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죽이 궁금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옷만 바꿔입고 시즌2를 시작했다. 이렇게 까지나 적나라하게 보이게 쳐낸다고? 싶었는데, 김어준 답게 죽지않아! 쫄지마! 하고 다시 우뚝섰다. 멋져. 그러나 겸공에서 내눈에 띈건 오직 겸죽. 대체 그 겸죽이 뭐길래 자꾸 맛을 물어보냐고…. 겸죽이 궁금했다.
난 죽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 아플때만 바쁜 엄마가 시간들여 만들어준 따뜻한 음식이라는 추억도 있지만, 그보다 요리 자체로 쌀 한줌이 풍미 가득 진득한 한 그릇이 된다는 것에 난 매료됬다.
죽에 빠지게 된 몇 순간들이 있다. 본죽이 디폴트값이고, 전복죽은 전복 내장까지 통째로 들어가야 맛있다고 느꼈던 때, 제주도에서 자전거 타다 허기짐에 들어갔던 해녀의 집에서 시킨 전복죽이 첫 매료의 순간이었다.
배고파 들어갔는데 그제사 해녀복을 벗으며 주방으로 들어간 아주머니는 시간 좀 걸려요~ 해놓곤 그때부터 압력솥을 올려 칙칙소리를 내더니 40분이 지나서야 전복죽을 내어주셨다. 쫄쫄 굶어 맛있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처음 본 죽의 질감, 은은한 전복향에 눈이 떠졌다. 전복내장이 많이 들어간 전복죽이 아니었고, 엄마가 끓여주던 전복살만 들어간 죽. 참기름도 과하지 않는데 입에 들어간 그 크리미한 감촉. 와…
그 감촉을 잊고 살다가 다시 그 감촉을 만난 것은 장선생님 댁에서 먹은 흰기름죽. 쌀에 참기름 넉넉히 둘러 끓이신 죽에서 다시만난 크리미한 감촉, 게다가 퍼졌는데도 탱글한 쌀알, 무엇보다 잘익은 전분향과 과하지 않은 기름향. 거기에 집간장 휘 둘러 떠먹고, 한겨울 톡쏘게 익은 조선배추김치는 또 얼마나 시원했던지… 마! 이게 죽이지!
죽에서 포인트는 쌀에서 전분이 적당히 나와서 크리미한 질감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표는 크리미!
- 쌀 선택
멥쌀보다는 찹쌀, 묵은쌀보다는 햅쌀, 조생종보다는 만생종이 찰기가 좋다. 이 찰기 그러니까 아밀로펙틴이 크리미한 질감을 잘 만든다. 선택은 개취. 나는 찹쌀만 쓰면 너무 무르고 떡져 싫기에 살짝 찰기 있는 멥쌀을 선택하거나, 멥쌀에 찹쌀을 살짝 섞는다.
* 도구로 압력솥을 선택하면 찰기가 더 나온다. 물론 시간도 5-10은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쌀알 식감이 너무 탱글하다.
- 쌀 불리기
죽은 오래 끓이니 쌀을 안불려도 할 수는 있는데, 쌀을 불리면 전분을 골고루 익히는 것도, 전분이 물로 빠져나오는 것도 용이하여 불을 좀 덜 쓸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불리면 쌀알 다 흐트러진다.
- 쌀 끓이기
정조지에도 ‘잔불을 많이 살렸다가 솥 밑에 모아서 오랜시간 졸이면 쌀즙이 모두 물로 빠져나와 죽은 자연히 뻑뻑해지고 맛이 있다.’라 했다. 쌀이 바르르 끓으면 쌀들이 ‘서로 붙지’ 않게 휘휘 저어주고 ‘약불’로하여 그 상태가 안정되면 뚜껑을 살짝 닫아 익힌다. (완전닫으면 끓어넘침) 불이 쎄면 쌀은 다 터지고 쌀즙은 잘 나오지 않고 수분만 날라간다.
- 뜸들이기
밥을 짓든 국을 끓이든 죽을 끓이든 다 완성된 후 열이 고르게 퍼지는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앞은 흰죽을 처음부터 짓는 이야기 였다면 아래는 기타 선택.
- 기름에 볶기
보통은 불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 투명하게 익으면, 물이나 육수를 넣는다. 참기름, 들기름 등을 넣을 수 있는데, 쌀알들이 서로 잘 안달라붙게 해주는 역할, 전분 크리미 + 물과 기름 크리미 효과로 풍미를 더 올린다. 처음에 넣은 기름은 죽이 완성되면 향이 많이 가라 앉아 기름 향을 느끼려면 마지막에 또 뿌린다. 하지만 마지막에 넣는 기름은 전분의 달달한 향을 다 잡아먹어 과하다는 생각이…. 이 또한 개취!
- 부재료 넣기
부재료는 처음에 넣을 수도, 완성 마지막에 넣을 수도 있다. 처음에 넣는 것은 기름에 야채나 어육류를 볶아 ‘잘 익힌 뒤’ 쌀을 볶는다. 이때 잘 볶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잘 볶아야 재료의 맛이 잘 우러난다. (약불에 뭉근히!) 완성 마지막에 넣는것은 익혀 넣는데 향살리고 싶은 것들. 예를 들면 나물. 나물들은 무쳐서 완성 마지막에 넣고 휘 저어주면 향과 식감이 산다.
- 식은 밥으로 짓기
식감과 전분 용출양으로 따지면 쌀알부터 죽을 짓는 것이 훨씬 맛있지만, 식은 밥으로 하는 것이 아무래도 접근성이 좋기에. 꼭 물에 쌀알을 잘 개어서 쌀알이 잘 떨어지게 하고, 죽처럼 바르르 끓으면 약불로 하고 살짝 닫아 쌀즙이 나오게 시간을 둔다.
물 양을 따로 이야기 안한건 정말 개취라서. 빡빡한 취향은 물적게 훌렁한 취향은 물 많이. 쌀의 4배부터 10배까지 . (나는 4-5배정도, 때때로 다름) 흰죽도 좋지만 전날 남은 국 특히 미역국, 콩나물국에 끓인 죽은 별미다. 봄엔 방풍죽, 참나물죽은 먹어야지! 죽하나 잘 끓여서 간장 종지 하나 놓고, 시원한 동치미나 배추김치 곁들이면 아침이 정말 대접받는기분이다. (내가 만들었을지라도…�)
옛날엔 훌륭한 집 며느리는 스무가지 죽은 쑬줄 알아야한다고 했다한다. 정조지에도 나온 죽만 50여종류. 그렇다고 재료가 특별한것은 아니고 재료는 뿌리부터 채소까지, 어류 육류 생것 말린것 할것 없이, 곡류도 쌀뿐만 아니라 기장 율무 녹두 등등을 썼고, 끓이는 것도 물로 우유로 육수 약초물 등 온갖 것으로 죽을 만들었다.
죽이 이렇게 다양한 조합이 가능해서 재미있기도 하고, 곡류의 전분, 기름의 지방과 물이 열이 가해지면서 이루는 맛, 향, 질감 변화가 신기하고, 뭣보다 희미하고 은은한 속에 꽉들어찬 맛은 놀랍다.
바쁜 사회 생활에 죽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는 음식임은 맞지만, 나에게 들인 시간만큼 나는 단단해지기에, 가끔씩 죽을 끓이며 스스로를 채웠으면 좋겠다. 시간은 헛된것이 없다.
그나저나 겸죽 화이팅.
2023.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