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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간수집가 LSH Oct 31. 2020

낡은 전셋집 리모델링 프로젝트

전셋집 어디까지 정을 줘야 할까

전셋집 어디까지 정을 줘야 할까


공간 디자이너로서 오래된 집을 고쳐서 살아보고 싶다는 야망과 남의 집을 고쳐줘서 뭐하냐는 인식은 나를 꽤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러다 발상을 전환했다. 다시 짐을 싸 나가야 할 집이라면 나의 100%를 쏟지 않아도 된다는 관점은 오히려 나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구옥과 전셋집이라는 특별한 조건 때문인지 인테리어 콘셉트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빈티지와 미니멀

오래된 구옥이라 이미 빈티지의 베이스를 충족시켜주고 있었고, 전셋집이라면 응당 미니멀해야 모든 것이 간편해진다는 점에서 심플하게 가기로 했다. 구옥의 빈티지함을 살리되 힘을 뺀 모던함을 조화롭게 절충해나가고 싶었다.




전세 구옥 개조 프로젝트



1. 삶의 질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면 큰 창문을 바꾸자

나는 구옥의 유리창문을 좋아한다. 오래된 창문의 레트로 한 디자인은 지금은 흉내 낼 수 없는 풍치가 있다. 하지만 풍치만으로는 부족하다.


처음 집을 봤을 때 이것저것 고치고 싶은 부분이 눈에 보였지만 그중에서도 거실과 발코니를 오가는 창문을 가장 먼저 손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실과 발코니 사이에는 무릎까지 오는 턱이 있었고 얇고 큰 창문을 통해 외풍이 들어올 것 같았다. 이 큰 창만 이중 새시로 교체해도 삶의 질이 몇 단계는 오를 것 같았다.


구옥은 겨울에 춥다는 인식이 있는데 두꺼운 이중창으로 교체하는 것만으로도 집의 보온성이 달라진다.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나만의 작은 정원을 꾸밀 예정이었던 발코니는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갈 텐데 턱이 있으면 그만큼 불편할 게 뻔했고.


150만 원 정도의 수리 비용으로 우리 집 인테리어를 하는데 가장 돈을 많이 쓴 대공사였지만 아직까지도 절대 후회하지 않고 있다. 150만 원 정로 내 생활의 편의를 구매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우리 집은 남서향이다. 워낙 창이 크기도 했고 해가 잘 들어와 해가 지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밝은 거실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뭐든 빛이 중요하다. 낮의 햇빛이든 밤의 조명이든.


Before
제작 과정
After : 기존의 네 개의 얇은 문에서  턱을 없애고 두 개의 이중 새시로 교체. 시야도 트이고 편리함을 더했다.




2. 벽은 인테리어의 베이스가 되는 정도로만

심플하게 인테리어를 하려고 한 만큼 벽에는 포인트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가구나 벽에 걸 액자들을 돋보이게 해주는 정도의 베이스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90년대에 지어진 구옥이니만큼 여러 번 벽지를 덧방 했던 데다 화룡점정으로 전세입자가 벽지 위에 파란색 페인트 칠을 해버려서 그 위에 다시 벽지를 바르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보통 전세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벽지를 바꿔서 분위기를 바꾸는 정도의 인테리어를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벽지를 아예 뜯어버리기로 했다. 요즘 지어진 건물들은 외벽은 콘크리트로 지어도 실내벽은 구조를 바꿀 수 있게 보드 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옥 같은 경우는 내부까지 콘크리트로 지어놓은 집이 대부분이라 벽지를 뜯어내도 멋진 콘크리트 벽이 보이게 된다. (요즘 지어진 집들보다 구옥이 튼튼한 이유 중 하나)


처음부터 화이트 또는 노출 콘크리트로 심플한 벽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실과 주방만 화이트로 덧칠을 했고 나머지 방은 벽지를 모두 떼어내 콘크리트를 노출시켰다. 만만하게 봤던 벽지는 5겹이나 덧방이 돼 있었던 터라 정말 개고생을 했지만 깨끗해진 벽을 보며 희열을 느끼게 되는 상태까지 되었다.


노출 콘크리트 특유의 서늘한 느낌은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도화지 같은 존재다. 언제든지 원하는 액자와 장식들로 꾸밀 수 있다. 더 이상 못질을 원하지 않았던 주인아주머니의 말씀이 있어서 액자의 배치는 벽지를 뜯고 난 뒤 발견된 못 자국 구멍을 통해서만 할 수 있었다.  벽지 없는 콘크리트 벽은 언제든지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장식들로 꾸밀 수 있다.


Special Thanks to. 함께 벽지 뜯어줘서 너무너무 고마운 명욱 & 승선.


Before & After 벽지를 완전히 뜯어내고 콘크리트를 노출 시켰다. 손 댈 수 없었던 천장은 화이트로 덧칠했다.


Before & After 침실은 벽지를 뜯지않고 화이트로 덧칠했다.


노출 콘크리트는 벽을 장식하기에 좋은 베이스가 된다.



화이트 벽과 화이트 침구는 심플하다. 침구 위의 빈티지 액자와 드림캐쳐, 그리고 월램프로 골드 포인트를 주었다.





3. 보온성과 심미성을 모두 갖춘 바닥 카펫

나는 장판 바닥이 싫다. 저렴한 가격의 가장 실용적인 바닥재 일지는 몰라도 대리석이나 목재로 프린팅 된 페이크 비닐은 나의 미학적 관점으로는 허용하기 어려운 소재다. 처음부터 바닥 장판은 없애려고 했다. 대체용으로는 원목마루나 강화마루, 강마루, 온돌 마루 등 고가 바닥재가 있고 데코타일, 카펫 등 비교적 저렴한 바닥재가 있다.


데코타일은 비용적인 면에서도 심미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인 바닥재였지만 데코타일을 붙이는 본드가 신체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패스했다. 사무실이나 상업용 인테리어로는 적합할지 몰라도 하우징 인테리어로는 역시 고민해봐야 할 소재인 것 같다.


이것저것 고민하다 카펫으로 결정했다. 장판을 아예 뜯어내도 되고 그 위에 카펫을 올려도 되지만 나는 장판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카펫을 올렸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무난한 컬러의 그레이톤 카펫은 비싼 돈 들이지 않고도 집 전체 컬러톤을 맞추면서 따뜻한 느낌도 연출할 수 있었다. 카펫 바닥을 하니 매일 아침 청소기로 집 전체를 돌리는데 오히려 집의 청결함을 유지할 수도 있는 것 같다.


Before
제작 과정
After : 그레이 톤의 카펫을 깔아 집 전체의 톤을 맞췄다.




4. 타협이 필요한 욕실

욕실은 타협점이 필요했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 지내는 동안 계속 건식 욕실을 써왔기 때문에 한국에서 집을 찾을 때도 익숙한 건식 화장실을 원했다. 하지만 집을 찾는 동안 내가 원했던 욕실을 단 한 곳도 찾을 수가 없다.


집 자체는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욕실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셀프 개조를 해보기로 했다. 일단 좁은 욕실 안에 있는 너무 많은 선반과 큰 세면대, 그리고 어울리지 않은 거울은 모두 떼어내기로 했다. 천장과 벽을 모두 화이트 방수 퍼티를 발라 넓고 밝게 쓰기로 했다. 욕실 샤워기도 새 것으로 교체했고, 세면대는 작은 욕실 사이즈에 맞는 작은 세면대로 바꿨다. 너무 큰 나무 프레임의 거울은 심플한 타원의 화이트 벽거울로 교체했다. 바닥은 더 크고 심플한 그레이 톤의 방수 타일로 교체했다.  


건식 욕실로 만들고 싶었는데 욕실 정가운데에 있는 배수구 때문에 도저히 각이 나오지를 않았다. (나는 도대체 배수구가 왜 화장실 정가운데 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샤워 커튼을 달아 공간을 나눴다.


사실 욕실 개조가 제일 힘들고 고생을 많이 했다. 어떤 이는 너무 많이 고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매일 내 몸이 닿는 욕실을 어느 곳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청결하고 아늑하게 만들고 싶었다. 욕실 리모델링을 맡겼다면 꽤 큰 비용이 들지 모르겠으나 전부 셀프 개조로 했기 때문에 몸은 고생했지만 욕실 공사 비용은 약 40만 원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제작 과정
After : 천장과 벽을 화이트 톤으로 맞추고 세면대를 작은 사이즈로 바꿔서 밝고 넓게 사용할 수 있게 바꿨다.




많은 사람들이 전셋집에는 아무런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내 집이면 얼마든지 뚝딱뚝딱 바꿔보겠지만 전셋집이라면 예산과 원상복구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니까. 하지만 나는 공간 디자이너로서 내가 살고 있는 그 순간만큼은 쾌적하고 여유롭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아주머니와 개조 여부의 협의를 보고, 한정적인 예산도 정했다.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 내 집이건 그렇지 않건 일단 오래된 공간이라는 것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물려받은 이 집을 소중히 다듬어서 다음 세대까지 이어주면 그걸로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빈티지 입문자를 위한 팁



리노베이션을 하기에 오래된 구옥은 그 자체로 좋은 실험 공간이 된다. 본인이 원하는 만큼 디자인해서 개조하면 좋겠지만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오래된 공간을 바꿔보는 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오래된 공간 실패 없이 개조하는 간단한 팁


가장 중요한 건 콘셉트 정하기

내가 하고자 하는 인테리어 콘셉트를 정해야 한다. 심플한 미니멀 스타일을 할지, 화이트 빈티지 느낌의 쉐비 시크 스타일을 할지. 아니면 건축 자재에 따라 목재를 사용해 따뜻한 통나무집처럼 할지, 철제를 써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할지. 콘셉트 없이 중구난방으로 인테리어 해버리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공간이 되어버린다.


핀터레스트라는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 핀터레스트에서 본인이 원하는 인테리어 콘셉트를 정해보자. Vintage house를 비롯해서 Antique house, House Interior, House Renovation, Minimal Interior, shabby schick Interior 등 인테리어 콘셉트 키워드를 검색해 아이디어를 얻어보자.

https://www.pinterest.com/



남겨둘 것 정하기

오래된 공간에는 그것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모든 공간을 새 것처럼 바꿔서 이전의 모습을 지우려고 하면 오히려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타협할 수 없는 공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교체하는 게 좋지만 조금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천천히 오래된 공간에 정을 붙여보자. 원래 있었던 공간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조금씩 내 취향대로 맞춰 가보자.



빈티지 가구나 소품 활용하기

당시의 가구나 소품을 함께 두면 같은 공기를 느낄 수도 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90년대 인테리어를 한 식당에서 결명자차가 든 델몬트 병이 나오는 것처럼. 오래된 공간에 오래된 물건을 곁들이면 숙성된 멋이 더해진다.



잘 모르겠으면 무채색

공간의 컬러는 건물의 본바탕이 되는 원 소재를 그대로 두는 게 제일 좋다. 레드를 더하기보다는 원래 있는 빨간 벽돌을 그대로 두거나, 브라운을 더하기보다는 원래 있는 목재를 그대로 두거나. 하지만 어떤 색을 더해야 한다면 무채색으로 해보자. 유채색을 하는 것보다 덜 인위적일 수 있다.공간의 컬러를 더하는 건 가구나 소품, 식기로 포인트를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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