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감성을 새긴 실링왁스
실링왁스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수원을 대표하는 풍경들을 인장에 담아보고자 했다. 장안문, 화성행궁, 성곽길.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상징적인 장소들이었지만, 어쩐지 빠져 있는 감각이 있었다. 단순히 풍경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인물이 정조대왕이었다. 수원과 가장 깊은 인연을 지닌 군주.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지키고, 백성과 가까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화성을 세운 인물. 정조는 정치뿐 아니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직접 그림을 남길 정도로 예술적 감각이 뛰어났고, 지금도 화성행궁에 남아 있는 단청과 장식들은 그의 미감을 증언한다.
정조대왕은 편지를 즐겨 쓴 군주이기도 했다. 신하들에게 보낸 어찰에는 수원의 건설과 운영을 향한 세세한 구상이 담겨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에 소장된, 유수 조심태에게 보낸 편지 역시 그 흔적을 보여준다. 나는 상상해보았다. “만약 정조대왕이 오늘의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편지에 어떻게 답장을 써야 할까? 200년 전의 마음을 지금 우리의 언어로 되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정조대왕으로부터의 편지〉라 붙였다. 단순한 디자인 제품이 아니라, 효심과 예술성,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편지의 상징을 담고자 했다. 작은 인장이지만, 그 속에는 수원의 역사와 정조의 마음,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함께 새겨져 있다.
물론 제작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인물 중심의 디자인은 대중성이 낮다는 조언도 있었고, 금형 제작비는 예상을 넘어섰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수차례 구성을 바꾸고 패키지를 조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감성과 기억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 결과 세 가지 콘셉트가 완성되었다. 정조의 마음을 상징하는 〈정조대왕으로부터의 편지〉, 화성행궁의 예술성을 담은 〈화성행궁의 단청〉, 수원의 자연과 계절을 기억하는 〈선추의 향기〉. 작은 도장이지만, 그 속에는 시대와 장소,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의 결이 살아 있다.
곧 각각의 디자인을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굿즈를 넘어, 오래된 것과 지금을 잇는 하나의 매개가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