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암댁의 생각_49. 불, 꾸숑 cussion

by 부암댁
스크린샷 2025-08-21 오전 11.59.40.png


불, 꾸숑 cuisson



‘여기봐 꾸숑 cuisson이 완벽하잖아’라는 어느 유명 유튜버의 이야기에 그때부터 불에 꽂혔다. 대체 어떻게 구워야 완벽한 꾸숑일까!



야채는 제법 굽는다고 생각했는데, 생선이나 고기는 딱히 맛있게 구워본 기억이 없었다. 어쩌다 맛있게 구워지긴 하지만, 뭐때매 잘 구웠는지 몰랐고, 매번 하자니 부엌이 초토화 되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별로 시도할 생각을 못했는데, 꾸숑이라는 단어에 꽂히자 마자 이것저것 찾아 구워댔다.



맨처음엔 흔한 방법대로 기름을 넉넉히 둘러 쎈불에 씨어링을 해 구웠지만, 기름이 많은 고기는 괜찮았는데, 기름이 없는 고기는 대체 어떤 방법을 써도 맛있게 되지 않았다. 기름 없는 고기는 그렇게 구우면 너무 퍽퍽하고 아니면 두꺼운 고기를 사야하는데 그게 마땅치 않았다. 생선도 기름 많은 생선은 어떻게 구워도 맛있었지만, 기름이 없는 생선은 껍질 부분을 노릇하게 굽다가 속살의 촉촉함을 잃기 쉬웠다. 쎈불에 하니 고기는 자꾸타서 기름과 버터를 넣었고, 생선은 튀김옷을 입혀 튀기다시피 구웠다. 고기는 버터맛으로, 생선은 튀김옷 맛으로 맛있다고 했었는지도…



다시 원점에서. 부엌에서 쓰는 불은 너무 쎄다고 하지 않았던가. 불세기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본에 水島弘史 미즈시마 히로시라는 쉐프의 영상과 책을 발견했다. 약불 굽기로 한때 TV에 자주 나오던 셰프인데 유튜브 영상을 보고, 책을 보면서 다시 불에 대해서 생각했다. 쎈불은 육즙을 가두지 않고, 되려 그 쎈불을 쓴만큼 육즙이 날라간다. 약불로 천천히 안에 까지 열을 전달하면서 되도록 수분과 조직의 수축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고기를 구웠다. 개미코딱지 만큼 약한 불에서 자주 뒤집어 천천히 골고루 열을 받게 했다. 불이 약하다보니 얇은 고기여도 속까지 열이 도달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렇게 구웠더니 안에는 핑크핑크 하지만 그렇다고 안익지는 않은 상태의 맛이 되었다. 후라이팬에도 육즙이 빠지지 않았고, 구워서 꺼내 놓아도 육즙이 빠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약불에서 구우니 기름이 전혀 튀지 않았고, 후라이팬이 타지 않아 설거지가 용이했다. 그리고 고기 그 자체, 생선 그 자체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이런저런 것들을 이러저러하게 구워봤다. 고기의 부위에따라 기름이 많고 적은것, 수분이 많고 적은것에 따라 불이 중심부까지 도달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 또 굽는 고기의 양에 따라 양이 많아지면 그만큼 구워지기 보다 쪄지듯 구워지기 때문에 구울때 후라이팬 사이즈 혹은 굽는 양을 조절해야한다는 것, 또 후라이팬의 재질에 따라 적정 온도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달라지고 익힘상태도 달라진다는 것. 이것은 생선에서도 동일했다. 물론 채소에서도.



생각해보면 채소도 결코 센불에서 구운적이 없다. 채소의 조직감이 작아진만큼만 수분을 날리면서 중심부에 열이 도달하도록 천천히 노릇노릇 구워야 맛있다. 쎈불에 후루룩 볶으면 겉은 타고 속은 안익는, 누구는 아삭하게 볶는다고 하고 나는 안익었다고 하는 상태가 된다. 채소에서도 중심부까지 열이 얼마나 천천히 도달했느냐에 따라 맛과 식감이 달라진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물도 데쳐본다. 쎈불에 잠깐 넣었다 빼는 것이 아닌, 한번 끓어 살짝 식은 물에 나물을 넣고, 적당히 위아래가 섞이도록 하면서 나물의 중심부까지 골고루 충분히 열이 도달하도록 만져보고 맛보면서 익힌다. 팔팔 끓이며 데치면 나물 다 물러진다.



불을 다룬다는 것은, 꾸숑은…고기, 생선, 채소가 다르지 않았다. 결국 불을 얼마나 천천히 중심부까지 골고루 입히느냐와 이미 입은 열을 생각해 어느 시점에서 꺼내느냐 이지 않을까. 가장 기본이었는데, 이제사 생각해본다. 왜 매번 원래 알던거, 상식이라는 거, 꿀팁이라는거.. 그것을 한번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을 안했을까…


2023.4.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암댁의 생각_48. 나는 내 미각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