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엔 찐심이다
어젠 2023 삼해주 모임 이었다. 년중 공들이는 몇몇 일들중 하나다. 정월 첫 해일에 밑술을 만들고 다음해일에 덧술 그 다음해일에 덧술을 만들어 하지에 그 술을 맛보는 일을 3번 했다.
어리버리한 첫해보다도 어줍잖은 술에 대한 고집도 생기기도 했지만, 매해 술에 더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 첫해에는 참가에만 의의를 뒀고, 다음해에는 토종쌀별로 맛이 어떨지에 대해서 공부한 것을 나눴고, 올해는 누룩에 들어간 잡곡에 따른 맛의 결에 대해 공부한 것을 나눴다. (매번 제 멋대로 강제로 공유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고 들어주셔서 멤버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쌀의 찰기 멥기와 술맛의 밀도, 누룩에 쓴 잡곡의 크기와 색, 효능과 탄단지 비율과 술맛의 결을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중이다. 자연의 복잡성을 내 머리로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가 납득이 되고 매끈하게 설명이 될때까지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나.. 스스로를 채찍질해본다.
난 제법 술엔 진심이다. 그전에도 지금도 난 술에 진심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전엔 술에 진심이라기보다 알콜을 들이붓는 행위에 진심이었고, 술을 만들어보고 나서야 찐심이 되었다. 찐심이 되고 나서는 술을 가려마신다. 아주 꼴깞을 하고 있다. � 재료는 잘 선별한건지, 효모를 따로 넣은건지, 발효에 너무 인위적인 환경을 가한건 아닌지 하는 별별 기준을 각박하게 만들어 술을 째려본다. 찐심이 된게.. 스스로를 너무 피곤하게 만들었다. �
하지만 자연의 힘을 오롯이 받은 재료로 만든 술을 만나면, 내가 이러려고 피곤하게 살았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만든 술은 정말 아트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트! 모든 이론적인 설명들이 자연의 힘 앞에서 다 무너진다. 효모없이 온도 조절없이도 짱짱한 술들이 만들어지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맛과 향을 뿜는다. 내가 너무 세상에 각박한가? 싶었다가도, 그래! 술이 이래야 하는거 아니야? 하고 다시한번 나의 찐심을 다독이며, 나의 화를 바깥이 아닌 나에게 돌리기를.. 되뇌인다.(근데 잘 안됨. 화가 자꾸 표출됨…�)
다시 나의 술의 찐심을 돌아본다. 얼마만큼의 자연의 힘을 가진 재료인지 살피고, 그 힘을 최대한 맛과 향으로 뿜어낼 수 있도록 예민하게 세운 코와 입의 감각으로 섬세한 손놀림을 더해 자연스러움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 인간의 힘을 ‘적당히’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하는 것. 그것이 나의 술의 찐심이다.
2023.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