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남경찬, 정연호, 김찬주. 이 셋은 병천 역사에 전례없던 최고의 문제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 사실은 박현영을 기억하지 못한 내가 남경찬은 기억하고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머릿속 흐릿한 과거 병천의 기억 중 이들 셋의 기억이 점차 또렷해진다.
“야, 그런데 좀 이상하다? 남경찬보다 정연호가 더 쎄지 않았어? 그러니까…”
떠오른 기억을 되씹고.
“남경찬이 정연호 똘마니 아니었어?”
내 기억이 맞다고 확신한 나는 만두를 보고 묻는다.
“아이, 야! 다 똑같은 애들인데, 누가 더 쎄고, 누가 누구 똘마니고 그런 게 뭐, 중요하냐?”
영준이 입바른 소리를 한다. 그 말투가, 남들도 알고 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사실을 자기 홀로 깨달은 양, 거만하다. 말도 잘 못하면서. 나는 영준이 눈치껏 그만 집에 가주기를 바라지만, 영준에게는 내 속내를 읽을 만한 눈치가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속으로 낙담한다.
“정연호는 딱 초등학교 때까지만 짱이었고 중학교 올라와서는 남경찬이 짱이였지.”
만두가 영준의 입바른 말을 가로챈다.
“내가 중학교 삼 학년 때였나? 복도 창문에 서서 예지랑 쌀대롱 먹고 있는데….”
“쌀대롱! 아, 옛날 생각난다. 그거 맛있지.”
영준이 만두의 말을 자른다. 제발, 제발 집에 가주면 안되냐? 라고 속으로 묻는 나.
“아, 좀 닥쳐봐!”
만두가 영준에게 소리친다. 영준은 실실 웃으며 나무 바가지 안에 남은 강냉이를 집어 입에 넣는다. 그에게 지금, 종잇장을 씹는 것처럼 눅눅한 강냉이는 추억 속 쌀대롱 대신인 듯하다. 만두는 그런 영준을 보며 한숨을 쉰다. 어르신들 말씀대로 그 한숨에 땅이 꺼질듯 하다.
“아, 스트레스…. 아무튼, 뭔 얘기하려고 했더라?”
만두가 눈을 감는다. 내가 쌀대롱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기 전에 만두는 감은 눈을 뜨고 말을 잇는다.
“아, 예지랑 복도에서 쌀대롱 먹는데 밖이 시끌시끌 한거야? 박예지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박예지는 중학교 동창으로 만두와 각별히 친했었다. 그런 탓에 만두와의 술자리에 박예지가 더러 낀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둘 사이가 여전한지 너무나 묻고 싶었다. 그러나 참아야 했다. 말하는 만두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모처럼 영준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밖이 시끄럽길래 창문 밖으로 내다 보니까 남경찬이랑 김찬주가 이 학년 교실이 있는 일 층에서 나란히 서서 걸어나오는데, 그 뒤로 이 학년 전체가 따라 나오는 겨? 분위기가 딱 싸울 기센데, 그때만 해도 그냥 폼이나 잡다 들어가겠거니 했지. 근데 진짜 치고받대? 니네도 알지? 김찬주가 남경찬보다 덩치는 훨씬 좋잖어? 남경찬 걔, 무섭더라. 김찬주한테 맞으면서도 안 지려고 주먹질을 계속 하는데 결국 김찬주가 뒤로 돌더라고. 남경찬은 분이 안풀리는지, 이미 결판이 났는데도 계속 때리더라고?”
“에이, 그래 봐야 애들 싸움이었겄지. 남경찬 그거 뭐, 땅딸막해가지고….”
영준이 남경찬을 무시하듯 투덜거린다. 어려서부터 투기 종목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영준은, 만두의 남경찬의 싸움 실력을 추켜 세우는 듯한 감상을 듣고 배알이 적잖이 뒤틀렸음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때 일진 한 명과 싸워서 이긴 이야기를 대단한 무용담이랍시고 떠든다. 매번 이야기에 살을 붙여가며. 처음에는 영준의 그런 꼴이 눈꼴시렸으나, 이제는 서른이 넘도록 자랑할 것이 학창 시절 싸움질 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딱하게 느껴져 듣고만 있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자비를 베풀 때가 아니다. 그의 거짓으로 부풀린 무용담이나 듣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러나.
“참나, 그래서? 그래서 너는 그렇게 싸움 잘 해가지고 스무 살 때 요 앞에서 두드려 맞었냐?”
만두가 영준에게 말려들고 말았다. 그녀는 영준의 아픈 과거를 들먹인다.
영준이 갓 제대했을 때였다. 그 당시 영준보다 입대가 늦었던 나는 군복무 중이었다. 영준은 만두가 아닌 다른 병천 친구들과 청연을 찾았다. 하필 그날, 학창 시절부터 질이 좋지 않던 삼 년 위 선배들이 청연에 있었다. 시작은 그들이 걸어오는 눈싸움이었다. 원체 싸움 실력에 자부심이 있고, 심지어 갓 제대해 피가 끓는 영준은 그들이 걸어오는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기싸움이 육탄전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영준은 일방적으로 구타당했다. 애석하게도 그 당시 영준과 같이 있었던 친구들은 싸움과는 거리가 먼 종자들이었다. 겁먹은 그들은 영준을 구타하는 삼 년 선배들을 말리지도 못하고 바라만 봤다고한다. 한심하게도. 우리 또래 모두는 이 일화를 알고 있다. 다만 싸움 실력이나 뽐내는 그의 싸구려 체면일지언정, 친구된 도리라는 핑계를 대서라도 지켜주고 싶어 입밖에 않을 뿐이었다.
“아, 그때는!”
영준이 발끈해서 만두에게 달려든다. 내가 나서야 한다. 내가 나서서 다시 돌아간 화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됐어, 조용히 해.”
내가 나서기 전에 만두가 일축했다.
“아니, 그때는 진짜….”
“알겠다고. 그러니까 조용히 해.”
만두가 상대해 주지 않자, 영준이 씩씩댄다. 그러더니 테이블 위에 한데 겹쳐 놓은 담뱃갑과 라이터를 낚아채 밖으로 향한다. 나는 영준이 없는 틈을 타서 돌아간 화제를 바로 잡는다.
“그래서 김찬주가 남경찬 아래로 들어갔다? 그럼 정연호는? 남경찬이 정연호랑도 싸워서 이겼어?”
“아니지. 그 당시에 정연호가 김찬주랑 니가 짱이네, 내가 짱이네 하고 있었어. 그런데 남경찬이 김찬주랑 패는 거 보고, 정연호가 지레 겁먹고 알아서 남경찬 밑으로 들어간거여.”
“지레 겁을 먹어? 정연호가?“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되묻자, 만두가 덥답하다는듯 한숨을 쉰다.
“야, 우리 중학교 때, 애들 싸우는 거 본 적 있지?”
만두가 스테인리스 컵을 들어 목을 축이고 얘기를 계속한다.
“병천 애들 싸우던 거 떠올려보면, 우덜은 싸우다가 상대가 뒤돌거나 울면 그냥 거기서 끝이었어. 그게 꼭 정해놓은 규칙인 것마냥. 그리고 화해하고 또 같이 놀고. 순진했던거지. 그 순진한 애들의 암묵적인 규칙을 처음으로 깬 새끼가 남경찬인겨. 김찬주는 뒤로 돌아서 자기는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고 표현했어. 그런데 남경찬은 그런 김찬주를 끝까지 따라다니면서 때렸고. 정연호 입장에선 무서울 만도 하지. 심지어 정연호, 걔는 주먹이 아니라 주둥이랑 승질머리로 짱 먹은거니까.”
“와… 그런데 너는 이런 걸 어떻게 다 아냐? 여자애가?”
“명제. 다 명제한테 들은겨. 걔가 중학교 때 우리 부모님 속 좀 썩였잖어? 명제가 남경찬이랑 친했었어. 그 사건 터지기 전까지.”
“명제.”
그 시절 껄렁대던 명제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만두의 눈치가 보여 흘린 웃음을 주워 담는다. 그리고 묻는다.
“그러면 남경찬이 짱이니까, 주범은 남경찬이네?”
“하…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어.”
만두가 잔을 들어 들이민다. 내 웃음을 보고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것 같아 안심하며, 잔을 들어 만두의 잔에 갖다 댄다. 술이 깨면서 찾아왔던 두통은 이미 가셨다.
“나도 상우 너처럼,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튼 들어 봐. 너 위에 정류장 일 층 건물 사이로 들어가면 화장실 있는 거 알지?”
“알지.”
“이 새끼들이 현영이를 건드린 장소가 거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