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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7. 2024

11


말한다. 이모가 소주잔을 든다. 우리 셋도 잔을 들어 이모를 향해 내밀지만, 이모는 아이, 됐어, 하고 손에 든 잔을 그대로 입에 가져간다. 그러나 입술만 적실뿐, 그녀가 다시 내려놓은 잔에 담긴 소주의 양은 거의 줄지 않았다. 이모가 말을 잇는다.

“것도 그런디 걔, 애비가 죽기 전에 말여, 머스마들 집에서 합의금을 엄청 뜯었댜. 딸내미 애 떼는 비용이랑 합의금이랑 해서 말여. 그 딸내미를 머스마 셋이서 그런 거 아녀. 그 놈들 중에 왜, 봉황리 가기 전에 관성리에 살던 머스마. 걔 애비가 거서 돼지 농장했지?”

“아, 김찬주?”

만두가 답한다.

“그려, 걔네 집에서만 한 오천 갖다줬다고 그러드만. 기집애 애 밴 거 알고 나서 그날 밤이었나벼, 걔 애비가 머스마 부모들을 파출소로 다 불렀댜. 불러서 고소하네, 뭐 하네 쌩지랄을 떨었다든디 고소가 어디 쉽게 되간디?”

“이모, 이모. 잠깐만.”

만두가 끼어들어 이모 말을 자른다. 

“현영이네, 현영이 임신한 거 알고 그날 새벽에 진천으로 도망간 거 아녔어?”

그렇다. 만두의 말에 따르면 박현영 일가는 박현영이 임신한 것을 알고 그날, 정확히는 자정이 지났을 테니 다음날 새벽에 야반도주하듯 진천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아이, 뭔 소리여. 축사도 있고 그른디 하룻밤에 도망을 가기가 어디 그렇게 쉽나. 그리고 막말로다가 걔네가 도망갈 이유가 뭐가 있간디. 머스마들이면 또 모를까. 안 그려?”

“그려? 근데 그날 이후로 한 번을 못봤는데….”

“아이, 보기를 왜 못 봐. 안 디다봤으니까 못봤겄지. 걔 애비, 지 마누라 데리고 신나서 임장다녔는디. 허긴, 여기저기 다녔을 테니께 병천에서는 못봤을 수도 있겄다.”

“임장이요? 부동산 알아보러 다녔다고요?”

내가 놀라서 묻자, 이이~, 하고 이모가 충청식으로 긍정한다.

“걔, 애비가 다음날부터 집보러 다녔어. 우덜은 그래서 ‘아, 합의가 잘 됐나보다.’ 혔지. 그러고나서 조금 있다가 그 머스마, 누구라고?”

“김찬주.”

만두가 답한다.

“아유, 나이가 먹으니께…. 하여간 걔네 집에서만 오천 받었다고 소문 돌더만.”

우리 셋은 짠 것처럼 동시에 와, 하며 감탄한다. 오천만 원이라는 돈의 액수 때문이 아녔다. 박현영의 임신 사실을 알고 분노해 그녀를 가축 다루듯 두드려 패놓고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합의금 받을 생각에 신나서 임장을 다녔다는 그녀의 아버지의 기가 막히는 행보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당 오천이면 일억오천이네.”
영준이 말한다. 그만은 돈의 액수 때문에 감탄했나보다.

“아니지, 그렇게까지는 못받었지.”

이모가 반박한다. 영준이 왜요? 하고 묻는다.

“주동자한테 오천 받은 거니께, 나머지들한티는 그만큼은 달라고 못혔겄지. 그 찬중인가, 뭐신가가 주범 아녀.”

“맞어, 김찬주가 주범이었어. 공식적으로는.”

만두가 이모의 말에 맞장구친다.

“피시방에서 박현영 꼬신 게 남경찬이라며? 근데 김찬주가 어떻게 주범이 돼?”

이 이야기의 초입, 나는 남경찬이 사건의 주범이라고 넘겨 짚었다. 그때 만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었다. 또 ‘아무튼 얘기를 들어보라.’고 덧붙였다. 이모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행동이 꼭 만두에게 발언권을 넘긴다는 암시 같았다. 내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이모를 쳐다 보자, 이모가 가는 눈을 짓이겨 웃으며, 늬들도 펴라, 하고 말한다. 영준이 와, 실내 흡연 얼마만이냐, 하고 신이나서 담배를 꺼내 문다. 만두도 담배를 꺼내 문다. 익숙한 듯 덤덤한 그녀의 행동은 신이난 영준과 사뭇 대비된다.

“아, 나는 가끔 와서 이모랑 술마실 때, 종종 이렇게 폈었어.”

내 시선을 눈치채고 만두가 말한다. 망설이다가 나도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그래서? 왜 주범이 김찬주야?”

만두에게 다시 묻는다.

“아까 니 말대로, 남경찬은 그 당시 병천에 일진 문화를 도입했던만큼 싸가지가 남달랐어. 그런 남경찬 눈에, 우리한테는 마냥 친구, 동생이었던 또래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부하, 노예, 돈줄 정도로 보였을 거야. 그 새끼 참 못됐지? 맞어, 쓰레기여. 그런데 그런 쓰레기 새끼일지언정, 자기 주도 하에 현영이를 강제로 범하고 나서도 아무렇지 않았을까? 그 당시 걔가 몇 살? 중학교 삼 학년, 16살. 아직 애여. 겁 났겠지. 겁이 나서 입을 맞춘 거여. 정연호랑. 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남경찬 패거리는 철저하게 서열이 나뉘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게 김찬주였어.”

나는 기억하고 있다는 뜻으로 응응, 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얘기하기 전에 상우야, 하나만 묻자. 너 중학교 때말여, 니가 다른 애들이랑 장난치다 선생님한테 걸리면 누가 제일 많이 혼났냐?”

유치원 때, 비상 계단 철문을 고여둔 돌덩이를 머리 높이로 들어 아파트 난간 너머로 던질 수 있었을 정도로 나는 발육이 빨랐었다고 적었다. 그때 벌어진 또래들과 머리 하나 만큼의 성장 차이는 중학교 때까지도 이어졌다. 혹은 더 벌어졌다. 그 때문에 선생님들은 똑같이 장난을 치거나, 사고를 쳤더라도 친구들이 아닌 나를 먼저 찾았고 더 엄하게 혼냈다. 학생들 중 키가 가장 큰 나를 후려 잡으면, 교내 분위기가 덩달아 잡힐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랬던 선생님들의 훈육 방식이 서른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가슴에 사무친다.

“나였지.”

내가 답했다. 답에 이어 그 당시 선생님들을 향한 섭섭함, 씁쓸함이 담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거여. 처음에 남경찬은 김찬주가 주범이다, 김찬주는 남경찬이가 주범이다. 서로 주장했는데 남경찬은 이미 정연호를 포섭해 뒀잖어? 그러니까 주장에 힘이 실렸을 테고 게다가 그 패거리에서 김찬주가 제일 등치가 컸잖어. 중학교 때 키 크다는 이유로 상우 니가 남들보다 더 혼났던 것처럼 으른들 보는 눈은 다 똑같은 겨. 뭐? 현영이? 내가 이런 말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너 같으면 게임 아이템 준다고 몸 대주는 애 얘기를 믿겠냐? 애초부터 경찰들이랑 부모들이 현영이 얘기는 들으려고도 안 했대. 그렇게 김찬주가 꼼짝없이 주범이 된 거지.”

만두의 말이 끝나자 이모가 훗, 하고 짧게 웃는다. 그녀는 만두가 얘기하는 도중 가져온 종이컵에 꽁초를 집어 넣는다. 칙, 하고 담뱃불 꺼지는 소리가 난다. 종이컵 안에는 정수기에서 받아온 물이 얕게 들어있을 테다. 나도 다 타들어간 담배를 종이컵 안에 넣는다.

“그때 걔, 찬중이 애미가 걔 할무니랑 탄원서 받으러 다니고 그랬었어.”

이모가 말한다. 그녀는 이제껏 몇 번이나 언급된 김찬주의 이름을 아직도 외지 못한다. 심지어 그 이름을 외기 전에 찬중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어 버렸으니, 앞으로 그녀에게 김찬주는 김찬중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모의 입에서 나오는 찬중이라는 이름을 지적하지 않는다. 모두가 얘기의 흐름이 끊기지 않기를 바라는, 같은 마음일 것이다. 심지어 영준 마저도. 이모가 해주는 사건의 뒷얘기는 그와 만두 역시 모르는 듯 했으니. 이모가 말을 잇는다.

“우리집에도 왔었는디, 그 당시 누가 서명 해주간디? 재판도 안 간 일을 갖다가 탄원서 받어서 어따 쓸라고 그래냐고, 내가 막 뭐라해서 내쫓았어. 근디 해줄걸 그렸어, 그렇게 될 줄 알았으믄. 걔가 형제 없이 외동아녀. 또 장손이구. 걔네 집안에서 애 교육 잘못 시킨게 다 걔 애미 탓이라고, 걔 애미를 엄청 괴롭혔나벼. 결국에는 논두렁에서 죽었잖어. 질 처음 죽은 거는 현영이 애비가 아니라 찬중이 애미였어.”

“사인….”

나는 사인이 뭐였냐고, 물으려다가 이모 수준에 맞추어 단어 선택을 다시 한다.

“죽은 이유가 뭐였대요?”

“시골에서 뭘로 죽겄어. 농약 마셨지. 그라목손. 그 여편네 죽은 논이 걔네 논이었어. 그때가 농약철이었는디, 보통은 집에서 농약을 물에 개가지고 경운기에 실어서 가져가 뿌리잖어? 근디 그날은 어째 그랬는지 물을 물대로, 농약은 또 농약대로 따로 가져갔나부지? 삼춘 농약 뿌려 봤어?”

이모가 내게 묻는다. 내가 아니요, 하고 답하자 영준이 그런 나를 무시하듯, 한량, 샌님이 농사일을 해봤겠시유? 하고 말한다. 만두와 이모가 웃는다.

“논에다가 농약을 뿌릴라며는, 물에 갠 농약이 담겨있는 다라이에다가 길다란 호스를 집어느서 모다(모터)로다가 퍼 올리는 거그든? 그 호스가 모다를 지나 어디로 연결돼있냐, 농약 분무기로 연결돼있어. 그럼 한 명이 농약 분무기 들쳐메고 논 안에 들어가서 뿌리는 겨, 샅샅이 돌아다니믄서. 삼춘, 농약 분무기는 알제? 가방같이 생긴 거. 잉, 그건 안다네.” 

일동 웃는다. 나만 빼고.

“논 전체에다가 농약을 뿌릴라며는 호스가 엄청 길겄지? 물론, 그렇지 않은 논도 있겄지마는 보통 논이 넓잖어. 그럼 그 긴 호스가 얼마나 무겁겄어? 그래서 농약 칠때는 호스 잡을 사람이 여럿 있어야 댜. 그날 찬중이 애미가 그거 하다가 안 보이더랴. 그래서 걔 애비가 화가 잔뜩 나가지고 농약 주다 말고 논에서 나와서 찬중이 애미를 찾은 겨. 그랬더니 호스 잡는 사람덜 있는 논두렁 말고 반대편 논두렁에서 눈이 헤까닥 뒤집혀가꼬 입에는 거품 잔뜩 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더랴. 응급차 불러서 실었는디, 병원 도착하기도 전에 죽었다더만.”

“김찬주는요? 그때 김찬주는 뭐하고 있었는데요?”

“건 나는 모르지. 근디 그것도 사람 새끼 아녀. 친가 식구들이 지 애미 욕하고 괴롭힐 때 그 새끼 그거….”

이모가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이내 추스르고 다시 말을 잇는다.

“덩달아서 지 애미한테 욕하고 손찌검하고 패악질을 했다는 거 아녀. 하여간이여, 하여간….”

“아이, 좀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내가 안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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