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암댁 Apr 20. 2022

눈개승마의 순간

작년보다 봄이 많이 늦다. 그것을 어느 기준으로 보고 있었냐면, 눈개승마의 성장으로! 눈 촉이 올라오고 먹을만한 사이즈가 될 때까지의 시간. 올해는 2주나 늦은 데에다가 중간에 눈까지 내렸으니 눈개승마를 눈 빠지게 기다려야 했다.



눈개승마를 망경산사에서 처음 제대로 맛봤다. 눈개승마는 인삼 맛 두릅 맛 고기 맛이 난다고 하는데, 인삼이라기엔 좀 더 한약 향이 덜하고, 두릅이라기엔 좀 더 쨍한 맛이고, 고기라기엔 더 깔끔한 맛이다. 그냥 눈개승마의 맛이라고 이야기 하고프네. 굳이 맛을 좀 더 매치해 보자면 생으로 살짝 데쳤을 때 잎에서 인삼의 향이 나고, 줄기가 조금 두릅 느낌, 말려서 건나물로 했을 때 고기 느낌이 난다. 참기름보다는 들기름과의 조합이 좋고, 오래 끓여내면 눈개승마 특유의 감칠맛이 돈다.



날이 추워 늦은 만큼 눈개승마의 고군분투를 더 지켜볼 수 있었다. 작년엔 순식간에 갑자기 커버려 천천히 커가는 것을 보지 못했더랬다. 눈이 내렸을 땐 잎 색이 좀 더 뉘리끼리하고, 서리를 맞았을 땐 색이 쨍했다. 건조하고 추웠던 지난 겨울의 날씨가 성장에 힘을 못주고 있는지 신경도 쓰였지만, 그것이 무색할 만큼 날이 풀리면서 일제히 고개를 들며 쭉쭉 올라온다. 역시 강한 생명력!



날이 풀리며 따뜻해지면 정신없이 올라온다. 정말 순간!! 이 순간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눈개승마의 맛난 그 순간도 안녕이다. 망경산사에서는 줄기는 오동통한데 잎이 너무 펴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딴다. 어쩜 딱 딸 즈음되면 고라니가 먼저 쓰윽 먹어버린다. 특히 산아래 부분에 있는 눈개승마부터. 희안하게도 먹는 쪽만 먹는다. 주로 잎을 뜯어먹고 가는데, 달달한 줄기의 맛은 아직 모르는구나 이 녀석! 좀 작작 먹어주겠니. 먹더라도 이것저것 맛보지말고 하나씩 다 먹어주겠니…



눈개승마는 군집생활을 한다고나 할까? 한 뿌리 내에서 계속 눈개승마가 올라온다. 씨부터 심어 키우기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씨앗이 정말 먼지만큼 작다. 씨앗을 심어 2-3년 키워서 종근으로 판매를 많이 하는데, 그것도 또 몇 년 키워야 좀 먹을 만한 두께의 줄기 사이즈가 된다. 많이 베어내지 않을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줄기가 두꺼워진다.



올해는 늦기도 했지만, 코로나다 뭐다 하면서 유독 눈개승마의 순간이 짧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을 몸으로 흠씬 느껴둬야지! 드 넓은 망경산사의 눈개승마 밭을 돌아다니며 딱 먹기 좋은 크기로 큰 눈개승마를 보고 칼로 베어내면서 눈개승마의 색, 줄기의 탄력감, 향 등등을 보고 맡으며 그렇게 몸에 눈개승마의 순간을 기억해둔다. 순간은 몸으로 기억한다. 


눈개승마의 수확의 시작으로 긴긴 겨울이 끝나고 노동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동의 봄이 왔다. 지난겨울 팔다리 뻐근하게 쉬었던 시간이 끝이 났다. 이제 온몸으로 자연을 겪어야 하는 시간이다.



햇빛을 하루 종일 받으며 머리는 바짝 마르고, 옷은 햇빛 냄새가 가득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지만, 저녁 공양을 마치고 명상농막에 오른다. 지는 해를 보며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한 저녁의 상쾌함, 하루의 개운함을 느낀다.  개운함.. 몸을 움직여 느끼는 이 개운함! 그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른 봄, 명이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