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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댁의 생각_50. 나물 2023

by 부암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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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다시 돌아온 봄. 분주하게 돋아나는 푸르름만큼이나 나도 분주해졌다. 나물 3년차. 이젠 무슨 나물인지 정도는 구분은 할줄 알게 되었지만, 나물을 알고 다룰 줄 아느냐 물으면 대답을 시원스레할 수 없다. 그냥 봄이면 으레 데쳐 조물조물 한그릇 무쳐내면 될일인 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자란 나물을 어떻게 데치고, 간을 얼만큼 하고 얼만큼 손을 대느냐.. 이 모든 것이 변수다. 그만큼 하나로 정의할 수 없고 디테일한 세계라는 것을 올해 더 느끼고 있다.



- 나물의 변화



이제 슬슬 달큰했던 뿌리는 질기고 써지며, 땅에 붙어 자라던 잎들은 서로 하늘을 향하여 잎을 올린다. 겨울 내 추위를 이겨내느라 붉은 기를 머금었던 나물들은 날이 풀릴수록 점점 푸르러진다. 처음엔 그렇게 향이 나지 않던 나물들이 서로 질세라 향을 뿜뿜 뿜어낸다. 땅에서 색과 향이 익어가면, 부엌에서도 색과 향이 변해간다. 나물을 데치고 난 물도 점점 보랏빛이 나다가 노래지고 푸르러지다가 까매진다. 데치고 난 물의 맛은 간간했다가 점점 풀맛이 나다가 쓴맛이 도드라진다.



- 나물의 다름



같은 뿌리의 눈개승마여도 무슨 이유에선지 색이 다르고, 같은 곳에서 자라는 전호나물이지만 빛을 얼마나 받았냐, 땅속이 어떠하냐에 따라 잎모양과 색이 다르다. 처음 나온 잎과 다음에 나온 잎의 색과 모양이 다르고 맛과 향이 다르다. 지난 겨울 추웠던 탓인지 눈이 많이 왔던 탓인지 올해 나물은 유독 아삭하고 맛이 진했고, 따뜻했던 초봄의 명이나물은 맵지 아니했고, 갑작스레 추워진 지금의 나물들은 버텨내느라 정신없다. 단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고, 같은 나물이지만 같은게 한개도 없다.



- 나물을 손질



나물을 손질하는 시간은 오롯이 내시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시간도 훌쩍 흐르고 나물도 금새 다듬는다. 다듬어놓은 나물을 매만지며 내 성격을 고스란히 본다. 꼼꼼하지 못한, 가지런하지 못한, 내 모난 모습을.. 내 모습이 나물 손질에서 이어져 맛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가지런하고 맛깔져 보자고 매번 되뇌여본다.



- 나물을 무침



전엔 나물을 무치는데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나물을 고르고 + 양념을 골랐다.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참기름, 들기름, 별별기름… 맛있었지만, 지금은 양념을 소금과 들기름으로 고정시키고 나물을 익히는 물의 양과 시간, 소금의 양과 들기름의 양을 조절하며 나물을 감각한다. 나물에 따라 봄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달라진다. 양념 고민을 하지 않는다. 고스란히 나물을 맛본다. 나물 레시피는 어떻게 이야기 할 수가 없다.



- 나물과 차



올해 차를 배우면서 나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 차나무가 오래될 수록 맛이 깊어지고 모남이 없는 것처럼 나물도 이제 막 심어나는 것보다는 몇해 자라온 것이 맛이 깊다. 그늘에서 자란맛, 햇빛에서 자란맛의 결이 비슷하고, 시들리고 덖고 말리는 맛의 어딘가와 데쳐서 그늘진데 말리고 햇빛을 쪼리는 맛 어딘가가 비슷하다.



올해도 봄의 언저리에서 나물을 보고 있다. 무쌍하게 변하는 날씨에 정신을 못차리겠고, 눈깜짝 하고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


202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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