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to @farm_woobo
“한국엔 1450여 종의 토종벼가 있었고, 그렇게 다양했던 이유는 밥, 떡, 술, 식초에 알맞은 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다른 쌀을 재배하는 만큼 지역마다 주막의 술의 맛이 달랐을 건데, 그 주막의 수만도 12만개에 달했다. 아마도 12만개의 술맛이 있지 않았을까?” 이 문장에 매료되어 토종쌀에 늘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그동안은 내가 토종쌀을 담을 그릇이 못되어서 언저리에 있었다. 강의와 심포지엄, 전시를 쫒아 다니면서 토종벼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찾아 듣고, 또 한편으로 밥을 짓고, 술을 빚고, 식초를 경험하면서 조금씩 쌀에 대한 맛과 향을 알아갔다.
특히 지난 겨울, 우보농부님께 주문했던 대궐찰, 아가벼, 흑갱 버들방앗간 황진웅 농부님께 주문한 비단찰, 대추찰, 버들벼, 더불어농원 권태옥농부님께 산 돼지찰로 각각의 술을 빚어보면서 토종쌀의 매력을 깊이 알았다. 같은 찹쌀이라지만, 각각의 색과 맛과 향이 달랐다.
그 차이를 확연히 느끼고 나서야 토종쌀의 차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쌀에 따라 입에 쫙쫙 붙는 밥, 무심히 달큰한 밥이 있다. 심지어 김치담글 때 쑤는 풀이 쌀 종류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발효정도와 맛이 달라졌다. 식초와 떡은 잘 할줄 모르지만, 사용하는 쌀에 따라 맛, 향, 식감이 다를 것이 너무도 확실하다. 왜 이렇게 다를까….
이젠 벼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봄에 모내기부터 가고 싶었지만, 나물에 빠져있느라 시간을 내지 못하고 벼베기를 하는 이제서야 토종벼논을 찾았다.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님께서 벼베기 할 사람은 언제든 양평 청운면으로 오라는 피드를 보고 덥석 그곳으로 향했다. 용문역에 내려서 차타고 15분여.. 황색의 논 사이로 흰색, 붉은색, 검은색의 논들판이 보인다. 그 사이로 토종자원클러스터라고 써있는 큰 하우스가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보니 토종벼들과 수확도구들이 보였다.
장화, 모자, 장갑을 챙기고 낫을 들고 들판으로 나갔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의 다양한 벼색, 벼 까락이 있는 것 없는 것, 알이 작고 통통한 것, 길고 얇은 것, 향이 겉으로 나는 것 등등 보기에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벼들이 논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똑같이 심어도 빨리 꽃이 피고 빨리 영그는 올벼(조생종)부터 수확에 들어간다. 양평에서 토종벼를 재배하기로 자원한 농부님들의 논을 돌면서 종자용 벼를 베어오는 것이 일이었다.
벼를 잡고 슥슥 낫질을 몇번 해서 한단을 만들고 그것을 잘 마를 수 있도록 묶어둔다. 그렇게 묶어 벼를 말리고, 잘 마르면 알곡만 털어낸다.(탈곡) 그리고 까락들을 털어내고(탈망) 도정을 하면 우리가 먹는 쌀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눈, 코, 입으로 겪으니 토종벼에 한발자국 더 다가간 느낌이다.
막 도정한 쌀을 잘 씻어 밥을 짓고, 토종벼로 빚은 곡주를 반주 삼아 마시며, 쌀 이야기, 토종이야기, 재배 이야기를 나눴다. 한번 경험한 것으로 내 궁금한 것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모든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수확하는 계절의 햇빛, 바람, 냄새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토종벼를 담을 수 있는 그 날까지. 열심히 보고 듣고 읽고, 만들어보고 맡아보고 맛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