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우 Oct 27. 2024

9


“야, 에이, 그만해. 오랜만에 봐가지고 이게 뭐 하는 겨.” 

영준이 만두를 말린다. 그러다가 담뱃갑과 라이터를 챙겨 일어난다. 그는 내 옆을 지나면서, 너 잠깐 밖으로 나와, 하고 말한다. 나는 내키지 않지만, 한숨 한 번 쉬고 따라나선다.

영준은 이미 불붙인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는 내 팔을 잡아 자기쪽으로 끌어, 가까워진 내 어깨에 손을 올려 어깨동무를 했다. 그런 채로 가로등 빛이 비치지 않는 으슥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싸우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단지 만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야, 너 말을 새끼야.” 

영준이 에휴, 하고 한숨을 쉰다. 가로등 빛을 벗어나자 그는 어깨동무를 풀고 나와 마주 섰다. 

“나도 잘은 모르는데 명진이가 걔, 박현영이를 엄청 아꼈나봐. 조금만 나쁘게 얘기해도 아주 발작을 해. 너도 아까 봐서 알잖어. 근데 새끼야, 걔네 가족 절반 이상이 고인이 됐는데, 고인덜을 두고 말을 그따위로 하면 쟤가 화가 안 나겠냐?”

“고인?” 

입에 담배를 문 탓에 ‘고'도 ‘거'도 ‘그'도 아닌 애매한 발음이 됐다. 영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건가. 이야기에 정말로 죽음이라는 요소가 있는 건가. 새벽 바람이 손에든 라이터 불을 흔든다. 그 위태로운 불에 얼른 담배 끝을 가져다 댄다.

“그려, 새끼야. 심지어 한둘이 아녀. 박현영네 아부지, 큰오빠, 작은오빠 또 그 새끼 이름 뭐냐, 아, 김찬주, 걔네 어무니, 아, 걔네 어무니는 아닌가.”

“맞어, 죽었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보니 만두가 걸어오고 있었다. 불붙은 담배를 손에 들고. 그녀는 말하곤 담배를 입에 가져다 댄다. 한 모금 빨아 연기를 머금고 말을 잇는다. 

“김찬주, 걔, 어무니도 이 세상 사람 아녀.” 

연기와 섞여 나오는 목소리가 그 연기 탓에 먹먹하다. 말을 마치고 속에 남은 연기를 마저 뱉는다.

“왜 나왔어, 잠깐 있으라니까.”

영준이 만두에게 소리 높여 말한다. 

“조용히 해. 새끼야. 이 새벽에 소리를 질러. 그리고 니가 언제 잠깐만 있으라고 그랬어, 상우한테 따라나오라고만 하고 나갔지.”

“명진.”

나는 만두의 본명을 불렀다. 본명을 불러야 할 것 같았다.

“그냥 만두라고 불러. 징그럽게….”

그렇게 말하는 만두의 얼굴은 한쪽 입꼬리만이 올라가있다.

“그래, 만두야, 내가 몰랐다. 미안하다.”

사과를 듣고 만두가 피식 웃는다. 

“하여간 기자라는 새끼들은….” 

그녀가 체념한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옆에 선 영준이 긴장한다.

“상우야, 너, 현영이 얘기 글로 쓸 거 다 알어.” 

만두는 무심히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숨을 한껏 들이마신다. 무언가 결심하는 사람처럼. 

“그려, 써. 근데 잘 숨겨라. 니가 딱 읽고 ‘아! 이정도면 아무도, 병천 사람도 못알아본다.’ 라고 생각될만큼 애들 이름이고 뭐고 싹 다 바꾼 다음에… ….” 

그녀가 말을 멈추고 나를 본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는 긴장한다. 

“그리고 한 번 더 바꿔, 새끼야.” 

말을 마치고 웃는다.

영준도 덩달아 웃는다. 나는… …. 나만 웃지 못한다. 안달이 나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재에 다시 숨이 붙었다. 생사는 더 들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호흡기라도 달아보자. 떼죽음이 등장한다고 하니, 기대에 미치지는 못할지언정 내다 버릴 정도는 아닐 테다. 사과를 건넸고 또 받았으니 만두도 다시 입을 열 테다. 이런 소재를 말도 잘 못하는 영준의 입으로 전해들을 수는 없다. 둘의 웃음이 멎기를 기다린다. 참 오래도 웃는다. 기다리다가 안달이 난다.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만두가 묻는다. 

“남경찬 패거리랑 박현영이 피시방에서 위에 정류장으로 간데까지.”

기다렸다는 듯 답하는 나를 보고 만두는 기가 막히다는 듯 ‘허!’ 소리를 내며 날숨을 뱉는다.
“아… 진짜 너한테 얘기해도 될는지 모르겄다.” 

그녀가 자기 머리를 쥐뜯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말한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을 새로 다지는지, 허리에 손을 집고 크게 심호흡한다. 

“그래, 갔어. 현영이가 걔네를 따라가서 당했지? 그리고 두 달쯤 뒤야. 내가 현영이 집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갔다가 현관문 열어놔서 그 처참한 꼴을 동네 어르신들이 다 본 게. 알다시피 병천 좁잖아? 소문이야 하루… 아니지. 현영이네랑 우리집 있던 봉황리 쪽은 그날 밤에 이미 다 퍼졌을 거고, 병천 전체에는 아마 다음날 아침나절쯤에 다 퍼졌을 거야. 다음날 학교 가려고 버스타러 가는 길에 걔네 집 슬쩍 보니까 의외로 조용하더라? 어제 이후로 크게 뭐, 별일은 없나보다, 하고 나는 갈 길 갔지. 그렇게 한 며칠 얼굴도 못보고 살었어. 지나다니면서 뭔일 없나 하고 보는데 걔네 집은 계속 조용하더라고.”

만두가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그래서?”

그 틈을 참지 못하고 나는 재촉하고 만다.

“한… 한 달 정도 지났나? 학교 다녀 왔는데 엄마가 그러데? 옆집이 나왔다고?”

“아, 맞다. 그랬었다.”

영준이 호응한다. 그는 만두의 얘기를 듣고 박현영과 남경진 패거리에 관한 잃어버린 기억을 수집하고 있는 듯 하다. 만두에게 사과하기를 잘했다고 나는 또 한 번 생각한다. 만약 영준에게 이 얘기를 들었다면 이야기의 구조가 많은 부분에서 허술했으리라. 만두가 다시 말을 잇는다.

“우리 부모님도, 걔네 아부지가 현영이 때려 죽일 뻔한 거 말린 날 후로는 굳이 왕래 안 했나 봐. 아, 왜 그렇잖아. 안 그래도 창피할 텐데. 그 사이에 현영이네가 부동산에 집 내놓고 다른데로 이사한거지. 말이 이사지 사실 야반도주한 거여. 나중에 엄마가 알음알음 들어서 나한테 얘기해 준 건데, 걔네 그날 새벽에 이미 병천 떠났다더라. 어쩐지…. 걔네 차가 세 대였거든? 그 다음날에 학교갈 때 내가 걔네 집 들여다 봤다고 했잖아? 그때 마당에 차가 한 대도 없었던 거 같어.”

“그날 새벽이 언젠데?”

영준이 묻는다. 멍청한 놈.

“아, 스트레스. 걔네 아부지가 현영이 때려 죽일 뻔한 그날 새벽!” 

만두가 영준에게 빽! 소리를 지른다. 

“소리질렀더니 술이 다 깨네. 술깨니까 춥다. 드가서 마저 얘기하자.” 

그렇게 말하고 만두가 앞서 걷는다.

“야, 우린 담배 한 대 더 피고 들어가야지.”

만두의 뒤를 따라 걸음을 내딛는 내게 영준은 꼭 그렇게 정해놓았다는 듯 말한다. 그런 영준에게 나는 손을 저어 보이고 만두의 뒤를 따른다. 

“아이씨. 야! 같이 가.” 

영준이 꺼낸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넣느라 양손을 허우적대며 내 뒤를 따른다.

우리는 자리에 돌아와 앉자마자 소주를 두 잔 연거푸 마셨다.

“현영이네가 떠나고 나서….” 

결심이 선 만두는 내가 재촉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운을 뗀다. 

“우리야 뭐, 잘 살았지. 그리고 현영이네 애기를 다시 들은 게 내가 대학교 다닐 때여. 대학교 삼 학년 때였나? 하여간 한겨울이었어. 나 대학교 때문에 대전에서 자취했었던 거 알지? 겨울방학이라서 병천 내려와 있었는데, 한날은 우리 부모님이 상갓집을 다녀온대. 그래서 누구네 상이냐고 물으니까 현영이 아부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러시더라고? 현영이 어무니한테 연락이 왔대. 몇 년만에. 연 끊고 내뺄때는 언제고 일 터지니까 다시 찾는 게 괘씸해서 내가 막 그랬어. ‘거, 뭐하러 가시냐고. 가지 말라고.’ 근데 늬들도 알잖어, 울 부모님 성격.”

“알지, 알지.”

영준이 만두의 말에 맞장구 치며 웃는다. 만두도 그런 영준에게 눈을 마주치고 씩 웃는다. 오래도록 병천을 떠나있어 만두 부모님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나는 웃을 수 없다. 잠자코 기다릴 뿐이다. 만두가 다시 말을 잇는다.

“다음날 돼서 엄마한테 상갓집 분위기 어땠냐고 물으니까 안 좋다고 그러지 뭐. 사실 당연한 거지. 환갑도 안 된 양반이 축사에서 소밥 주다가 급사했으니. 급성 뇌경색이랬나? 축사에 쓰러져 있는 걸 현영이 어무니가 발견했다더라고.”

“야, 근데 야반도주 했으면 어디 먼 데로 갔을 거 아냐? 그런데 너네 부모님은 어떻게 하루만에 다녀 오셨네?”

“아, 그게….”

만두가 입을 열자, 영준이 웃는다. 만두가 할 말을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야반도주 한답시고 간 데가 고작 진천이래.”

영준이 만두 대신 답한다.

“진천? 병천에서 차로 이십 분 정도면 갈 수 있지 않아?”

내가 놀라서 묻자 영준이 대소한다. 박현영 일가의 결정을 대놓고 조롱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만두는 영준을 나무라지 않는다. 아니, 나무라지 못한다. 그녀 역시 참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 저으며 실소하고 있으니.

“몸에 좋은 건 다 찾아 드시던 양반인데….”

만두가 혼잣말 하듯 중얼거린다.

“근데 이게, 여러가지 썰이 있어. 그 여러가지 썰 중에 내가 지금 기억나는 건 딱 하난데….”

영준은 이 대목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만두의 말을 가로챈다. 그는 신나서 운을 떼어 놓고는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그가 발언권을 가져가는 것이 나는 영 탐탁하지 않다. 그러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들어 둔다면, 글로 옮길 때 분명 도움이 되리라. 이야기의 방향이 정도가 지나치게 어긋난다 거나 터무니 없는 말을 떠든다 싶으면, 그 즉시 입을 다물게 하면 그만이다. 본의 아니게 뜸을 들인 영준이 입을 연다.

이전 08화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