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장터, 유관순 열사 사적지, 매봉산 봉화지, 병천 오일장 그리고 병천천.
병천천에는 돼지 내장을 씻은 똥물이 흐른다. 병천면 순대 골목에 늘어선 순대집에서 돼지 내장을 씻은 똥물이 하수도를 타고 병천천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병천 도처에는 돼지 분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언뜻 보기에 유서깊고, 좋은 의미로 서민적이어서 평화롭기까지 한 고장이지만, 돼지 내장 씻은 똥물을 아무렇지 않게 하수도에 흘려보내고, 면민 누구도 그런 행위를 지금껏 그래왔다는 이유로 달리 문제시 하지 않는 이면 또한 병천은 품고 있는 것이다.
병천교 위에 멈춘 차 안으로 돼지 분변 냄새가 스며들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내 고향인 병천면이다. 다리 위 두 개의 차선 중 면내로 진입하는 차선은 차가 빼곡하게 늘어선 반면, 면내에서 나오는 반대 차선은 한가하다. 다리 끝 병천 로터리로 진입하는 신호가 파란 불로 바뀌었다. 그러나 차는 앞으로 조금 움직였을 뿐 병천교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면민이 적은만큼 유동 차량도 적어 신호가 짧기 때문이다. 그 짧은 신호가 평소에는 별문제 없지만, 장 구경과 특산품인 순대를 맛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되는 매월 1일과 6일,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심각한 면내 교통 체증을 야기한다. 그런날 병천의 교통 체증은 조금 과장해서 대도시의 것과도 견줄 만 하다. 대시보드 LCD화면에 적힌 날짜를 확인한다. 9월 9일 월요일. 오일장이 서는 날은 아니다. 그렇다면 빼곡하게 늘어선 차는 다음주에 있을 추석을 앞두고 봉황리에 있는 풍산 공원을 찾은 벌초객들일 테다. 병천은 봉황리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역시나 늘어선 차들의 번호판에는 각기 다른 지역들이 적혀있다.
“너도 이제 서른다섯이여, 서른다섯. 그게 어디 적은 나이니?”
충청도 사투리와 표준어가 섞인 엄마 말투. 어미가 부자연스럽게 높다. 천안 지방 문학회에서 인정받는 시인인 엄마는 어미를 높이면 그 높이만큼 말에 교양이 담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특유의 말투로 천안역에서부터 병천에 도착하기까지 이십 분가량 구박이 계속됐다.
“알았다고요.”
처음에는 차비 내는 셈 치고 받아 주자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뱉는 말에 짜증이 묻어난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천안역으로 마중을 나와 달라고 간청했다. 불친절하고 운전이 거칠기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천안 시내버스를 타기가 싫었다. 게다가 버스를 타면 노선이 복잡해 차로 이십 분이면 도착하는 병천까지 무려 오십 분이나 걸린다. 고등학교 땐 참 무디게도 그 버스를 타고 복잡한 노선을 따라 병천에서 천안까지 통학했었다.
파란불.
선두에 선 차가 움직이고 마침내 우리 차도 병천교를 건너 병천 로터리를 지나 순대 골목에 들어섰다. 돼지 분변 냄새가 더 짙어진다. 창밖으로는 ‘만두’가 운영하는 카페가 보였다. 초, 중학교 동창인 그녀를 유난히 살이 희고, 특히 볼살이 포동하다는 이유로 내가 만두라고 부른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서른다섯이 된 지금까지도 그녀는 친구들 사이에서 만두로 통한다.
“엄마, 나 차 좀 쓸게요.”
“그려, 근데 너 보험 안 든 거 알지? 운전자 보험.”
차는 한 동뿐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우측으로는 페인트가 바랜 낡은 아파트가, 좌측으로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단층짜리 상가 건물이 보인다. 단지의 정문과 가장 가까운 상가 건물 좌측에는 변함없이 관리사무소가 있다. 그 옆 슈퍼가 있던 자리도 내가 고향을 떠나기 전과 같이 여전히 공실이다.
“저 슈퍼 자리에는 아무도 안 들어오네.”
“에이, 이제 안 들어오지. 조금만 나가면 마트도 있고 편의점도 있는데…. 너 예전 슈퍼 아저씨 기억해?”
엄마가 말 사이에 뜸을 들이고 묻는다.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는 얼굴이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아파트 13층 비상 계단 철문을 고여둔 돌덩이를 난간 너머로 던졌던 일이 떠오른 것이다. 또래들이라면 난간 높이로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테지만, 그 당시 나는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13층에서 떨어진 돌덩이는 바로 아래 주차되어 있던 슈퍼 아저씨 차 천장에 맞았고 그 충격음에 아파트 단지가 난리가 났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엄마가 수리비를 물어주는 것으로 갈무리되었다.
“아저씨 돌아가셨죠?”
내가 말을 돌리려 하자.
“그때 너 때문에 내가 물어준 돈 지금 갚어.”
엄마는 집요하게 말을 물고 장난을 치고야 만다. 그러고는 깔깔 웃는다. 나도 참지 못하고 피식 웃는다.
엄마는 단지 내 너른 곳에서 차를 돌려 관리사무소 앞에 정차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둔 채로 차에서 내렸다. 나도 차에서 내려 운전석으로 향했다.
“진짜 조심혀. 사고나면 니 아빠 난리 난다. 난리 나.”
엄마가 다시 한번 당부하며 차키를 건넸다. 나는 키를 받아 운전석에 앉았다.
“아빠 오시기 전에 들어와. 인사는 드려야지.”
창문 너머 엄마가 소리친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차를 출발했다. 단지를 벗어나 지나온 길을 되돌아 운전했다. 그러나 순대 골목을 앞두고 핸들을 틀어 면민만 아는 지름길로 들어섰다. 돼지 분변 냄새도 교통 체증도 싫어서.
만두의 카페 앞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텅 빈 카페를 여직원 한 명이 홀로 지키고 있었다. 나는 여직원을 알고있다. 여직원도 나를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살 터울인 우리는 같은 시기에 같은 중학교에 재학했다. 전교생이 삼백 명도 되지 않았던 병천중학교.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녀는 갓 중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나는 학생회장이었고 내 친동생이 그녀와 같은 학년이었으니, 그녀가 나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철저하게 손님을 대하듯 내게 인사를 건넸다. 나 또한 그녀의 인사를 철저하게 손님으로서 받았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만두 아니, 명진이 어디 갔어요?”
내가 주문한 커피를 내리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 잠시만요.”
그녀는 말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내 다시 나온 그녀의 뒤로 만두가 뒤따른다. 만두가 실눈을 게슴츠레 뜨고 나를 본다.
“뭐여?”
나를 알아본 만두의 얼굴에 웃음이 퍼진다. 여자치고는 걸걸하고 낮은 목소리와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 그리고 목소리에 걸맞는 풍채. 흰 피부와 통통한 볼살도 여전하다.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쓸어 정리하며 나를 향해 걸어온다.
“잤냐?”
만두는 내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여직원에게 묻는다.
“아니, 뭐여? 야, 정아야, 얘 언제 왔냐?”
정아. 맞다. 만두가 운영하는 카페의 여직원이자, 우리의 중학교 후배인 여자의 이름은 정아였다. 동생이 중학생 때 같은 학년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한 적이있었다. 그 사람이 정아였다.
“방금 막 왔어.”
정아가 답하기 전에 내가 가로챈다. 만두는 대뜸 주먹으로 내 배를 후린다. 배를 맞은 나는 과하게 밀려나는 체 했지만, 그것이 마냥 시늉만은 아녔다.
“아니, 올 거면 전화를 해야 될 거 아녀!”
만두가 병천 어르신들이 으름장하듯 말한다. 만두의 뒤로 정아가 우리의 재회를 재밌다는 듯, 흐뭇하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띠고 본다. 그러는 그녀의 허리 높이 스탠드에는 내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여있다. 기본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결제했는데 큰 사이즈로 만들어 주었다. 정이 많은 만두가 친구들에게는 기본 가격만 받고 큰 사이즈로 음료를 만들어 내라고 정아에게 일러두었을 테다.
“아, 왜 말이 읎어? 잘못혔어, 안 혔어?”
만두는 이제 나를 추궁한다. 부러 과장한 사투리가 그녀의 걸걸하고 낮은 목소리와 어우러져 정말 병천 어르신 같기도 하다.
“했어, 잘못했어.”
내가 겁을 먹은 체하며 만두에게서 물러나며 답하자.
“그려? 그럼 저녁에 한잔 해야지?”
그녀는 대뜸 술 자리를 제안한다. 그럴 줄 알고는 있었지만, 참 맥락도 없다. 나는 여전히 겁을 먹은 체하며 고개만 끄덕인다.
“저… 커피….”
정아의 말에 만두가 스탠드에 놓인 커피를 가져와 내게 건넨다. 커피를 받아 든다. 그리고 누가 말할 것도 없이 나와 만두는 카페를 나와, 밖에 놓인 재떨이 옆에 선다.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만두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낸다.
“야, 더럽게 바빴나보다? 몇 년만이여?”
병천 어르신들을 흉내내던 만두의 말투가 본래 자기 말투로 돌아왔다. 그녀가 말하는 사이, 그녀의 코에서는 담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주홍빛 가을 햇살을 받은 담배 연기가 평소보다 더 선명하다. 그러나 이내 달아나듯 흩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 이 년 만인가?”
“명절 때도 안 왔었냐?”
“왔으면 연락 했지.”
“니가 오늘은 연락하고 왔냐?”
만두는 웃고있지만, 내심 섭섭해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묻는다.
“그래서 병천에는 언제까지 있을 겨?”
요즘 세대는 사투리를 많이 안 쓴다고들 해도 뭔가를 물을 때 어미를 ‘겨?’로 끝맺는 걸 보면 만두도 영락없는 충청 사람이다.
“한동안 있으려고. 나 회사에서 쫓겨났다.”
“뭐? 짤렸어?”
“썰은 이따가 취하면 풀게. 애들 좀 불러. 얼굴 좀 보게.”
“다 나가고 없지. 다음주 추석이나 되야 올 걸? 아, 영준이 있겠다.”
“불러 봐.”
“그려, 이제 뭐 하냐?”
“그냥… 오랜만에 좀 돌아 보려고.”
만두와 내가 그녀의 카페를 나왔을 때 저 멀리서 걸어오던 한 무리의 벌초객들이 만두의 카페로 다가온다. 그들이 신은 장화에는 흙이 잔뜩 묻었다. 그런 채로 발을 털지도 않고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하… 바닥 작살 나겄네.”
만두가 벌초객들의 귀에 들리지 않게 볼멘소리를 하며 담뱃불을 무심하게 툭 뗀다.
“야, 가. 이따 전화 할게.”
그녀는 한마디 말을 무심히 남기고 부리나케 카페로 뛰어 들어간다. 벌초객들에게 볼멘소리를 했어도 그녀는 내심 그들을 반겼을 테다. 만두의 카페 주변으로 전에는 없던 프랜차이즈 카페 두 곳이 보인다. 손님이 한 명도 없던 만두의 카페와는 다르게 북적인다.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삼켰다가 뱉는다. 쓰다. 북적이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사이에 두고 자기 카페의 살풍경을 바라보는 만두의 심경도 이 담배 연기만큼 씁쓸했을 테다. 그 살풍경을 눈에 담기가 싫어서 아니, 눈에 담기가 벅차서 직원을 홀로 두고 사무실로 피신해 눈을 감았지 싶다. 먹고 산다는 것이란 참으로 고된 것이다. 필터까지 타들어간 꽁초를 버리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