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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댁의 생각_53. 버리는 일

by 부암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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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일



나는 버리는 일이 버겁다. 딱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고, 쓰고 남은 것은 깨끗하게 해서 또 쓰고, 그러다가 더이상 쓸수 없으면 고이접어 버리는 일이 당연한 일인것 같은데도 평생 잔소리를 들어도 잘 되지 않는다.



사서 쓰고, 꺼내 쓰는 건 너무 쉬운데, 다 널부러 뜨려놨다가 하나하나 정리하는 일은 정말 귀찮고 피곤하다. 특히 버려야 할것과 한번 더 쓸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더 쓸 수 있는 것은 씻어 말려 정리해두었다가 다시 쓰는 일이 번잡하고 번거로워 버리고 그냥 다시 살까? 하는 마음이 훅훅 올라온다. 특히 걸래… 이건 쓰고 빨다보면 그냥 일회용 휴지로 닦고 버리는 것이 쉽고도 환경에 더 나은일 아닌가? 하는 착각과 자기 암시를 하기도 한다.



물건 버리는 일은 그래도 눈에 보이는 일이니까 조심하기 쉬운데, 물로 흘려보내는 일은 너무 순식간이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금방 까먹는다. 깨끗하게 한답시고 세제 팍팍 눌러쓰고 헹구느라 물을 끊임없이 흘려보내고, 하수구를 깨끗이 한다고 베이킹 소다랑 구연산를 잔뜩 부어둔다. 친환경이라고 써있으니 마음의 부담이 없고, 광고에서 보다시피 거품이 잔뜩 일어야 뭔가 깨끗해진 느낌이라 더 과하게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베이킹 소다와 구연산이 지인짜 친환경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세제를 쓰는 일이 과연 깨끗하게 하는 일일까? 내가 흘려보낸건 어디로 갈까? 하는 생각들이 들면서 청소, 빨래, 설겆이 등 살림의 모든 것에 이게 맞아?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하던 살림, 외할아버지의 손길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외할아버지는 집을 치우는데 그렇게 많은 쓰레기가 나오지도 않았고, 그렇게 많은 물과 세제와 휴지와 전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쓴건 고이접어두고, 씻어 말려두고, 물 한바가지에 몸도 씻고 마당도 씻었다. 그럼에도 버리는 일에는 조심하고 아까워했다. �



그땐 그랬는데…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쓰레기를 많이 내는 것은 창피한 일이고, 쓰레기를 대충 버리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쓰레기 주워가라고 이야기 했다간 되려 큰소리 들을 일이니 조심해야 된다. 말을 해도 듣질 않고, 고치지 않는다. 되려 당당하다. 나만 스트레스 받아… �‍♀️누가 저리 가르쳐 놨는지 몹쓸게 가르쳐놨다. �



뭐 쓰레기만 그럴일인가, 물만 그럴 일인가. 결국 바다에 버려버렸다. 인간의 편안함을 위해 잔뜩 가져다 쓰고는 대충 갖다 버렸다. 조금 귀찮더라도 번거롭더라도. 조금 더 생각하고 조심했어야 했는데. 윤리적 이유든 환경적 이유든 건강적 이유든 자본과 편의 앞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인간이 편하기 위해 전기를 그렇게 가져다 썼으니, 결국 인간이 온몸으로 그 결과물을 맞아야겠지만, 너무 무식한 방법아니니…



경규옹의 말을 늘 1000% 공감하면서 살고 있는데 ‘무식한 놈이 신념을 갖는 것이 제일 무섭다‘라고.. 요즘 사는게 좀 무섭다. 어렵고 힘든게 아니라.. 무섭다. 무식한 놈이 발가벗고 휘젓고 있다.



2023.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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