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그리고 다시 해보는 결혼(2)

악몽같았던, 추웠던 그 겨울 이야기

by 레인부츠

2023년 11월,

찬바람이 휩쓸고 다니는 늦가을쯤에

나는 운좋게도 행복주택에 당첨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보증금을 내자고 말했다.


어딘가 어색해보이는 그 사람.

여동생의 수술비가 필요하니, 먼저 내라는 그.

400만원이 없어서 먼저 1,500만원 가량을 혼자

다 부담하라는 게 처음엔 너무 부당하다 생각했다.

그는 8,000만원을 모은 남자였으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도 7,000만원을 모았기에 많은 부담은 아니었지만,

알게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든 건 사실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서로가 홀린 듯이 사랑에 빠졌던 우리였지만,

돈 앞에서 그는 내가 알던 남자가 아닌 듯 현실감이 너무도 없었다.


보증금을 스스로 내고 나서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그에게,

나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그는 정말 많은 말을 삼킨 듯

저어... 저어...

초조해하는 표정과 입술만 깨물었다.


나는 그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 오빠 통장 보여줘.

- 어?

- 오빠, 통장에 돈 있는거 맞아?

- ...


그와의 오랜 실랑이를 벌였다.

아무도 오지 않는 컴컴한 주차장에서

나는 답을 얻기 위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걸 느끼며,

반복해서 그를 괴롭혔다.


- 솔직하게 말해, 대체 뭐가 있는거지?


나는 그에게서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진실을 듣게 되었다.


그에게 8,000만원은 온전히 모은 돈이 아니었으며,

어머니가 보태주신 전세 보증금을 포함한 돈이었고


그 중에서도 일부는 숨겨진 빚(대부)를 위해서

상환을 이미 해버렸다는 걸.


나는 빠르게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 내 인생의 난이도가 쉬운 적은 없었다.

매번 온 진심을 다해 달려봐도 돌아오는 건 그 중 일부였으니까.

그래도 아득바득 살아보겠다고 달려봤기에,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잘 살아왔으며

어딜가나 잘 살겠다는 평을 들었던

그야말로 노멀한 나의 삶이었다.


그 평온했던 나의 삶에

정말 크나큰 운석이 떨어져

나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신께 감사할 정도로 너무 사랑했던 시간들.

죽음이 두려울 정도로 매일매일 흘러가는 시간들이 짧게 느껴졌던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진심인 사랑이었다.


연이란 게 이런걸까

마음 깊숙이 저 사람이 나의 반려자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생각이

그가 내 앞에 걸어와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랬던 사람이

내 앞에서 너가 보던 사람은

허울뿐인 사랑이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의 거짓보다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내가 생각하고 싶었던 대로 재단하며

미친듯이 사랑했던

나에 대한 어리석음에

견딜 수가 없었던

2023년의 겨울이었다.


나는 무슨 정신으로 집에 온 지 모르겠다.

길을 한참을 헤매다가 새벽 1시에서야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늦은 귀가를 싫어하셨던 우리 엄마는

여김없이 또 늦은 딸을 타박하려

현관에 들어섰지만,

하얗게 질려버려 초점을 잃어버린 큰딸의 얼굴을 보곤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현관등이 꺼지고 정적이 일었다.

엄마는 딸의 불행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다.

대답이 없는 딸에게 다그치듯 묻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계속 소리내며 엉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