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어
2024년 2월, 아이유의 신곡이 나왔다.
Love wins all
매일밤 흐느끼던 나에게
토닥여주던 인상깊은 노래.
세상에서 꼭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우울과 절망으로 범벅이던 내게,
그럼에도 이겨낼 수 있다고 위로했던 노래.
결국 그럼에도 어째서 우리는, 서로일까.
...
아픈결말일까 길 잃은 우리 둘
딱 문장 그대로였다.
우리의 시간은 멈춰버렸다.
살면서 처음 감내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나는 요로결석에 걸려버렸다.
칼로 허리를 베어버리는듯한 통증으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했다.
머릿속도 복잡했지만
처음 겪는 고통에 나는 울부짖었다.
엄마는 간호사에게 반복해서 진통제를 요청했고,
나는 결국 모르핀을 맞았다.
머리에 정을 맞은 듯 핑 도는 어지러움에
수십번을 구토했고
이대로 죽는걸까 생각했다.
그렇게 첫번째 밤은 고통스럽게 지나갔다.
두번째 날이 밝았다.
엄마는 사무실에 출근하셨고,
오빠는 내 외래진료를 묵묵히 함께 다녔다.
나는 어느새 그에게 의존해있었다.
돈빼고는 나에게 끔찍한 그니까.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서
우리 사이는 아주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줄 알았다.
여전히 지지부진한 동생의 수술상황을
알아보겠다고 오빠가 춘천으로 다시 가기 전까지는.
2차 석쇄술을 진행하는 날,
큰 눈발이 휘날리는 어느 겨울 날,
나는 돌연 그의 고향행이 못마땅했다.
알고는 있었다.
여동생의 지지부진한 암치료가
대체 어떻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알아보러간 것을.
하지만 텅빈 비뇨기과 진료실에서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는 나와
어느새 나의 파혼사유들이 옹기종기
모여 연말을 보내는 그 대조가,
나의 역린을 건드렸다.
사실 누적되어 있었다.
지난 고백으로 크게 싸운 날,
나는 새벽에 온 카톡 하나가
나에대한 사과인 줄 알았는데
대체 이놈의 식구는 아들없으면 안 굴러가는지
여동생의 딸이 아파 응급실을 가고 있다고
그 먼 화천을 가봐야한다던
새벽4시의 문자부터가
나를 서서히 화나게 만들고 있었다.
평상시대로였다면
어떡하냐며 가보라고 했을 나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우리부모님을 마주했던 그 상견례를 잊지 못한다.
그는 그의 가족과 함께 항상 붙어서
결혼 후에도 나에게
우린 세트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끈끈하거나 화목하지 않다.
암환자 둘에 부정맥 수술을 겪은
아픈 사람 많은 식구들이었지만,
각자의 인생의 몫을 짊으면서
서로를 도와 살았지,
한 사람의 인생을 보증삼아, 지렛대삼아서
살아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건 우리 아버지가 경제생활에 있어선
책임감있게 임하셨던건지도 모르지만,
살아생전 보는 가족형태에
나는 너무도 끔찍한 거머리처럼 느껴졌고,
이 미친세상에서 나만 특별하게 산건지,
그가 특이한 기구한 삶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미친듯이 그와 한바탕하게 된다.
그의 가족들까지 눈치챌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