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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암댁 Mar 12. 2023

부암댁의 생각_20. 장보기


난 장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가 멀리 장보러 간다고 하면 귀찮아도 따라갔다. 해외를 나가도 꼭 갔던 곳이 슈퍼마켓이나 식료품점이었고, 오일장 같은 곳은 꼭 들려야할 여행지였다. 그렇게 돈쓰는 일이 행복했다. 새로나온 소스, 처음보는 가공품, 신품종 야채, 유행한다는 고급 식재료에 관심을 두었다. 여행가서는 꼭 트렁크 한가득 식재료를 채워 이고지고 왔다.


지금도 여전히 장보러 가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을 가면 꼭 가방 가득 식재료를 채워오지만, 장보는 아이템의 기준이 달라졌다. 지금은 이 식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자라났고 어떻게 가공되어 유통되는지를 알아본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트렌드 따라가기보다 어렵다. 게다가 돈이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 내가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다.


처음엔 대형마트에서 충분히 장이 봐졌다. 집에서 주로 해먹는 음식이 그랬다. 적당히 소스맛으로 버무려 맥주와 와인에 곁들여지면 만사OK. 그러다 요리에 관심이 가지면서 예쁜 채소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마르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해도 말짱(?)했는데 식재료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서 농가에서 박스단위로 구매하기 시작했다.그렇게 하다보니 다 먹지를 못해서 맨날 쨈, 페스토, 장아찌를 만드는게 일이었다. 심지어 한번 냉장고 들어간 쨈, 페스토, 장아찌는 잘 안먹어졌다.


식재료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지면서 나는 식재료에 몹쓸짓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식재료 이해라는 목적 아래 식재료를 막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재료, 미안해) 다시 식재료와 마주했다. 내가 식재료를 잘 알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적합한 조리를 해야하고, 무엇보다 어떻게 커가는지 알아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다달았다. 그때부터 농장을 찾아가고, 어떻게 키워지는지 살펴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렇게 살펴보고 나니,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쓸데없다고 생각했던 국내산 유기농 식재료를 왜 먹어야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나와 같은 땅에서 나서, 같은 비, 바람, 햇빛을 받고 자란 식재료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나와 같은 힘을 가진다. 게다가 유기농으로 온실이 아닌 잡초처럼 자연스럽게 자란 식재료는 자신이 강하게 자란 기억을 나에게 고스란히 영양분으로 전달해준다.


결국 식재료도 인간도 같다고 이해하니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편안하게 온실에서 자란 사람보다 역경을 극복하고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이 ‘맛’이 있듯이 식재료도 하우스보다 환경이 급변하는 노지에서 자란 식재료가 더 맛이 진하고 깊다. 약을 뿌린 식재료에선 약 냄새가 나고, 비료를 잔뜩 먹고 자란 식재료를 그 모양이 크고 기름져 보일지 모르겠지만, 금방 물러지고 상한다. 게다가 그 식재료가 내 입에 들어와서는? 어떤 환경에서 자란 식재료가 내몸에 들어와서 어떤 역할을 할것인가?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하다보니, 원래 식재료는 어떤 모습이어야 했는지,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장보면서 더 따지게된다. 오늘밤 결재하면 내일 오는 시스템도 너무 편하고 급할땐 이용하긴 하지만, 꼭 마음이 찜찜하다. 농장에 가서 어떻게 자라는지 확인하고 나야 마음이 가뿐하고 편하다. 농부님이 식재료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빛과 곱게 따주신 식재료를 보고 나면 정말 자연과 함께 해주신 농부님께 감사함이 절로인다. ‘밥 깨끗이 먹어라, 농부님의 피와 땀이다’라고 할땐 정말 피와 땀이 생각나 별로였는데, 그 촌스럽게 느껴지던 문장이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어릴때, 가까운 마트 놔두고 왜 먼 친환경 매장을 가는지, 또 이 엥겔지수 높은 소비를 왜 하는지.. 난 엄마의 식소비 생활에 불만이 많았다. 어차피 입에 들어가면 똑같은거. 입에선 그맛이 그맛인데 왜저러나. 엄만 왜 저리 맛나다고 호들갑일까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제 엄마가 맛나다고 했던 그 맛을 알겠다. 늘 아프고 힘들었던 엄마한테는 불편한 식재료가 얼마나 더 몸을 불편하게 했는지..이제 알겠다. 엄마가 건강하게 낳아준 덕분에 이제껏 몸 불편한것 모르고 살아오다가 이제 좀 몸 불편해지니 알겠다. 엄마, 미안하고 고마워.



지금은 장바구니 바리바리 싸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장바구니를 채워 어깨무겁게 낑낑 이고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 필요한 식재료는 휘리릭 나가 따서 먹는 #밭보기 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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