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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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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말이 맞어. 박현영이 걔네 아부지가, 그 말대로 좋은 건 다 찾아 드셨어. 병천에서 유명했어. 뱀이니, 고라니니, 사슴 피니. 하다못해 동네서 개 잡는다 그러면, 왜 개 뇌가 있을거 아녀? 그것도 몸에 좋다고 집에 챙겨와서 끓여 드시고 그랬어. 그냥, 다 드셨어. 몸에 좋다고 하는 건 싹 다! 상우 너, 알고 있나 모르겠는데, 진천 쪽에 산골 깊이 들어가면 곰 키우는 데 있는 거 알어? 거기서 곰 가지고 뭐 할 거 같어?” 

영준이 묻고 잠시 뜸을 들인다. 이번엔 의도한 것이다.

“그거 웅담 빼내려고 키우는 겨. 쓸개즙. 걔네는 거기 갇혀서 평생 쓸개즙만 만들다가 죽는 겨. 박현영이 아부지가 거기를 엄청 다녔어. 그러니 걔네가 야반도주 한다고 간 데가 진천이라는 게 안 웃기겠냐? 막말로 병천 사람들은 도주한 게 아니라 웅담 찾아 간 거라고 그랬어.”

영준의 말을 듣고 나는 만두를 본다. 만두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영준을 제지하지도 않는다. 영준의 말이 마냥 터무니 없지는 않다는 것이리라.

“그 뿐이 아녀. 박현영이 아부지가 짐승이니 가축이니, 안 가리고 엄청 잡았지?”

영준은 만두의 동의를 구하는 듯 그녀를 바라보며 묻는다. 만두는 대답 없이 영준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소주를 들이켠다. 그런 만두의 행동을 보고 영준은 더 신이 나서 떠든다.

“옛날이나 그랬지, 요즘 동네에서 뱀이나 개 잡는 사람들도 없어. 게다가 총기 허가 받아서 사냥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해도 일 년 내내 사냥철은 아녀. 그러니까 먹을 게 없잖어? 그래서 짐승이나 가축을 직접 잡은 겨. 박현영이 아부지가. 아마 셀 수도 없을 만큼 잡았을 겨.”

“그런데? 그게 뇌경색이랑 뭔 상관인데?”

나는 따지듯 물었다. 만두가 무어라 말하려고 하자 영준이, 이건 내가 말 하는 게 나. 우리 삼춘한테 직접 들어서 내가 더 잘 알잖어, 하고 말해 그녀를 말린다. 만두는 아무 말 않고 자기 소주잔에 소주를 따른다.

“우리 삼춘이 총기 허가 받아서 겨울만 되면 사냥 다니시거든? 고라니고 멧돼지고 잡으면 그거 다 어떻게 했을 거 같냐? 지금은 어쩌는지 모르는데, 박현영이 아부지 살아생전에는 그 양반이 싹 다 가져갔댜. 가져가서 뭐 했겄어? 직접 배 갈라서 해체 해가지고 구워 먹고 지져 먹고 했겄지? 으른덜 말씀에 그게 좋은 게 아니랴. 작물에 해가 되니까는 잡긴 잡더라도 해체해서 먹고 그러면 안 좋다고 하대? 아, 막말루 두 번 죽이는 거 아녀 총으로 한 번, 배 갈라서 또 한 번. 게다가 뱀 잡는다고 산에다 그물도 상시 설치해 뒀었어. 너 알다시피 뱀은 영물이라고 하잖어. 영물을 잡아다가 삶아 먹고 그랬던 겨.”

영준의 사투리가 강해졌다. 그러나 전과 같이 병천 어르신들을 모사하며 장난을 치려는 것이 아녔다. 볼이 상기되고 미간에 주름이 간 그는 자극적인 얘기를 하며 흥분한 듯 보였다. 

“어디 개새끼 돌아다니면 그거도 싹 다 잡아다가 먹고. 너 개는 어떻게 잡는 지 아냐? 이게 또 잡는 과정이 기가 막혀. 우리 삼춘이 박현영이 아부지가 사냥감 가지러 왔을 때 도대체 개를 어떻게 잡냐고 물었대. 에이,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지. 비아냥 반, 호기심 반이었겄지. 그랬더니 박현영이 아부지가 무슨 자랑처럼 얘기하더랴. 먼저 개를 나무에 배 전체가 닿게 묶어놓고 각목으로 대가리를 쳐서 기절만 시킨대. 그리고 산 채로 토치로 털 다 그슬르는 겨. 그래야 고기가 연하대나 뭐래나. 아! 만두, 니네 소도 한 번 걔네 아부지가 잡았잖어.”

만두가 아, 그 얘기는 왜 꺼내, 하고 소리친다. 

“너네 소 얘기는 뭔데?”

나는 놓치지 않는다. 이번에도 만두 대신 영준이 답한다.

“그때 당시에 소 값이 개판이었어. 마침 만두네 축사가 다 차서 소를 팔긴 팔아야 되는데 이 장사꾼 새끼들이 헐값에 넘기라 그러네? 그래서 만두 아부지가 엄청 고민을 했댜. 근데 박현영이네 아부지가 만두 집에 찾아와서 만두 아부지한테 직접 잡자그러더래. 자기가 잡겠다고. 아, 소 잡아 달라고 도살장 갖다 주면 그거 또 돈 아녀? 그리고 걔들이 도축한 소 고기 빼돌릴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만두 아부지가 그러자고 한 거지.”

“그때.” 

만두가 영준의 말을 가로챘다.

“우리 아빠가 도축하고 나서 고기 챙겨온다고, 현영이 아부지랑 같이 간다 그러시는 걸 우리 엄마가 엄청 말렸어. 부정탄다고. 그냥 혼자 잡게 두라고. 아빠는 현영이 아부지 성격을 아니까, 분명히 혼자 잡게 두면 고기 빼돌릴 걸 알았나 봐. 결국 같이 안 가셨고.”

“근데.”

다시 영준이 발언권을 뺏는다.

“그게 박현영이네 아부지가 만두네 소만 잡은 게 아녀. 그 전부터 동네에서 돼지니, 소니 잡는다 그러면 무슨 백정마냥 있잖어? 돈 받고 잡아주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녔어. 그렇게 죽어나간 짐승이나 가축들이 그 집안에 들러붙어서 그런 거랴. 아, 누가 그렸겄어, 우리 삼춘이랑 동네 어르신들이 그랬지, 벌받은 거라고. 생각해 봐라, 그 손에 짐승 피를 도대체 얼마나 묻혔겠냐?”

말을 끝낸 영준이 소주를 삼켜 목을 축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소주를 건배 없이 각자 마시고 있었다.

“나는 사실 저런 거 안 믿기는 해. 근데 또 마냥 아닌 얘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영이 아부지가 짐승 같은 걸 엄청 잡아 대기는 했으니까.”

만두의 말에 영준이, 맞어 맞어, 하며 맞장구 친다.

“솔직히 벌 받을만도 하지. 박현영이 아부지가 짐승 잡을 때마다 걔네 축사 앞에서 작업했거든? 만약에 그 피가 안 마르고 고였잖어? 모르긴 몰러도, 축사 앞에 짐승 피로 저수지 하나는 만들었을 거다. 그리고 그냥 잡은 것도 아니잖어. 원하는 장기 빼내려고 죽은 짐승 뱃속을 얼마나 헤집었겄냐.”

“아, 야. 그만해. 토할 거 같어.”

만두가 영준을 말린다. 그녀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 막는다. 영준이 그런 만두를 보며 킬킬 웃는다. 짓궂다. 그때 내 뒷편, 청연 출입구 쪽에서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란 만두가 소리를 질렀다. 방에서 나온 이모가 서 있었다. 양말만 신은 채로 땅을 딛고 서서 그녀는 실눈을 뜨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여, 니들 여적 안 갔냐?”

이모가 신발을 찾아 두리번 거리며 말한다. 이내 신발을 찾아 신은 그녀가 주방 앞에 놓인 정수기 앞에 선다.

“뭔 노무 얘기를 집에도 안 가구 그렇게 재밌게 한댜? 여적까지. 아이고, 세 시가 넘었네.”

“이모 박현영이라고, 예전에 봉황리 살던 여자애 알죠? 우덜 하나 아래.”

영준이 이모에게 말한다. 이모는 마시던 물을 마저 마신 후 손에 컵을 든채로 허공을 바라보며, 박현영이, 박현영이, 하며 중얼거린다.

“아, 그 머스마들한테 험한 일 당했던 기집애 말하는 거 아녀? 그 좀 모자른 애.”

“아시네! 우리 그 얘기 하고 있었어요.”

“아니, 해도 해필 그런 얘기를 햐? 재수없게시리.”

이모는 주방 선반에 컵을 아무렇게나 두고 우리에게 온다. 그녀가 테이블을 보고 묻는다.

“술 더 마실 겨? 뭐 더 해 줘?”

“이모, 화채 돼? 해 줘.”

만두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답한다. 그러자 영준이 만두에게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만두가 뭐, 이씨, 하며 영준을 향해 허공에 주먹질을 한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 이모는 이미 주방으로 들어갔다. 만두가 테이블 위에 놓인, 안주 찌꺼기가 담긴 집기를 주방으로 나른다. 영준과 나도 거든다. 

자리는 금세 정리 되었고 술상이 새로 차려졌다. 이모가 내온 화채란 황도 통조림을 까서 각얼음을 섞었을 뿐으로 조촐했다. 그러나 배가 부를 뿐더러 술이 올라 목이 타는 우리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안주였다. 테이블에 소주잔이 셋에서 넷으로 늘었다. 아까와 같이 내 앞으로는 만두와 영준이 앉았고 이모가 직사각형 테이블 끝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았다. 네 개의 소주잔에 소주가 찼다.

“그런 얘기를 뭣 헐러고 햐.”

이모가 다시 묻는다. 물론, 나는 박현영의 얘기를 이어갈 참이었다. 그러나 이모에게 박현영의 얘기는 술상을 보기 전에 나눈, 지난 얘기일 뿐이다. 그 지난 얘기를 다시 입에 올린다는 것은 이모 또한 박현영의 얘기에 끼고 싶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모, 영준이가….”

낌새를 챈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이모에게 지금까지 영준이 늘어놓은 박현영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전했다. 이모는 박현영 아버지가 잡아먹은 짐승과 가축의 귀신이 박현영 일가에 들러붙어 그 집안에 재앙을 일으켰다는 대목에서 웃었다. 그러나 이모의 얼굴은 표정을 지어도 티가 거의 나지 않는 평면적인 얼굴인지라 그 웃음의 의미를 나는 알 수 없었다.

“맞죠, 이모? 죽은 짐승들이 들러붙어서 그런 거.”

내 말이 끝나자 영준이 동의를 보채듯 이모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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