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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7. 2024

6


뒤에서 이제 막 두 번째 담뱃불을 붙인 영준이 부른다. 무시한다. 

만두는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고 있다. 그 앞에 앉는다. 

“영준이는?”

만두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묻는다.

“몰라, 한 대 더 피고 들어오나보지. 야,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만두가 테이블에 휴대전화를 덮어 두고 나를 본다. 

“그게 뭐라고 왜 그렇게 궁금해하냐, 도대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되묻는 그녀. 

“궁금하지! 궁금하지, 당연히. 너, 영화 보다가 갑자기 끊으면 안 궁금해? 궁금하겠지? 나도 그래.”

나도 답답함에 말에 화가 슬쩍 묻어 나온다.

“안 돼, 너 이거 글로 쓰려는 거잖아.”

들켰다. 알고 있었구나. 아니, 모를 수가 없다. 셋이 만나고 나서 지금까지 나는 겉돌았다. 농담을 할 때도 서로 근황을 얘기할 때도. 겉으로는 적극적인 척, 사실 속내는 시큰둥했다. 그런데 만두가 현영의 얘기를 시작하고나서부터 내 태도는 부쩍 다르다. 내가 봐도 그렇다. 더구나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며 나는, 사건을 다뤄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또 그럴만한 소재가 없다고, 아는 사건이 있냐고 만두와 영준에게 묻기까지 했다. 

“안 써. 안 쓸게. 그냥 얘기만 해 줘.”

때 늦어 둘러대 봐야 씨알도 안 먹힐 테다. 만두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이 방법말고는 만두의 입을 열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역시 만두는 두꺼운 입술을 굳게 닫아 잠그고 엎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다시 들었다. 그때 영준이 들어와 만두의 옆에 앉았다. 

“지 다 폈다고 혼자 두고 가냐?”

그는 앉자마자 내게 따지듯이 묻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만두야 아니, 명진아. 조명진! 나 진짜 안 써. 아, 그리고 어차피 나도 다 아는 얘기야. 나도 병천 사람이여.” 

오랜만에 충청도 사투리까지 써가며 만두에게 호소했다. 내가 영준에게 그랬듯, 만두도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하고 내게 대꾸하지 않는다.

“뭐, 아까 그 얘기? 맞어. 상우도 병천 사람인데 다 알겠지. 야, 모르는 게 이상하지. 그리고 나도 오랜만에 들으니까 가물가물하더만.”

김영준, 나이스. 만두가 한숨 쉬며 다시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엎어둔다.

“그러면 상우 너, 진짜 글로 안 쓸 거여?”

만두가 묻는다. 나는 이참에 더 세게 나간다.

“아, 안 써. 그리고 설사, 내가 동네 사람 얘기를 글로 써서 냈다고 치자. 그럼 그 후에 내가 병천 올 수나 있겠냐? 그리고 나도 다 아는 얘기라니까. 거, 화영이.” 

“현영이.”

아뿔싸. 다시.

“그래, 현영이! 현영이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시고….” 

나는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리며 아니, 말끝을 흐릴 수 밖에 없는 나는 영준을 본다. 영준아, 김영준!

“그려, 맞어. 돌아가셨어. 걔, 어무니는 돌아가셨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야, 얘도 아네. 그냥 얘기해! 뭘 숨겨. 너만 아는 것도 아니구만. 안 그러면 내가 한다?”

김영준, 두 번째 나이스.

“아, 알았어. 상우 너 진짜 글로 쓰지마라. 쓰면… 나 진짜 너 다시는 안 봐.”

먹혔다.

“아, 진짜 안 써. 맹세하고 진짜.”

내가 다짐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한다. 그러자 만두는 내키지 않는 다는 듯 한숨을 쉬고 비로소 입을 연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너네 어머니께서 너한테 집에 가 있으라고 소리지르신 데까지.”

“아무튼 그러고 집에 돌아 왔는데….” 

만두는 그 당시 기억을 되짚는 듯, 입을 다물고 허공에 시선을 던진다. 

“그래, 돌아와서… 명재! 명재 불렀지. 근데 이 새끼 게임하고 있더라?”

“무슨 게임, 롤?”

게임에 관심이 많은 영준이 끼어들어 묻는다.

“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번에는 만두 대신 내가 나서서 영준을 막는다. 만두의 입을 여는 데 영준이 큰 도움이 됐지만, 그건 그거다. 만두도 영준에게 눈을 흘긴다. 영준은 말없이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은다. 만두가 영준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테이블에, 정확히는 소주잔에 둔다.

“명재한테 물어 봤지.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 난리가 난 거냐. 그랬더니 현영이가 임신을 했대?”

“임신? 저….” 

하마터면 저능아라는 단어를 뱉을뻔한 입을 멈춘다. 얘기하는 내내 만두는 현영이라는 친구와 그 가족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들을 낮잡는 말을 뱉었다가 만두의 심기를 건드려 그녀가 입을 다물기라도 하면 낭패다. 

“조금… 부족한 친구였다며?” 

나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묻는다.

“지능이 부족하면 임신도 안되냐?”

만두가 따지듯이 되묻는다.

“아니, 내 말은, 남자 친구가 있었냐는 거지.”

“너, 솔직히 말해. 이 얘기 모르지?” 

만두는 내게 물으며 빤히 본다. 이내, 됐다. 입 싼 내가 병신이지, 하고 체념하듯 중얼거리고는 큼큼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는다. 

“현영이가 남자 친구는 없었고, 너, 남경찬이라고 알아?” 

남경찬. 알고 있다. 병천중학교 동문으로 우리 한 학년 아래. 현영과 동갑인 그는 키가 작고 왜소하지만 호전적인 성질머리 하나로 또래들 사이에서 일진 행세를 했었다. 사실 전교생 삼백 명으로, 한 학년 당 백 명 남짓인 중학교에 일진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재학생 수가 적은 만큼 학부모들 또한 서로 가깝게 지냈다. 그런 협소한 지역 공동체 안에서 잘못을 저지르기라도 하면, 단순히 선생님들의 체벌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녔다. 문제를 일으킨 가해 학생은 피해를 준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고 그로도 모자라 병천면내를 돌아다닐 때마다 소문을 들은 어르신들에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남경찬은 친구나 후배들의 금품을 갈취하거나 폭행하는 등 일진 행세를 했다. 

“알지, 남경찬. 병천중학교에 도시에나 있는 일진 문화 도입한 게 걔잖아? 걔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병천 바닥 엄청 좁은데.”

“걔, 병천 사람 아녀.” 

내 의문에 답한 건 만두가 아니라 휴대전화를 하고 있던 영준이었다.

“걔, 초등학교 삼 학년인가 사 학년 때 전학온 애여.” 

그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보며 덧붙인다. 

“맞어. 서울에서 전학온 애여. 심지어 편모가정이었어. 그래서 걔 어미가 우덜 부모님들이랑 친할 수 없었던 거고. 아, 안 그러냐? 애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 구하려면 일해야 하는데 친해질 시간이 어딨어. 그래서 지 자식새끼가 뭔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지도 모르고 내팽개친 거지. 살려고 그런 건 알겠는데 적당했어야지.” 

만두의 말에는 남경찬의 어머니를 향한 적개심이 다분히 드러났다. 만두가 소주잔을 들어 비웠다. ‘크.’ 하는 소리를 낸다. 이미 한참 전에 미지근해진 소주에서 쓴 맛이 올라왔을 테다. 슬슬 취기가 달아나는지 머리가 아파왔다. 두통을 가시기 위해 소주가 필요했으나 잔에 담긴 미지근한 소주를 입에 머금기가 겁났다. 그러나 새 소주를 따르려면 차있는 잔을 비워야만 한다. 하는 수 없이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쓴맛이 입에 퍼진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내뱉은 숨에서 알코올 냄새가 올라온다. 그 맛과 향을, 식다 못해 이제는 차가운 김치찌개 국물을 재빨리 입안에 퍼 넣어 덮는다.

“그래서, 남경찬 걔가 현영이 임신 시킨 거야?”

나는 입에 딸려들어온 조각난 김치를 씹으며 만두에게 물었다.

“그건 몰라.”

“모른다니? 그럼 남경찬 걔 얘기가 왜 나와?”

“그러니까 현영이를 임신시킨 씨가 남경찬 건지, 그 똘마니들 건지 모른다고. 남경찬, 정연호, 김찬주. 이 세명이 동시에 했거든. 야, 술.” 

만두가 영준에게 소주잔을 내민다. 영준은 옆에 놓인 소주병을 든다. 

“야, 잠깐만, 잠깐만.” 

식은 술을 따르려는 영준을 말리고 나는 술 냉장고로 가, 새 소주를 꺼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식은 거 역해서 못마시겠다.” 

새로 가져온 소주병 뚜껑을 열어 각자의 잔에 찬 소주를 채운다. 셋의 잔이 테이블 위에서 부딪혔다 떨어진다. 찬 액체가 식도를 타고 몸속으로 흐른다. 두통이 무뎌진다. 서서히.

“그러니까 남경찬, 정연호, 김찬주. 이렇게 셋이 친했었지? 나도 기억나. 그 셋이서 현영이 한 명을 강제로 했다?” 

소주잔을 내려 놓고 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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