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천에?”
내가 묻는다.
“병천에 사건이 있었어?”
내 물음에 만두가 답하지 않자, 영준이 또 한 번 그녀에게 묻는다.
“아니다, 이런 거 입에 올리면 재수없댔어. 술 줘 봐.”
만두는 술병 쪽으로 손을 뻗어 손가락을 까딱인다. 영준이 자기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 만두의 손치로 가져가자 만두가 병을 낚아채 자기 잔에 술을 따른다. 그리고 비운다. 다시 자기 잔을 채우고 영준과 내 잔도 차례로 채운다. 그러나 내 잔에는 병에 남은 소주가 부족해 반만큼만 찬다.
“뭐여, 왜 그랴, 갑자기?”
병천 어르신을 모사하며 묻고 영준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소주를 꺼내러 간다.
“야, 너 왜그랴?”
소주를 들고 돌아온 영준이 소주병 뚜껑을 열며 재차 묻는다. 여전히 병천 어르신들을 모사하면서. 그는 반만 차있는 내 잔을 마저 채운다. 만두는 다시 소주를 들이켠다. 그리고 비로소 입을 뗀다.
“너네, 현영이 기억 나? 박현영.”
만두를 보던 영준과 내 눈이 마주친다. 그 시선은 다시 만두에게 향한다.
“누구?”
내가 묻는다.
“박현영이라고, 우리 하나 아래.”
영준과 내 눈이 다시 마주친다. ‘너, 알아?’ ‘아니, 너는 알아?’ ‘나도 몰라.’ 육성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마주친 시선이 조금 전과 같이 다시 만두에게로 향한다.
“몰라.”
내가 답하자.
“너도 몰라?”
만두가 영준을 보고 묻는다. 영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야, 얘는 원래 멍청하니까 그렇다 치고. 너는 학생회장이었다는 새끼가.”
만두가 나를 타박한다.
“아니, 그러니까 얘기를 해 봐. 걔가 누군데.”
만두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어느새 영준이 채워 뒀을 소주잔을 든다. 그녀가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영준과 나는 재빨리 잔을 들어 가운데에서 부딪힌다. 만두는 마지못해 맞닿은 우리의 잔에 잔을 가져다 댄다. 영준이 빈 소주잔 세 개를 차례로 채운다.
“그 왜, 박현영이라고. 우리 하나 아랜데, 얘가 우리 옆집 살았었거든, 봉황리. 아이, 조금 모자란 애 있잖아.”
만두는 우리의 기억력에 호소하듯, 나와 영준을 번갈아 본다.
“얘가 우리 하나 아래 남자 애들, 그러니까 지들끼리는 동갑이지? 걔들한테 강간 비슷하게 당했었어. 그때 병천 다 뒤집어졌었어, 진짜 기억 안 나?”
“병천에서? 아니, 그러니까 병천 중학교 애들끼리 그랬다고? 몇 살 때?”
내가 묻는다. 영준은 듣고만 있다. 만두는 그런 우리가 답답하다는 듯 깊게 한숨 쉬고 테이블 한구석에 둔 담뱃갑과 라이터를 챙겨 일어난다.
“나와 봐. 한 대 피면서 얘기하자.”
영준이 몸을 틀어 길을 낸다. 테이블과 영준 사이 좁은 틈을 만두가 거칠게 비집는다. 그리고 출입구로 향한다. 자세를 바로 한 영준과 내 눈이 세 번째 마주친다.
“쟤, 왜 저래?”
영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뱉는다. 그러나 출입구로 향하는 만두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나는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좌우로 젓는다. 그러면서 엄지로 출입구를 슬쩍 가리켜 나가자는 몸짓을 해 보인다.
쪼그려 앉아, 첫 모금일 담배 연기를 뿜는 만두의 양 옆으로 영준과 내가 선다. 만두는 우리가 담배에 불을 붙이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연다.
“그 박현영이라는 애가 완전 바보는 아녔어. 발달이 남들보다 조금 더딘 정도?”
만두는 가래 끓는 목을 헛기침하며 가다듬는다. 나와 영준이 뿜은 담배 연기가 보름달이라기에는 조금 모자란, 아직은 덜 성숙한 달을 향한다. 나는 목을 가다듬는 만두를 보고 얘기가 길어질 성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거라면 부디 사건성이 짙기를 바란다.
“걔가, 아까 얘기했듯이 우리 옆집 살았었는데, 옆에 살겠다, 우리 아빠도 걔네 아빠도 소 키우니까 두 집이 친했거든. 걔네 집 잘 살었어, 축사 부지가 우리 집 거에 두 배도 더 됐으니까. 걔 위로 오빠가 둘 있었는데 내 동생이랑 나까지 다섯이서 걔네 축사에서 자주 놀았었어. 우리집 축사는 작아서 숨바꼭질도 못했거든. 당최 숨을 데가 없어가지고.”
만두는 그때를 그리는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씩 웃는다. 웃으며 틈이 벌어진 입과 콧구멍에서 그녀가 삼킨 담배 연기가 새어나온다.
“그때가 나 고등학교 가고 나서 바로여, 고등학교 1학년 때. 아, 학교 갔다가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는 겨. 온 집안 불은 다 켜놓고 어디들 갔나 했더만 명재가 들어오더라? 상우 너, 내 동생은 기억하지? 아, 명재말여.”
나는 쪼그려 앉은 만두를 내려다본다. 내게 물은 그녀는 나를 올려다 보고 있다. 사실 만두 동생의 이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알지, 하고 답한다. 그녀가 만족한 듯 웃음을 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피한다. 하필 피한 시선을 둔 자리에 영준이 있다. 영준은 내 대답이 거짓이라는 걸 안다는 듯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꼭 한 마디 뱉고 싶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린다. 다행히 만두가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잇는다.
“명재한테 ‘너 어디 갔다 왔냐?’ 물으니까, 옆집 현영이네 있었대. 그러면서 지금 난리 났다고 그러데? 뭔 일인지 더 묻지도 않고 나갔어. 늬들도 알잖어, 내가 한 오지랖 하는 거. 걔네 집 마당 들어서니까 집 안에서 걔네 아빠가 뱉는 쌍욕이랑 걔네 엄마 통곡하는 게 들려. 와… 그 소리. 나 사람한테서 그런 소리 나는 거 처음 들었잖어? 마당에는, 아마 한밤중에 시끄러워서 그랬겄지? 동네 어르신들이 걔네 집 현관 앞에 모여있는데,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그런 소리니까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 서서 새어나오는 소리만 듣고 있는 겨. 내가 어르신들 비집고 돌계단 올라가서 현관문 여니까, 바로 보이는 게 현영이네 엄마가 우리 엄마 붙잡고 울고있고 그 뒤에서 걔네 아빠 날뛰는 걸 걔네 작은 오빠랑 우리 아빠가 붙잡고 말리고 있더라. 그리고 저기 싱크대 구석에 뭐가 처박혀 있는데 처음엔 뭔 가축인가 싶었어. 자세히 보니까 그게 현영이여. 빨개 벗고 웅크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겨. 벌써 지 아빠한테 한 몇 대 맞았는지 등짝이랑 허벅지가 버얼갸. 걔가 고개를 드는데 이마인지 머리인지 아무튼 위에서 피가 잔뜩 흘러. 얼굴은 뭐, 벌써 피범벅이고. 아마 그때 작은 오빠랑 우리 아빠가 걔네 아빠 안 말렸으면 현영이 지금 이세상 사람 아니여.”
만두가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는 듯 눈을 감고 몸을 부르르 떤다. 다행히 말을 멈추지는 않는다.
“그때 내가 서있는 뒤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겨. 하, 씨팔. 내가 들어가면서 현관문을 안 닫았네? 마당에 모여있던 어르신들이 언제 따라 왔는지, 돌계단 올라와서 집안 꼴 보고 웅성대는 거여.”
자조적으로 웃는 만두.
“이제라도 현관문 닫으려는데, 엄마가 그제서야 나 온 거 알아채고 쫓아내듯이 ‘조명진, 집에 가 있어!’ 그러더라?”
“그래서?”
만두를 재촉하는 나.
“아, 나 이 얘기 알어. 다 죽잖어?”
영준이 실실 웃으며 끼어든다.
“너는 새끼야, 사람 죽는 게 웃기냐? 저 새끼는 가만 보면 몸만 컸지, 그냥 애새끼여.”
만두가 오랜만에 영준에게 면박을 준다. 그러면서 영준을 향한 면박에 동의를 구하는 듯 나를 본다. 면박을 받은 영준은 무어라 중얼거리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내 귀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아직 만두의 이야기 속에 머물러 있었다. 만두의 반응을 보면 영준의 말이 마냥 실없는 소리는 아니리라. 명진의 이야기 속 누군가 죽기는 죽는다. 강간과 죽음. 두 단어만으로도 사건성이 짙다. 소재가 된다. 글을 쓸 수 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누군가의 비극을 가슴뛰며 반가워하는 내 모습에 기시감이 든다. 덜미에 토도독 소름이 돋는다. 밤바람이, 소름 돋을만큼 찼던가.
“아, 빨리.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만두를 재촉한다.
“그래서는 뭘 그래서여.”
만두는 자기를 재촉하는 내가 재밌다는 듯 짓궂게 웃는다. 그녀는 담배를 아스팔트 바닥에 비벼 불을 떼네고 꽁초를 챙겨 일어나 출입문으로 걸음을 옮기며 경고하듯 말한다.
“꽁초 여기에 버리지 마라”
그러고는 뒤돌아 영준을 보며, 특히 너 새끼야, 하고 뱉은 말을 한 번 더 짚는다.
“해튼, 내가 제일 만만혀. 아주 나한테만 지랄여.”
만두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영준이 퉁퉁댄다.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는다. 그보다 왜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쉽게 열리지 않는 만두의 입을 열어야만 한다. 손가락으로 쳐서 담뱃불을 떼낸다. 그리고 만두를 뒤따라 청연 안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