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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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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의 카페로 왔던 길을 되돌아 차를 몰았다. 면민만 아는 지름길 끝에 병천 터미널이 정면에 보인다. 고등학교 때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통학했었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은 가건물로 당초에는 간판에 ‘병천 버스 정류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주인이 바뀌면서 건물은 그대로인 채, 간판에 적힌 글자만 ‘병천 터미널’로 바뀌었다. ‘터’ 자의 ‘ㅓ'는 내가 고향을 떠날 당시와 같이 떨어진 그대로다. ‘ㅓ' 자가 붙어있던 곳에는 때가 찌든 접착제 흔적만이 검게 남았다. 간판이 바뀐 걸 알았을 때 시골 버스 정류장인 주제에 터미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주제 파악도 못한다고 괘씸해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실 주제 파악도 못하는 것은 지금의 나인데. 감당하지도 못할 것을 건드려 기자라는 업을 잃었으니 말이다. 

병천 터미널을 앞에 두고 우회전했다. 얼마간 달리자 병천면 탑원리에 들어섰다. 이윽고 탑원 로터리가 나왔다. 로터리를 끼고 또 우회전. 차는 유관순 열사 사적지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올랐다. 오르막길 끝에 좌측으로는 소, 중형 차량 주차장이, 우측으로는 대형 차량 주차장이 있다. 엄마 차는 중형이지만, 나는 우측으로 핸들을 틀었다. 널찍한 주차장이 펼쳐졌다. 출발 대기 중인 시내 버스 두 대만이 주차장 끝에 주차되어 있었다. 저 버스들은 곧 병천 터미널로 향할 테다. 버스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커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쪽에서 탁, 탁하고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버스 기사 한 명이 주차장 끝에 있는 정자의 나무 기둥에 자동차 바닥 매트를 때려가며 먼지를 턴다. 부연 먼지가 버스 기사 주변으로 날렸다. 버스 기사의 뒤로 유관순 열사 동상이 보였다. 무심코 뿜은 담배 연기가 유관순 열사 동상을 향해 나아갔다. 독립운동가를 향해 담배 연기를 뿜은 꼴이다. 행실이 이렇게 되바라졌으니, 복이 달아난 것이리라. 그래서 도꾸다이, 즉 특종이라고 생각해 달려든 사건에 하필이면 감당 못할 배후가 있었던 것이고, 감당 못할 배후를 건드린 결과 업을 잃게된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다 됐다. 지나간 일은 잊자. 취재를 할 당시, 어떤 결과가 따르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후회가 아니라 앞날을 도모할 때다. 감당 못할 사건의 배후에게서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발치에는 담배 꽁초가 늘어 갔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 어디여?

“유관순 사우요.”

유관순 열사 사적지는 바뀐 이름이다. 원래는 유관순 사우였고 면민들은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 

- 아빠 들어 오셨어. 그리고 올 때 마트에서 참기름 좀 사 와. 똑 떨어졌네?

그러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병천 터미널을 끼고 우회전을 하면 마트가 나온다. 원래는 초,중학교 동창의 부모가 운영하던 공판장이 있던 자리였으나, 마트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병천에 마트가 들어오기 전 아직은 추진 계획만 있을 때, 병천에서 슈퍼를 운영하던 면민들과 그들의 친지들이 면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할 정도로 반대했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 공판장을 운영하던 동창의 부모를 찾아가 자리를 내어주지 말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면민 대부분이 마트가 들어오는 것을 찬성했고 동창의 부모는 자리를 내어주는 대가로 마트로부터 거액의 자릿세를 약속 받았다. 결국 마트는 계획대로 들어섰다. 

마트 앞 도로 갓길에 주정차된 차들 틈에 차를 세웠다. 주정차 불가지역을 뜻하는 황색 복선이 그어져 있지만, 병천 파출소 경찰들이 동네 어르신들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딱지를 떼인 적도, 누가 딱지를 떼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다. 그런 탓에 마트 앞 도로는 이 차선임에도 주정차된 차들로 일 차선만큼 좁다. 차에서 내려 마트로 들어가면서 면민 모두가 드나드는 마트인만큼 반가운 또래의 얼굴을 마주치지는 않을까 설렜다. 그러나 마트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병천을 찾았던 이 년 전보다 부쩍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들이 북적였고 병천 면민이라고는 어르신들 뿐이었다.

아파트 현관을 열자 집된장 끓는 냄새가 반겼다. 

“상우니?”

현관 왼쪽으로 맞닿은 주방에서 엄마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시 주방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빠는요?”

“씻으셔.”

끓고 있는 된장찌개에 시선을 고정한 엄마가 무심히 답했다. 내가 동생의 소재를 묻지 않은 건 한창 운동에 빠져있는 그가 체육관에 있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스레인지 옆, 씽크대 위에 마트에서 사 온 참기름을 올려두고 손을 씼었다.

“아이, 까서 줘야지.”

엄마가 볼멘소리를 하며 참기름 포장을 뜯는다. 주방과 마주보고 있는 화장실 문이 열린다. 

“왔어?” 

발가벗은 아빠가 묻고는 멋쩍게 웃는다. 그의 물음에 내가, 이 년만의 상봉임에도 악수도 포옹도 없이 ‘네.’ 라고만 답한 건, 부자간에 사연이 있어서도 아빠가 발가벗고 있어서도 아니다. 아빠에게 내 몸에 밴 담배 냄새를 풍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려서부터 또 성인이 되어서도 아빠의 두 아들 자랑은 한결 같았다. 자랑할 때 대사 또한 ‘우리 아들덜은 술, 담배를 일체 해지를 않어.’ 하고 매번 같았다. 아빠의 자랑대로 운동에 빠져 사는 동생은 그러하나, 나는 달랐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부터 술을 입에 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소위 일진이라는 친구들에게 불려가 ‘너는 생겨 먹은 게 담배를 피우게 생겼으니 어차피 필 거, 지금부터 피워라.’ 라는 말을 들으며 흡연을 강요받기도 했다. 그때는 한 모금 담배 연기의 매캐함에 아연실색했었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일진들의 예언대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미 한 번 아빠에게 흡연한다는 사실을 들키기도 했다. 불같이 화내며 나를 나무라는 아빠를 진정시키기 위해 조만간 끊겠다고 다짐했었으나, 그럴 수 있을리가. 서른 다섯이 된 지금, 결국 골초로 남았다. 아빠는 내가 여전히 흡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테다. 그 또한 과거에는 흡연을 했었고 아들의 몸에서 그때 그의 몸에서 풍기던 냄새가 나니까. 다만,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인들을 만나면 같은 대사를 외며 두 아들을 자랑한다. 그의 부정(否定과 父情 모두.)에서 비롯된 자랑을 실현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릇된 믿음일지라도 지켜주고 싶어서 나는 집 안에서도 아빠와 몸이 가까워 지지 않도록 부러 거리를 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속옷만 입은 채, 화장실 입구를 막고 선 아빠가 벗어나길 기다리다가 그가 빨래통을 둔 베란다로 가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화장실로 들어갔다. 양치를 하고 샤워를 했다. 몸속에 밴 쩐내까지는 어쩌지 못할 테지만, 냄새를 조금이라도 줄여나보려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 좌식 테이블 위에는 엄마가 귀한 손님이 올 때만 꺼내 쓰는 포트메리온 식기들이 놓여있었고 그 안에 저마다 다른, 반찬통에서 덜어낸 반찬이 담겨있었다.

“어여 와, 먹어.”

허기를 참지 못하고 먼저 식사를 시작한 아빠가 입안에 음식물을 씹으며 말했다. 다이어트해야 한다며 부러 저녁을 거르는 엄마는 혼자서는 식사를 하지 못하는 아빠 옆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빠는 식사할 때, 같이 먹지 않더라도 아무 말도 나누지 않더라도 꼭 엄마를 옆에 앉힌다. 텔레비전에서는 일일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요? 조금만 먹고 나갈 건데.”

오랜만에 보는 아들 먹이려고 엄마는, 식지 않은 늦더위에 가스불 앞에 서서 땀 맺어가며 저녁상을 차렸을 테다. 그런 서사를 간직한 저녁상을 앞에 두고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괜히 낯뜨거워 툭툭대었다. 내 이런 부분은 아빠와 꼭 닮았다.

“첫날부터 어디를 또 나가. 가족들이랑 있지.”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큰아들의 외출을 못내 아쉬워한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팬티만 입은 채로 좌식 식탁에 아빠와 마주보고 앉아 된장찌개를 한 술 떠서 입안에 넣는다. 시판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에는 없는 집된장 특유의 씁슬함이 입안에 퍼진다.

식사를 마치고 담배가 너무 땡겼다. 그렇다고 담배를 피우려고 안팍을 드나들기에는 아빠의 눈치가 보였다. 만두가 당장 연락을 해주기를 바랐다. 결국 그녀의 연락을 기다리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어쩌면 내가 이 년 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던 이유는 일이 바빠서가 아니라 담배를 마음대로 피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약속이기에 차는 두었다. 손가락에 담배 한 개비를 끼우고, 비로소 선선해진 밤공기를 헤집으며 나 홀로 걸었다. 지긋지긋한 여름이었다. 퇴근 후에 에어컨을 틀어도 집을 비운 동안 달궈진 방은 식지 않았고 끝내는 기상 관측이래 최초로 열대야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그랬던 것이 거짓인양, 이미 지나간 여름은 잊으라는 듯 가을 밤바람이 불어와 앞머리를 쓸었다. 하수도를 흐르는 오수 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그래서인지 왼쪽에 펼쳐진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 소리가 우렁차다. 오른쪽에는 불 꺼진 아우내 도서관이 보인다. 취직하기 전 본가에서 지낼 때, 삼 분 거리의 아우내 도서관을 많이도 들락거렸다. 책 대여와 반납, 공부, 인쇄. 모든 이유가 핑계였다. 눈치보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을 지나자 나와 내 동생이 졸업한 초등학교가 나왔다. 운전하고 올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걸으면서 보니, 이 년 새 운동장 가에 러닝 트랙이 깔렸다. 애들은 흙 먼지를 마시면서 자라야 건강한데. 라는 생각은, 나도 이제 꼰대가 다 됐구나. 라는 성찰로 이어졌다. 저녁에 들렀던 마트도 아우내 도서관과 같이 불이 꺼져 있었다. 그랬다. 저녁 여덟 시만 되면 병천에는 정전이라도 된 듯 어둠이 깔렸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런 병천 모습이 아니, 시골의 풍경이 새삼스러웠다. 병천 터미널에 이르자 비로소 인공적인 불빛이 보였다. 그리고 거리를 거니는 한두 사람과 이따금 도로를 달리는 차가 보였다. 아우내 장터에 들어서서는 여지없이 돼지 분변 냄새가 풍겼다. 불켜진 만두의 카페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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