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LSH Oct 30. 2020

오래된 문화가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기

공간 디자이너가 행궁으로 이사간 이유

공간 디자이너가 행궁으로 이사간 이유


나는 도쿄에서 꽤 오랜 기간 공간 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건축과 인테리어 공부를 한 유학 생활까지 합해서 12년을 일본에서 살다가 작년에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급하게 귀국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에 오게 되었으니 내가 살 집을 구해야만 했다.



오래된 문화가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기


본가에 몇 달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집 찾기에 돌입했다.

지역을 굳이 한정해 두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뭉뚱그려 수도권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에 한정을 두지 않는 대신 집을 구하는 데는 몇 가지 나만의 강박적 조건이 있었다.




1. 오래된 문화가 있는 동네

오랜 타지 생활을 하다 가끔 한국에 들어오면 오히려 한국적인 것에 더 매료되어갔다. 소위 말하는 강남의 새로운 동네보다는 오래된 문화가 있는 강북의 익선동이나 이태원, 합정동 같은 곳이나 수원 행궁이 좋았다. 그렇게 한국에 살면 오래된 문화가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잘 나간다는 신도시들은 이와 같은 이유로 당연히 동네 후보에서 탈락되었다. 파주의 예술가 마을도 좋았지만 더 오래된 문화가 있는 동네로 가고 싶어 이곳도 아쉽게 탈락되었다.



2. 구옥

어릴 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던 나는 가끔 마당이 있는 양옥집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그들의 집을 부러워하곤 했다. 내가 옛날의 영화를 동경하거나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8~90년대 구옥 특유의 호방한 집의 크기라던가 빨간 벽돌, 화려한 천장 조명, 목재 벽 같은 디테일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구옥 집을 찾는 데는 꽤 난관이 있었다. 부동산에 찾아가서 오래된 구옥을 찾는다고 하면 웬만하면 다들 이해를 못 했다. 돈이 없는 거라면 구옥보다는 신축빌라를 하라고 권해주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부동산 업자분들을 설득해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예정에는 없었던 신축 빌라도 실컷 봤지만 도저히 내 마음을 돌이킬만한 집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3. 리노베이션

일본에서 4평짜리 원룸에 살 때부터 늘 내가 사는 집 인테리어 디자인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던 월세집들은 집을 나갈 때 원상복구를 하는 시스템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한국에 와서는 직접 뚝딱뚝딱 리노베이션을 하고 싶었다. 내가 집을 구하는데 난항을 겼었던 또 한 가지의 이유다. 세입자가 집을 고치겠다고 하면 난색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들이 왜 전셋집에 내 돈 들여가며 남의 집을 고쳐주냐고도 한다. 모두가 생각의 차이겠지만 한국에만 있는 전세라는 시스템은 나에게는 혁명적이었다. 전셋집이라면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조건으로 적은 돈을 들여 개조하는 게 나에게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여러 집을 보러 다니다 지금의 행궁 집을 발견했을 때는 공간 디자이너로 나의 영감을 자극하는 집임을 직감했다. 집 내부를 모두 블루와 골드로 칠해놓았던 이전 세입자의 독특한 취향 때문에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다행히 내가 한정적으로 집을 리노베이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위의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다 갖춘 곳은 행궁이었다. 행궁이 조건에 맞아서 결정했다기보다는 같은 조건의 다른 곳이 있었더라도 나는 아마 행궁을 택했을 것 같다. 공간 디자이너로서 행궁은 동네 그 자체로부터 여러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행궁에는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놀라울 공간들이 곳곳이 많다. 오래된 것을 간직하고 있지만 감각은 그 어느 곳보다 젊다.


그런 말이 있다.

나라가 선진화될수록 오래된 것과 바다 스포츠, 고양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미국,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한국 또한 빈티지, 서핑, 고양이가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데 이런 유행이 어쩌면 내가 행궁을 찾아오게 된 방향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행궁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그 시계방향은 정확하게 흘러간다.



빈티지 입문자를 위한 팁


거주지는 정말로 중요하다. 인생에 한 번쯤은 문화가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라고 가볍게 말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집어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빈티지 라이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삐까뻔쩍 새로운 신도시보다는 문화가 있는 레트로 한 동네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다. 이런 곳을 좋아한다면 거주하지 않더라도 빈티지한 매력이 있는 동네를 찾아가 즐겨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당신이 이사를 가야 할 때, 이사할 동네를 고르는 조건 중 하나가 문화와 낭만이 있는 동네라는 카테고리를 끼워주는 정도로라도 생각되면 좋겠다. 가격, 교통편, 생활권, 치안, 남향.. 등 수많은 조건들의 우선순위 카테고리에 밀리더라도.



이전 01화 빈티지 라이프를 시작하는 마음가짐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빈티지라이프 시작하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