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아니지만, 공을 들여봅니다.
한살림에 늦은 시간에 갔음에도 냉이가 남아있었다. ‘아니 이 핫템이 아직도 남아있다니!’ 싶어 얼른 주워들었다. 신문지를 펴놓고 뿌리에 뭍은 흙을 훑어내니 냉이향이 화아 퍼진다. ‘봄이다!’ 안그래도 시금치가 점점 단맛이 줄어들어 봄이 오나보다 했는데, 냉이 향을 맡으니 꽁꽁 싸맨 겨울이 가나보다 싶다. 뿌리에 흙을 털고 잎과 뿌리 사이의 흙을 긁어내고 맑은 물이 나올때까지 행궈낸 다음 먹기 좋게 뿌리를 쪼개고 잎을 적당히 잘라내기까지 꼬박 30-40분을 손질한다. 살짝 데쳐 식힌다음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니 ‘크으, 맛나다!’ ☺️ 냉이를 손질할 줄 모르고, 급한 마음 다룰 줄 몰라 냉이맛을 포기하고 살았던 그때가 아쉽다.
하루에도 여러번 냄비와 후라이팬을 꺼내서 쓰고 다시 씻어 말려 넣고..빼서 쓰고 넣고의 반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복을 즐긴다. 접시가 차곡차곡 쌓이고, 때론 묵은때를 벗겨내는 일이 속이 시원해지는 일이다. 시간이 없을 때 서두르지 않고, 나를 보채지 않는다. 설거지가 싫어지지 않도록. 잘 씻어 말려 깨끗이 닦아 넣어 잘 정리된 모습에서 스스로가 뿌듯하다�
냄비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수건이나 옷은 또 어떻고. 맨날 꺼내 쓰면 빨아 말려 개서 넣는다. 쓸 수 있게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일에 이렇게 손이 많이 간다. 어릴땐 세탁기 통에서 꺼내서 털어서 너는 일 조차도 그렇게나 귀찮았는데, 이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세제 냄새 안나게 빨아서 보송하게 말려서 각 잡아 접을까를 생각한다. 꽤나 재미있는 일이다. 뜨끈하게 샤워하고 나와 자극적인 세제 냄새 안나고 가슬가슬 말라진 수건에 얼굴을 부비면 얼마나 기분 좋다고!�
밥을 잘 지어보려 한다. 휘리릭 씻어서 버튼 눌러 짓는 밥이 아닌, 잘 불려 불조절 잘해서 촉촉하고 고슬고슬한 밥을 짓는다. 밥짓는 시간 동안 몇번를 신경써야 하는 일이지만 밥을 짓는 동안 냄새 맡느라 닿는 증기에 얼굴이 촉촉해지고 밥냄새에 식욕이 올라온다. 뜸을 잘 들여 주걱으로 휘적휘적하면서 고슬고슬하니 잘 지어진 밥을 확인하며 오늘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겨우 밥지은것일테지만.
냉이 다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밥 짓는 일이 별일 아니어 대충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하나씩 살피고 생각하며 하다보면 꽤나 재미있다. 게다가 별일 아니지만 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삶의 근육도 얻고, 별일 아니지만 냉이 냄새, 밥냄새에서 삶의 행복도 얻는다. 그래서 손을 쓰고 마음들이고 시간을 들여 별일 아닌 것에 공을 들여본다.
2023.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