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사가 아니다.
어떤 사람을 요리사라고 불러야 하는건가 싶어 여러사람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명쾌한 답을 들어보지 못했다. 셰프, 요리연구가, 푸드디렉터, 푸드 스타일리스트… 요리를 수단으로 먹고 사는 많은 직업이 있지만, 난 그 어느곳에도 속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요리가 수단이지만 요리로 먹고 살고 있지는 않고, 아직도 요리란?을 생각하며 헤매고 있다. 요리를 대하는 내모습 그대로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 하고 다닌다. 그게 내 현재 정체성이다.
요리를 공부한다고 해서 딱히 체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닥치는 대로 궁금한 것을 파고 들 뿐이다.(가끔 체계라는게 좀 있으면 좋겠다고 반성한다) 어느날은 땅이 궁금하여 농사 책을 파고 들때가 있고, 어느날은 굽다 라는 행위가 궁금해 과학책을 파고 들때가 있고, 어느날은 한 요리사가 궁금하여 요리사의 뒷조사를 할때도 있다. 한참 파다보면.. 결국 자연과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늘 ‘뻐언’하게 들었던 이야기로 정리가 된다.
너무 단순한 이론을..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을 내가 왜 깨닫지 못했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말이 이렇게나 심오한 이야기였구나 하고 무릎을 탁 치곤한다.
최근에 일본의 한 방송을 빠져서 보게되었다. BS Fuji에서 하는 parais de z- the future of deliciousness 라는 방송. 일본에서 화제의 요리사들에게 미래에 남기고 싶은 요리를 묻고 그 요리를 생각하는 과정으로 그들의 삶 행동 생각을 화면에 담았다. 그들이 어떻게 요리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요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 그리고 그들의 요리를 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등을 들으면서 ‘그래 이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안, 프렌치, 일본요리 등 각자가 하는 요리는 달랐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같았다. 다들 자연과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 요리는 재료와 마주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다.
- 그저 매일 같이 반복하는 것에서 깨달음이 있다.
- 신기한것 특이한 것에 본질은 있는것인가?
- 온 몸으로 적당한 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가려낸다.
-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지혜를 써서 조리한다.
- 조급한 마음을 잘 누르는 것이 필요하다.
- 좋은 음식을 판단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방송을 보면서 이거지! 싶었던 글들을 적으며 마음에 꾹꾹 눌러담았다. 아무생각없이 양파를 썰어제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왜 양파가 매울까, 왜 양파가 더 아삭거릴까를 머리와 몸으로 기억하고 양파를 볶으면서도 기름양 소금양에 따라 물이 얼마나 나오나, 불의 쎄기에 따라 어제와 향이 어떻게 달라지나 생각하면서 감각을 세운다. 보기엔 지겨운 일을 매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하루도 같은 하루, 같은 순간이 없다.
그런 생각중에 ‘장인-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라는 책을 집어들었다. 생각하는 손에 대한 이야기를 이때쯤 읽으면 더 와닿을 것 같아서 들었는데 두꺼운 책임에도 쓸데없는 글이 없고 와닿는 글들이 많아 또 한줄한줄 옮겨적고 있다.
요리든 집이든 옷이든 무엇이든 만들어지는 것은 같은 맥락을 가진다. 자연과 사람을 이해하여(머리) 나라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방법(손)으로 자연 속의 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돈, 취향 등등의 이야기로 덮어진 것을 다 걷어내고 나니 업이라는 것, 산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der Wille zur Macht (will to power) 권력에의 의지로 번역했고, 힘의 의지로 번역하는 니체의 말. 찬찬히 살펴보면 macht는 make의 명사형으로 만듬의 의지가 삶이라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삶은 만듦이고 함이며, 나는 만드는 사람이다.
202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