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오호 도발적인 책 제목이다. 내심 레시피의 문제점에 대해 정확히 꼬집을까? 하는 기대에 책을 사봤다. 의도는 알겠는데 대체 내 문장감각으로는 잘 읽히진 않는다. 이러면 다 못읽는데…(아마도 다 못읽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파악했다. 그니까 그런 대충인 레시피로는 내가 아는 그 음식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라는 거잖아.
자주 듣는 이야기다. ‘레시피대로 했는데 맛이 없었어요. 그 맛이 아니예요.’. 그럴땐 참 난감했다. 레시피를 뭘 제대로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 답답한 마음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냥 쓱 하면 되는데? 마치 미국에서 살다온 친구한데, 영어 문장이 이해가 안가서 이 문장은 왜 이래? 라고 했을때 ‘느낌이 그래’�♀️라고 하는 상황. 그냥 하면 되지! 인터넷에 있잖아!(전혀 공감 안해줌..) 그래서 레시피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레시피 책은 정말 예쁘고 비싼데 읽을거리가 없는 책으로 생각했다. 집에 그 많은 요리 관련 책이 있지만 그래서 레시피 책은 거의 없다.
그런데 한 일본인 요리사가 한 이야기에 레시피 앞에서 공손해 졌다. �그 사람 이야기는 ‘레시피를 제.대.로 따라해본적이 있냐’라는 것이다. 레시피를 쓴 사람이 무슨 의도로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전하고 싶어서 그런 레시피를 쓴건지 생각하면서 보라고…레시피를 그냥 썼겠냐고…레시피의 행간까지 읽으라는 것이다. 단한번도 레시피 앞에 각잡고 서본적이 없는데, 레시피 앞에서 겸허해 져야겠다고 생각했다.(이 요리사는 미즈시마 히로시(水嶋ひろし) 소금, 불, 써는 법만 다룰줄 알아도 요리가 실패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1200% 동감이다))
‘레시피..가 의미가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다시 했다. 레시피를 볼때 왜 이재료를 썼을까 날씨 때문일까?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작물일까? 그 재료와 내가 가진 재료의 맛은 같을까? 양은 왜 이만큼 썼을까? 소금은 왜 이 타이밍에 넣었을까? 처음에 넣은 것과 나중에 넣은 것은 어떻게 차이가 날까? 센불로 하다가 약불로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물을 보글보글 끓여야 할까 바글바글 끓여야 할까? 고기는 왜 상온에 놔뒀다 해야할까? 쌀뜨물을 왜 쓰는걸까? 양파는 투명하게 볶으라고 했는데 어떤 단맛까지 내려고 한걸까? 왜 가볍게만 데치라고 했을까? 재료를 왜 따로따로 익힐까? 등등등…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에 포인트가 있는게 아니라.. 레시피를 보고 그 행위를 왜하는지 어떻게 하면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그런 포인트로 레시피를 다시 보는데, 봐야할 정보가 너무 많다.
재료와 소금만 쓰는… 내가 하는 요리 작태가 심플해지면서 레시피의 재료나 계량보다는 행간이 더 중요해졌다. 불 조절에 이렇게나 맛이 달라지고, 소금 넣는 타이밍에 이렇게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면서.. 특히 이번에 완두콩 삶는것, 감자 삶는 것의 디테일을 감각하면서 난 삶는 것 하나도 제대로 못했구나 싶어 다시 원점으로.. 디테일을 봐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자하나 삶는데에도 감자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리도구, 불, 소금이 아주아주 디테일하게 써있는… 그런 책. 이렇게 다정한 레시피라니! 라는 책을 만나고 싶다.
2023.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