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우는 배우 Sep 21. 2023

어느 제자의 도시락

대학생 언니가 뚝딱 싸준 도시락 먹고 신난 교수의 이야기.

  " 질문 없으면 마칠까?"


마감이 와야 글이 써진다고 했던가. 논문 쓴다고 밤을 꼬박 새우고 정말 잠을 한숨도 안 자고 학교를 갔더랬다. 초췌한 거야 당연한 거니 그렇다 치고, 어지럽고 비몽사몽.

분명 출근할 때는 '오늘 너무 피곤하니까.. ' 강의를 좀 일찍 끝내려나 했는데, 진짜 목이 터져라 수업을 했다... 아이들이 시계를 보기 시작한다. 아차!


"그래 그럼 마치자. 수고했습니다. 어후, 나 좀 어지러운데.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어지러워 좀 앉으려는 찰나, 한 여학생이 뭘 안고 내 곁으로 온다.


"응, 왜 왜 뭐 할 말 있엉?"

"교수님, 이거 드세요"

"(반쯤 감긴 눈으로) 뭐야..?"

"1교시라서 교수님 아침도 못 드셨잖아요."

"(매우 놀람) 잉? 진짜? 내꺼야? 너 먹어야 되는데 나 주는 거 아냐? 나 괜찮은데.. 내가 받아도 돼?(횡설수설..)"

"네, 교수님 거예요^^"

".. 힝.. 고마워.. 진짜 잘 먹을게" (이거 머선 일이고.. 울컥)"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친다.

진짜 이 바쁜 아침에 내 도시락까지? 아니면

오늘의 초췌한 내가 불쌍해 보여 자신의 도시락을 내게 양보한 걸까. 어찌 됐건

우리 ㅇㅇ가 평소 티 나지 않게 나를 사랑했네.. ㅋㅋㅋ 대략 나 좋은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텅 빈 강의실, 사진 하나 찰칵-

그 와중에 야무지게 챙긴 나무젓가락도 귀엽고

커피 센스는 더 귀엽네. 그래도 젤 귀여운 건 너.

씻은 김치 쌈밥은 원래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고,

샌드위치는 계란만 들어간 거 같은데 왜 맛나지..


대학생이 싸주는 도시락이라.. 넘나 신선한 것.

우리 귀요미 담주에 맛난 거 뭐를 사줘야 하나.

직접 만든 도시락을 건넨 그 마음, 오래..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하나도 안 남기고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 아주 맛나게.

어느 피곤한 날의 가장 큰 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