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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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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까지만해도 습기를 머금어 찐득하고 뜨거웠던 밤공기와는 다른 정반대의 기운을 띤 밤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건조하고 차다. 세 개의 라이터 불이 번뜩인다. 청연 옆, 오토바이 매장에서 나는 기름 냄새를 담배 냄새가 묻는다.

“백수 새끼.”

영준이 짓궂은 장난을 건다. 평소라면 울컥해서 정색했을 테지만, 취기 탓에 헤실헤실 웃고 만다. 엄마는 언젠가 만취한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 취했을 때, 행패 안 부리고 생글생글 웃는 거 보고 술 때문에 사고 치지는 않겠다 싶어서 안심되더라.’ 라고.

“너도 백수 잖아, 병신아.”

영준과 나 사이에 쪼그려 앉은 만두가 영준에게 또 한 번 면박을 준다. 영준이 눈치 없는 소리를 하거나 짓궂은 장난을 치면 꼭 만두가 나선다. 영준의 입단속은 자기 담당이라는 듯이.

“아녀, 나는 농사꾼이지.”

만두의 면박에 영준이 변명하듯 둘러댄다.

“뭔 소리야, 그게? 너, 곧 명절이라 내려와 있는 거 아니었어?”

내가 영준에게 묻자 만두가, 이 새끼도 다니던 공장 술 처먹고 안 나가서 짤렸어, 하고 영준 대신 답한다. 

“아, 진짜 아부지가 불러서 온 거라니까! 버섯 농장 물려 받으라고.”

영준은 이제 발끈한다.

“그래서, 너는 이제 뭐 할라고?”

만두는 발끈한 영준을 무시하고 내게 묻는다. 나 또한 수없이 내게 던졌던 질문을 속으로 또 한 번 던진다. 뭘 해야 할까. 사실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이력서를 점검하고 지원하고 면접을 본 후 불러주는 곳에 가서 기사를 쓴다. 그러나 기자로서 마지막 취재를 하면서 하고 싶은 게 하나 생겼다. 하지만 그 행위로 돈을 벌어 앞가림을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이미 이십 대에 끝냈어야 할 고민을 나는 내 나이 서른 다섯, 이제 와서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기는 한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뭔데?”

만두에게 면박을 받고 토라진 듯 했던 영준이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 영준이 단순해서 다루기는 쉽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두가 그에게 조금 모질게 구는 것도 단번에 이해가 된다. 붙어있다 보면 나라도 그러리라.

“내가 아까 늬들한테 얘기한 사건을 기사로 못 냈잖아? 그래서 글로 좀 써봤거든? 소설처럼.”

“그거 해.” 

단정지어 말하는 만두의 입과 코에서 머금었던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연기를 다 뿜어내고 그녀가 다시 말한다.

“그거 해. 내가 보기에 넌 직장 생활이랑 안 맞아, 관상이. 너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은 엄청 큰 곳이었잖어. 거기서는 뭐 때문에 쫓겨났었더라?”

“뭐여, 쫓겨난 적이 또 있어?”

그렇게 묻는 영준은 자기가 토라졌었다는 사실을 이제 완전히 잊은 듯 하다.

“와, 씨. 그걸 기억하네?” 

대학, 취업 준비 그리고 취업 해서는 자리 잡겠다고. 한창 바빴던 그 시기에 나는 살길을 찾는다는 핑계로 고향 친구들에게 소홀했었다. 그랬던 과거를 이제와서는 ‘그 시기에는 누구라도 친구에게 신경쓸 여력이 없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합리화 하고 있었다. 만두도 그 시기에는 나와 같이 바빴을 테다. 그러나 그녀는 내 이력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첫 직장에서 쫓겨났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뭐냐, 과잉 취재로 쫓겨났었지. 솔직히 잔바리… 그러니까 거의 신입이었는데 뭘 알겠냐. 의욕만 넘쳐서…. 그리고 지방지로 넘어간 거지. 지금까지 있었던 데로.” 

사쓰마와리란 사회부 사건, 사고를 담당하는 수습 기자들을 말한다. 내가 사쓰마와리일 때 출입처 중 하나인 경찰서에 아동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아이의 부모가 아닌 부모가 종종 드나들던 호프집 주인. 수상했다. 원칙적으로는 1진, 즉 출입처의 선임 기자에게 보고한 후 지시에 따라야 했으나 도꾸다니, 즉 특종의 냄새를 맡은 나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멋대로 날뛰었다. 내 예상대로 아동 실종 사건은 아동 살인 사건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나는 사건 용의자의 집을 헤집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쫓겨났다. 특종은 선임 기자의 몫이 되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지내면서 글이나 쓰라고. 넌 직장 생활이랑 안 맞아.”

만두가 다시 한 번 내가 직장 생활과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강조한다. 

“근데 이 시골에서 뭘 쓰냐?”

그렇게 묻는 영준의 발치에는 담배 꽁초 세 개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내 발치에도 쪼그려 앉은 만두의 발치에도 담배 꽁초가 세 개씩 놓여있다. 

“야, 꽁초 주워서 들어와. 안에다가 버리게.”

만두가 발치의 꽁초를 주워 청연 안으로 들어간다. 나와 영준도 만두를 따라 꽁초를 주워 안으로 들어왔다. 미닫이문 틈새로 보이는 이모는 이제 아예 잠에 들었는지 베개를 베고 있다. 앞서가던 만두가 미닫이 문 옆 배전반 앞에 선다. 그리고 배전반을 열어 스위치 하나를 내린다. 

“뭐 하는 겨, 맘대로.”

만두를 지나쳐 먼저 자리에 앉은 영준은 지금이 기회다 싶었는지 만두에게 대든다. 

“이모가 때 되면 간판 불 꺼달라고 그랬거든? 여기 마감 시간 한참 전에 지났어.” 

그렇게 말하며 만두는 냉장고로 향해 새 소주를 꺼내 자리로 돌아온다. 그녀는 영준과 테이블 사이 좁은 틈을 비집으며, 사실 한참 전은 아니고, 하고 덧붙인다. 미지근하게 식은 소주를 치워두고 차가운 새 소주로 각자의 소주잔을 채운다.

“야, 그런데 진짜 뭘 써야 되냐?”

영준이 제 고민처럼 심각하게 묻고 시선을 허공에 둔다. 이내 로맨스? 하고 자답하곤 멋쩍은지 웃는다. 나와 만두는 실소한다. 그 웃음을 보고 영준은 뿌듯하다는 듯 잔을 든다. 이제 소주의 쓴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달다.

“뭐, 쓰던 글이 그런 글이니까 사건을 담아보려고 하는데. 늬들, 알고 있는 거 뭐 없냐?” 

“야, 대학교 이 년 빼고 평생을 병천에만 있었다. 있겠냐?”

만두의 되물음에는 병천에 고립된 자신의 팔자를 향한 한탄이 묻어나는 듯하다. 

“난 사 년.”

“미친놈이 왜 사 년이여, 너도 전문대잖아.”

만두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듯한 영준의 말투에 발끈한 그녀가 쏘아 붙인다.

“군대 갔다 왔잖어. 군대나 전문대나. ‘대'로 끝나니까 똑같어.”

조금전 우리를 웃기는 데 성공한 영준은 자신감이 붙었는지, 또 한 번 농담을 던진다. 그러나 만두는 전과 다르게 웃기는커녕, 질린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무심하게 집어든 소주잔을 입에 가져다 대는 그녀에게 나는 재빨리 잔을 들이민다. 만두는 입으로 가져가던 잔을 내가 내민 잔에 부딪힌다. 영준도 늦을세라 잔을 들어 내 잔에 가져다 댄다. 세 개의 소주잔이 비워진다. 잔이 테이블에 놓이고 어색한 정적이 흐른다. 청연 안팎으로 흐르던 7080 유행가라도 들린다면 어색함이 덜하련만, 만두가 간판 불을 끌 때 이미 멎었다. 이 시간 병천에는 지나는 사람도 도로를 달리는 차도 있을리 없으니,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없다. 이모가 소리 없이 틀어둔 줄 알았던 텔레비전이 작은 소리로 무어라 떠들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봐주는 사람도 없는데, 자기 홀로 여지껏 그러고 있었을 테다. 그 외로움, 나라도 달래어주자 싶어 들어보니,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다시 화두에 오른, 과거의 청소년 집단 강간 사건을 조명하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가해자인 남고생들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적법한 처벌을 받지 않아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하나 있기는 하네.” 

창 밖을 바라보던 만두가 정적을 깬다. 

“하나 있기는 해, 병천에.”

이번에는 시선을 내게 두고 다시 한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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