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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7. 2024

8


병천에는 버스 정류장이 두 곳 있다. 오늘 만두의 카페에서 유관순 사적지로 향할 때 지났던 병천 터미널이 그 두 곳 중 하나다. 면민들은 병천에서 천안으로 나갈 때 병천 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른다. 그러나 타는 곳의 반대편에 내리는 곳이 있는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천안에서 병천으로 들어올 때는 병천 터미널의 반대편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내린다. 만두의 카페에서 길을 따라 나와 병천 터미널을 마주하고 좌회전을 하면 곧장 그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정류장의 정식 명칭은 병천 우체국 정류장이지만, 면민들은 병천 터미널보다 위에 있다는 이유로 이곳을 위에 정류장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병천 터미널은 아래 정류장으로 통한다. 위에 정류장에서 내리면, 정식 명칭대로, 우측에 병천 우체국이 보인다. 우체국의 좌측, 즉 위에 정류장의 정면으로는 건축된지 아주 오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이 층짜리 건물이 한 채 있다. 일 층의 가운데가 뻥 뚫려 ‘ㄷ' 자를 오른쪽으로 90도 기울인 모양의 건물로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땐 이 층에 경양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고 식당이 문을 닫은 후에는 병원이 들어서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물의 오른쪽 다리 역할을 하는 일 층의 우측에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있고, 왼쪽 다리인 좌측에는 수시로 다른 점포가 들어서서 현재 뭐가 들어와 있는지는 모른다. 마지막 기억에 따르면 병천에 숨어든 불법 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겨냥해 아시아 각지의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건물 일 층의 가운데인 뚫린 곳으로 들어가면 양 쪽 벽에는 락카나 유성매직으로 새겨넣은 지저분한 낙서들이 가득하다. 내용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 새겨졌음을 알 수 있다. 만두가 말하는 위에 정류장 화장실은 우측 벽에 있다. 다 부서진 나무문 너머 오래도록 방치된 화장실에서는 방치된 세월만큼 부패된 고약한 인분 냄새가 풍긴다. 그 냄새가 위에 정류장까지 침범한다. 즉 병천은 차를 타고 병천교를 넘는 방문객에게는 병천천에 흐르는 돼지 분변 냄새로, 버스를 타고오는 방문객에게는 오래된 화장실에서 수십 년 숙성된 인분 냄새로 환영하는 꼴이다. 면민들 누구도 위에 정류장 화장실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아무리 용변이 급하더라도. 그러나 그 이유가 비단 냄새뿐만은 아니다. 구조상 하루에 단 일 초도 볕이 들지 않는 음침함,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공간이 주는 스산함, 내 고장의 일상적인 모습과는 다르다는데서 오는 이질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혹은 이미 벌어졌을 것 같은 불안함 때문에 그렇다. 특히나 밤에는 그런 분위기가 더 하다. 그런 만큼 위에 정류장 화장실은 남경찬 패거리의 범죄 현장으로 제격이었을 테다.

“와, 거기 냄새 심한데…. 아직도 냄새 심하지?”

“아니? 그 사건 있은 후로 원래 있던 나무문 없애고 철문 달아서 완전히 봉인해버렸어. 이제 냄새 하나도 안 나.”

“이따가 한 번 가보자, 위에 정류장에. 그래서 박화영….” 

만두가 눈을 흘긴다.

“아니, 박현영은 남경찬, 걔네를 위에 화장실까지 왜 따라간 건데?”

“말했듯이…. 아니, 근데 김영준 이 새끼는 왜 안 들어와. 우리도 담배 한 대 피자.”

만두가 테이블 위에 겹쳐둔 담뱃갑과 라이터를 집어 들고 일어나 밖으로 향한다. 그녀를 따라 나서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얘기가 흐름을 탈만하면 끊어진다.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그런들 별수 없지 않은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뒤따른다. 

“야!” 

만두가 문을 열며 영준을 부른다. 만두가 담배를 필 때처럼 청연의 간판 아래 쪼그려 앉은 영준은 휴대전화 액정만 들여다볼 뿐, 쳐다보지도 대꾸도 않는다. 

“새끼가 아직도 삐져가지고.” 

만두가 영준의 옆에 쪼그려 앉자, 영준이 앉은 채로 한 발짝 옆으로 움직여 만두와 거리를 둔다. 상한 기분을 그 나름대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려던 만두는 영준의 그런 행동을 보고, 그들과 마주선 나를 보며 웃는다. 꼭 영준이 귀엽다는 듯 웃지만, 그녀의 웃음은 자기 탓에 토라진 영준의 기분을 같이 풀어달라는 일종의 도움 요청일 테다. 그러나 나는. 

“그래서? 박현영은 왜 따라갔는데?”

그저 집요하게 물을 뿐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만두의 미간에 주름이 간다. 그녀는 부러 느릿느릿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뜸을 들인다. 찾아온 침묵. 그리고 귀뚜라미 우는 소리. 초라한 가로등에 전류가 흐르는 소리.

“뭘, 왜 따라가.” 

어색한 침묵을 버티지 못하고 가장 먼저 입을 뗀 건 영준이었다. 

“그 새끼들이 돈 준다고 꼬드기니까 따라간 거지.”

만두가 미간에 간 주름을 펴고 웃는다. 미간에 주름이 펴진 대신 이번에는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간다. 부러 과장한 웃음이다.

“영준이, 화 풀려쩌요?”

그녀는 아이를 어르는 듯한 말투로 영준을 달랜다. 영준이 자신의 어깨와 등을 토닥이는 만두의 팔을 쳐내며 짜증을 부린다.

“돈? 무슨 돈?”

내가 묻는다.

“돈이 그냥 돈이지, 뭔 돈이 따로 있어? 아, 좀!”

만두가 계속해서 자기에게 뻗는 손을 뿌리치며 영준이 답한다.

“정확히는 돈 때문이 아니라….” 

만두가 영준에게 손을 뻗어 장난을 치며 말한다. 도움 요청을 무시하고 답만 재촉하는 나 때문에 언짢았던 기분은 영준이 기분을 풀 때 덩달아 풀린듯 하다. 

“게임 아이템 준다고 꼬드겨서 데리고 간 겨.”

“아이씨, 야! 나 이제 화 안났어. 됐지? 그만 혀, 이제.”

끝내 영준이 일어나 만두에게서 떨어지며 말한다. 만두는 굳이 그를 쫓지 않는다. 그 대신, 남자 새끼가 그런 걸로 삐져? 하고 장난스럽게 타박한다. 그에 질세라 영준은 삐지긴 누가 삐져, 하고 궁시렁댄다. 만두는 대꾸하지 않고 나를 본다. 

“남경찬 패거리가 현영이를 위에 정류장 화장실로 데려가기 전에 원래는 지들 셋이서 피시방에 있었대. 너, 네트워크 피시방 기억하지?” 

그녀가 내게 묻는다.

“알지, 거기가 병천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운영했던 곳이잖아. 원래는 서너 군데 있었던 거 같은데…. 와, 그런데 어떻게 동네에 피시방 한 곳이 없냐?”

“병천에 애들이 없으니까. 노인네들만 남은 동네에 뭔 피시방이여.”

어느새 불붙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영준이 말했다. 그 말을 만두가 가로챈다.

“현영이가 학원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네트워크에 들렀었나봐. 뭐, 종종 마주쳤겠지? 그 패거리랑. 평소에는 서로 없는 사람 취급하던 사이였는데 하필 그날 김찬주가 하고 있던 게임이 현영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하던 게임이랑 같은 게임이었던거지. 사실 현영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같은 게임을 몇 년 간 했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한두 시간 겨우 게임하던 현영이보다는, 구속받지 않고 하루에도 몇 시간이고 게임하는 김찬주가 더 잘 하는게 당연하겠지? 또 얘기했듯이 현영이가 좀….” 

만두가 말끝을 흐린다. 그러나 이내 다시 입을 뗀다. 

“아무튼, 김찬주가 게임 레벨이 엄청 높았나봐. 그러니 현영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신기했겠어. 자기가 그렇게 원하던 아이템이니 캐릭터니 뭐니, 김찬주는 다 갖고 있었다고 하니까…. 그래서 김찬주 뒤에 서서 구경했대. 그런데 대뜸 김찬주 옆에 앉아있던 남경찬이 현영이한테 그러더래. 김찬주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다 주겠다고. 김찬주는 남경찬 말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래.” 

“하얗게 질릴 건 뭐야, 장난인 줄 몰랐던 거야?”

내가 물었다.

“장난 아니었을 걸?”

“그렇지, 영준이 말대로 장난이 아니었던 거지. 걔네는 같이만 다녔지, 패거리 안에서 서열이 확실했으니까. 남경찬이 정연호한테는 안 그랬는데 김찬주한테는 유독 짓굳게 굴었다 하대? 이건 내 생각인데, 남경찬 입장에서 정연호는 자기한테 알아서 기었고 김찬주는 대들다가 맞고나서 긴 거잖아? 그래서 같이 다니면서도 김찬주가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싸우고 나서 같이 다녔다며. 그럼 끝인 거 아냐?”

“남경찬은 병천의 암묵적인 규칙을 깬 놈이라니까.” 

만두가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한다. 영준과 나도 그녀를 따라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그렇게 꼬드겨서 위에 정류장으로 데리고 간거여.”

“그리고 사내놈 셋이서 박현영을 강제로 범했다?”

“아니, 강제는 아니지. 엄밀히 따지면 김찬주 게임 아이템을 약속 받고 합의 하에 관계를 한거지. 심지어 입고있던 교복도 현영이가 직접 벗었다고 하니까.”

만두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연거푸 담배 연기만 뿜었다. 경박한 영준도 이 대목에서는 숙연했다. 숙연한 그의 모습이 내게는 생경했다. 담배를 피러 나올 때마다 꽁초를 주워 들어오라며 청연 출입구의 청결에 힘쓰던 만두는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사이, 바닥에 침을 뱉어댔다. 그럴 테다. 씁쓸할 테다. 안타까울 테다. 그러나 나는 불만스러웠다. 글로 적을만한 사건일 것이라는 기대와 다르게 구조가 너무 단순하다. 양아치 세 명이 여학생 한 명을 강간해 임신시켰을 뿐인, 어느 동네라도 있을법한 뻔한 이야기 아닌가. 심지어 엄밀히 따지면 강간도 아니다. 결국 자극적인 요소라고는 피해자인 여학생이 저능아라는 사실 뿐이다. 그에 더해, 만두가 사건에 대해 입을 열기 전, 영준이 모두가 죽는 다고 얘기한 것과 다르게 이야기 어디에도 죽음은 없었다. 고작 이런 사건을 글로 담아낸들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보름달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란, 아직은 덜 성숙한 달은 동쪽에서 그새 기울어, 자오선을 넘어 이제 서쪽으로 치우쳤다. 새벽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를 스친 바람이 고여있는 취기를 닦아간다. 두통을 남기고.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온다. 술. 소주가 필요하다.

“드가자.”

마침 영준이 제안했다. 만두가 아스팔트 위에 아무렇게 놓인 담배 꽁초를 주워 일어난다. 영준은 이미 출입구에 다다랐다.

“하, 새끼가 꽁초 버리지 말라니까.” 

만두가 영준이 미처 챙기지 못한 꽁초 하나를 주워, 그의 앞에 들어 보이고 말한다. 웃으며.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겨.”

그녀의 장난기 어린 용서를 듣고 영준도 그녀를 따라 웃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같이 마셔, 하고 말하는 친구들. 그 말에 홀로 비운 잔을 다시 채워 공중에 든다. 소주잔 두 개가 다가와 내 잔에 붙었다 떨어진다. 만두가 나를 뜯어보며 눈치를 살핀다.

“왜.”

나도 모르게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뭐여, 힘들어?”

만두가 도발적으로 되묻는다. 주량을 얕잡아보는 것이다. 주량을 얕잡아보는 행위는 곧, 군대식 문화를 지향하는 혹은 그보다 더 가혹한 기자들의 회식 문화를 견뎌낸 나 자신을 얕잡아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녀의 도발에 조금도 동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 실망하는 중이기에. 박현영과 남경찬 패거리의 이야기가 너무나 별볼일 없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기자일 때 특종이라고 생각했던 기삿거리가 별볼일 없던 경우는 허다했으니. 숫한 경험으로 이런 류의 실망에 단련된 나다. 다만 지금 내 속이 뒤집히는 건 친구들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배신당했다. 내가 화가 나는 건, 오롯이 친구들에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영준은 이야기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은 죽음을 들먹이며 내게 거짓말을 했고, 만두는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얘기하지 않으려는 둥, 이야기하는 도중 힘든척을 하는 둥, 교묘한 방법으로 굉장한 비극인 것처럼 부풀렸다. 앞에 앉은 둘, 친구를 가장한 배신자들이 원망스럽다. 이야기를 듣느라 소모한 시간 또한 너무나 아깝다. 박현영과 남경찬 패거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자리는 끝났을 테고, 나는 오랜만에 찾은 본가에서 추억을 곱씹다가, 지금은 벌써 단잠에 들었을 테다.

“야, 벌써 힘들면 어떡하냐. 얘기 안들을 겨?”

굳이 한 마디 얹어, 기름을 붓는 영준이다. 저, 요사스러운 혓바닥. 따지고 보면 이 자식이 제일 문제다. 만두가 얘기할 때 이 자식이 방해만 안 했어도 이야기의 결말을 더 빨리 들을 수 있었을 테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실망했을 테고 들인 시간이 적은만큼 배신감도 덜 했을 것이다. 

“뭐여…. 듣는 다는 겨, 만다는 겨.”

만두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다.

“들어, 들을게. 근데 뭐 들을 게 더 있기는 해?”

결국 나는 화를 드러내고 만다.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지만.

“너, 말투 뭐냐?” 

만두가 들릴듯 말듯하게 상욕을 한다. 

“뭐가 더 있어야 돼? 왜? 왜, 뭐가 더 있어야 되는데?”

그녀의 물음에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나는 한숨만 쉰다. 만두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어 괜히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가로등 불빛이 닿는 곳 밖은 마치 칠한 듯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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