이들은 나와 또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갈까.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하루와 가슴속에 느끼는 감사함이 그 아이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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