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미각을 믿지 않는다.
김슨생과 밥을 먹으러가면 음식에 뭐가 들었길래 이런 맛이 날까? 하며 옥신각신 할때가 있다. 그러다 여기에 뭐가 들어갔는지 내기할까?에 다다르고, 뭐가 들어갔는지 물어보면 대개는 내가 진다. 귀신같은 입, 개코의 김슨생은 의기양양하여 아니 이걸 몰라서 어떻게 요리하냐~ 하며 웃으며 놀린다. 그렇다. 난 맛과 향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아… 몹쓸 이 둔한 감각…�
요리를 하는데 필요한 단어는 ‘맛있다’였다. 어떤 맛이나고, 어떤 향이 나고 그런 이야기는 해본적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맛과 향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어서 였는지도 모른다. ‘맛있으면 됐지뭘~’
그러다 맛과 향을 감각하는 세계에 들어갔다. 너무 힘들었다. 살면서 미각에 집중해본적이 없었다. 기껏 집중했던 것은 간을 맞추는 정도. 맛과 향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하고 그만큼 식사 시간에 여유가 있어야 하고, 또 무엇보다 감각에 대한 단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난 감각이 없었고, 시간과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미각을 마주하며 그 감각해야하는 맛과 향이 잘 안 느껴지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제일 힘들었고 어려웠던것은 여론과 내 편견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냥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장금이 같은 그런 당돌함(?)은 나에게 없다. � 누가 무슨 향이 난다고 하면 그런 향이 나나? 싶고, 나는 이거 맛있다 싶었는데 누군가 ‘이거 좀 느끼해요’ 혹은 ‘곰팡내가 나요(보통 술에서)’ 하면 내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오기도 들면서 정말 그런가? 싶은 감각의 대혼란이 일어난다. 감각 자체도 어려운데, 감각을 방해하는 지각도 매번 경계의 대상이다.
이렇게 혼돈 덩어리라.. 남의 요리는 다 감각해 낼 자신이 없고, 그나마 내 요리는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파, 마늘을 빼고, 간은 소금으로만 하고, 육수를 내지 않고 맹물로 국을 끓였다. 그렇게 하면서 재료의 맛과 향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 요리는 여러재료로 ‘맛있게’ 만들었다면, 이 후의 요리는 한 재료의 ‘맛이 있게’ 하는 요리가 되었다. 한 재료도 수분양, 불조절, 소금에 따라 얼마나 맛이 버라이어티 한지… 아직까지도 내공이 쌓이지 못해 맛의 레이어는 쌓지 못하고, 한 재료의 맛을 충분히 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것도 참 쉽지 않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맛있다’라는 단어를 조심하고, 내가 감각하는 건지 취향을 이야기 하는 건지 구분 하려고 한다. 그렇게 미각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미각을 믿지 않는다. 요리도 혼란하고 나도 혼란하기에. 그 혼란 속에서 집중하며 천천히 감각해 보려고 하지만 확신하지 않는다. 그럴 수 밖에…단 한 순간도 같은 순간이 없기에… 재료도 그로 비롯된 요리도 나도. 갈수록… 어렵다�
202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