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왔네.”
카페 밖 재떨이 옆에 쪼그려 앉은 만두가 나를 맞았다. 그녀 옆에서 같이 쪼그려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며 말한다.
“야, 고작 병천 나오는데 그게 맞는 복장이여?”
영준이었다. 초, 중학교 동창인 만두와 달리 그와는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으로 다녔으나, 정작 우리가 친해진 건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이 되고 나서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초, 중학교 때 친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그는 나와 술을 마실 때마다, 자기가 학창 시절에 내게 당한 괴롭힘을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랍시고 떠든다. 들어보면 내가 그를 괴롭혔던 방식이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지독하기는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괴롭혔다는 나는 그의 주장을 조금도 인정할 수가 없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를 않으니.
내 복장을 지적한 영준은 색바랜 긴소매 티셔츠와 헤진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바지통이 넓은 청바지에 흰 반팔 그리고 체크무늬가 그려진 긴소매 면 셔츠를 반팔 위에 걸치고 있었다. 나름대로 편하게 입는다고 입은 것인데 정말 편하게 입고있는 영준의 복장과 나란히 두고 보니, 과연 그가 지적한 대로 신경 써서 차려 입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이 괜히 부끄러웠다.
“자취방 정리하면서 택배를 보냈는데, 기사가 게을러서 그런지 아직 안 왔어. 그래서 옷이 이것밖에 없다.”
장난기를 담아 대꾸한다는 말이 친구들에게 변명으로 들리지는 않았을까 염려됐다. 괜히 낯이 뜨거워진다. 달궈진 얼굴이 부디 밤에 가려 티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려? 앞으로는 조심 혀.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겨.”
영준은 마치 선심써서 용서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병천 친구들은 평소에는 사투리를 그리 심하게 쓰지 않으면서도 장난칠 때는 꼭 병천 어르신들을 모사하듯 사투리를 과장한다. 영준도 만두도. 이들의 행위가 내가 병천을 떠나 있는 동안 잊어버린 우리들의 유희였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또 병천을 떠난 다른 친구들도 병천에 돌아와 이들의 행위를 보고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을는지 궁금했다.
“아…!”
여태 앉아있던 만두가 신음하며 일어서서 풍채를 사방으로 펼쳐 기지개를 켠다. 그녀는 잠깐만 있어 봐, 라고 말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카페 안 조명이 차례로 꺼진다. 이내 다시 밖으로 나온 만두가 카페 문을 잠그고 말한다.
“가자.”
“어디로 갈 겨?”
앞서 가는 만두의 뒤에서 영준이 묻는다.
“청연.”
만두가 답하자, 영준이 내 가슴팍을 툭 치고 만두의 뒤를 따른다. 나는 빠르게 걸어 영준과 걸음을 나란히 한다.
“짤렸다매?”
영준이 입꼬리를 얄궂게 쌜룩거리며 묻는다. 앞에 걷는 만두가 뱉은 담배 연기가 얼굴을 훑고 뒤로 지나간다. 그 향에 홀린 듯 나도 셔츠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바지 주머니에서는 라이터를 꺼낸다. 영준도 한 개비 꺼내 입에 문다.
“만두한테 들었냐?”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되묻는다. 가을 바람은 내내 잔잔하다가 하필 지금 불어와 라이터 켜는 것을 방해한다. 바람, 너 또한 얄궂다. 잠깐 라이터에 불이 붙은 틈에 담배를 냅다 빨아 들인다.
“아, 빨리와! 배고파 죽겄구만.”
만두가 멈춰서서 뒤돌아 성을 낸다.
“넌 좀 굶어도 돼!”
영준이 만두를 향해 소리친다. 그리고 그녀에게 들리 않게 소리 죽여 말한다.
“하여튼 저거는 배만 고프면 지랄이여. 니 얘기는 가서 듣자.”
퉁퉁대면서도 영준은 걸음을 서두른다. 만두가 휙 돌아 다시 걷는다.
오 분 정도 걸어 중고 오토바이를 취급하는 가게에 이르렀다. 가게 앞에는 부품 수급용 폐오토바이가 십수 대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인 술집 청연이 보였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박공지붕을 덮은 건물로 지붕 한 가운데 뼈대가 녹이 슨 폐자전거가 매달려 있다. 폐자전거 양옆으로는 청연이라는 글자가 전구색 LED 줄조명으로 한 글자씩 적혀있다. 글자 군데군데 수명이 다 한 조명들이 보였다. 병천에 간판이 성한 곳이 과연 있을까. 외부에 설치된 스피커로 708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내부 역시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교실 바닥 같이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나무 바닥에 통나무 패턴 시트지를 붙인 시멘트 기둥, 기둥과 같이 원목을 가장한 싸구려 나무 의자와 테이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구석에 앉았다. 만두가 이모! 하고 부른다. 출입구 옆 미닫이 문 안에서 네! 하고 답하는 중년 여자의 외침이 들린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주류 회사에서 받았을 앞치마를 걸친 늙수그레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우리의 얼굴을 훑다가 만두를 알아보고는 묻는다.
“명진이여?”
“이모, 잤어?”
만두가 되묻는다. 여자는 대꾸하지 않고 계산대 옆에 겹쳐 놓은 나무 바가지를 하나 든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강냉이가 담긴 투명 비닐 포대에 나무 바가지 째로 넣어 강냉이를 한가득 퍼낸다. 그것을 메뉴판을 쟁반삼아 받쳐 들고 와서 우리가 앉은 테이블 위에 무심히 내려 놓는다. 그러고는 영준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한다.
“너는 영준이고. 이 삼춘은 낯이 익긴 헌디….”
“아… 한 이년 전쯤에는 종종 왔었는데.”
내가 말하자 여자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가 이내 기억이 났는지 박수를 친다.
“아! 그 기자한다는 그 삼춘이구먼! 어째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기자는 무슨, 이제 기자 아녜요. 짤렸대요.”
영준이 짓궂게 말하며 웃는다. 나는 머쓱해져 강냉이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씹는다. 지나치게 눅눅하다. 뱉고 싶지만 이모가 옆에 있어 애를 써서 삼킨다.
“이모, 여기 닭껍질 튀김이랑, 소세지랑, 김치 찌개 고기 많이 넣어서 주시고… 일단 그렇게 주셔. 아, 후레쉬도 한 병, 메뉴판은 여기 둘게요.”
우리의 대화에 아무 관심 없다는 듯 메뉴판만 들여다보던 만두가 말하고 메뉴판을 옆으로 치운다. 이모는 뒤돌아 출입구와 마주보고 있는 주방으로 향한다. 이내 주방에서 딱딱딱딱 하고 업소용 가스불 켜는 소리가 들린다.
“야, 뭘 한 번에 그렇게 많이 시켜. 이따 자리 옮겨서 먹지.”
주방에 있는 이모 눈치를 보며 내가 말하자, 만두와 영준이 마주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이 새끼 이거, 오랜만에 왔다고 감을 완전히 잃었네.”
영준이 병천 어르신들 모사하며 비아냥댄다. 또 시작이다.
“너 도대체 병천에 새벽까지 문 여는 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여?”
만두도 병천 어르신들을 모사하며 영준을 거든다. 둘은 실실 웃는다. 또 한 번 머쓱해지려던 찰나, 이모가 주방에서 나와 소주잔 세 개와 소주 한 병을 테이블에 두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간다. 영준이 소주를 냅다 집어 뚜껑을 열자, 만두가 영준의 앞에 소주잔 세 개를 나란히 둔다. 꼭 짠 것처럼. 잔이 놓인 순서대로 소주가 차오른다. 만두가 가장 먼저 가득찬 잔을 들어 내 앞에 둔다. 그 다음으로 가득찬 잔을 내가 가져와 앞에 둔다. 영준이 소주병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남은 잔을 든다. 소주잔 세 개가 허공에서 부딪혔다 떨어진다.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고 곧이어 그것이 훑고 지나간 길에 화한 기운이 오른다.
“그래서. 왜 짤렸는데?”
빈 잔을 내려놓고 만두가 묻는다. 일하느라 빈속일 그녀는 그 속에 강소주를 집어 넣고도 멀쩡하다. 아니지, 사실 그녀가 빈속일는지는 모를 일이다. 영준은 눅눅한 강냉이를 잘도 먹는다. 그를 따라 무심코 강냉이를 집었다가 젖은 종잇장을 씹는 것 같은 축축한 식감을 떠올리고 다시 내려 놓는다. 그리고 입을 뗀다.
“마약에 중독된 여자 한 명을 취재 했었는데….”
“예쁘냐?”
첫 마디를 끝맺기도 전에 영준이 치고 들어와 묻는다. 그가 묻는 찰나, 그의 입속에서 침과 범벅이 된 강냉이가 눈에 든다.
“아, 좀 닥쳐봐.”
만두가 영준에게 면박을 준다. 말을 끊은 영준이 괘씸했지만, 만두가 면박을 주어 해소해줬으니, 그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한다.
“예쁘겠냐? 머리카락은 빠져서 없지, 이도 잇몸이 약에 녹아서 다 빠졌지, 팔이고 다리고 특히 얼굴에는 염증, 여드름투성이지.”
영준은 머릿속으로 여자의 얼굴을 그리는 듯 시선을 허공에 두고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그래서?”
만두가 재촉한다.
“처음에는 높으신 분들한테 보여주기 식으로, 일하는 척이나 하려고 시작한 건데…”
나는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기자로서 마지막이었던, 동시에 내가 직장을 잃게 만든 취재를 상세히 서술했다. 취재를 시작하게된 동기, 취재 대상이 얽힌 사건, 취재 과정, 사건의 주범. 불과 몇 달 전의 일인데도 아주 오래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만두는 이 사건을 이미 언론을 통해 접한 듯 내가 말하는 사이사이 맞장구를 치거나 거들었다. 그녀와 반대로 영준은 완전히 처음 듣는 이야기인듯 완전히 빠져들었다. 둘은 내 예상대로 주범의 배후에 내가 감당 못할 세력이 있었고 그 세력에 의해 내가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는, 언론에는 전혀 공개되지 않은 대목에서 특히 재미를 느끼는 듯했다.
“와… 그런 일이 진짜 있구나….”
이야기를 듣고 영준은 그가 머문 적 없고, 앞으로도 머물 일 없는 세계가 마냥 신기하다는 듯 감탄했다. 만두는 말없이 테이블을, 이따금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야, 가서 소주 꺼내 와.”
영준의 어깨를 지긋이 밀며 말했다. 입을 벌리고 감탄하던 영준은 못마땅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이 새끼는 내가 지 꼬봉인줄 알어, 하고 퉁퉁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옆의 냉장고로 향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는 어느새 담긴 그릇에 비해 반쯤씩 모자란 음식들과 두 병의 빈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영준이 가져온 세 병째 소주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야, 이쯤에서 담배 한 대 피자.”
소주를 내려놓은 영준이 테이블 옆에 선 채로 말했다. 만두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영준을 따라 출입구로 향했다. 출입구 옆, 미닫이 문틈 새로 소리없이 틀어진 텔레비전과 텔레비전을 마주보고 누운 이모가 팔베개를 하고 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