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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댁의 생각_57. 음식하며 생각하기_4

by 부암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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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하며 생각하기 4



10. 조리에 너무 과한 불을 쓰고 있다.



이 음식은 어떻게 만들어요? 라는 질문에 항상 늘 가장 강조하는 이야기는 ‘약불로 하세요.’다. 약불도 어떤 약불이냐 다르긴 하지만 일단 약불로 요리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약불의 기준이 다르니, 가스렌지는 가스불이 이맨큼 될정도고, 삼성 인덕션으로 3-4를 씁니다고 말한다. 그러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잖아요! 라고 하시고, 나는 ‘네, 요리는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정색) 라고 말한다. 요리꼰대 탄생…�



처음엔 나도 쎈불만이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쎈불이어야 고기의 겉을 태워 육즙을 가둔다고 했고, 쎈불이어야 깊은 국물의 맛을 뽑아낼 수 있다 했다. 최대한의 불을 썼다. 그런데 난 고기가 맛있게 구워지지 않았다. 기름이 잔뜩낀 고기는 괜찮은데, 근육질은 매번 뻑뻑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어느날 본 유튜브에서‘이 생선의 기막힌 꾸숑(cuisson)을 봐’라는 말에 꽂혔다. 익힘정도가 기가 막히다는 이야기였다. 영상을 보니 겉은 타지 않았고, 생선은 말라있지 않았다. ‘저거.. 대체 어떻게 하는거야.’ 영상들을 미친듯이 찾아봤다. 그때까지도 불을 생각하지 못했다. 불은 후라이팬에 가려 얼마나 쓰는지 알 수 없었고, 버터를 넣는다던가 끼얹는다던가 하는 설명은 해도 불을 약불로 하라고는 못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약불을 외치는 일본인 셰프의 책을 읽었다.



He said, 열에 의해서 수분은 날라가기 때문에, 쎈불로 하면 한쪽 고기 단면이 쪼그라든만큼 고기의 육즙이 고기 위로 다 나온다는 거다. 약불로 해서 수축 속도를 줄여 겉에 육즙이 나오지 않게 해야한다고 했다. 납득! 그리고 해봤더니 촉촉하고 맛있다! �그 뒤로 고기든 야채든 곡물이든 불의 세기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센불이면 기름진 고기는 맛있고, 근육고기는 뻑뻑하다. 약불이면 기름진 고기는 느끼하고 근육고기는 촉촉하다. 센불이면 야채는 겉이 타고 안에는 날 야채의 맛이 남고 식었을때 채즙이 흥건하다. 약불이면 야채는 잘익은 단맛이 충분히 올라오고 식어도 채즙이 나오지 않는다. 센불이면 곡물은 겉이 다 터진다. 약불로만 하면 안익는다. 한번은 끓어야 한다. 센불이면 육수는 맛이 두텁고 잡내도 많고 탁하다. 약불이면 맛이 은은하고 깊고 맑다. 관찰결과, 때때로 쎈불이지만 대체로 약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쎈불은 재료의 변화의 속도를 못맞춰주는 것 같았다. �



맛이 충분히 변할만큼의 시간을 위해 불의 세기를 줄여 시간을 늘인다. 재료가 변할 수 있는 딱 필요한 만큼의 불 에너지를 쓴다. 고 생각하니 조리에 너무 과한 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해와서 불을 피워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돌리기만 하면 불이 나오다 보니 불에 곰곰히 생각하지 못하게 된것이 아닐까. 사실 이 불.. 알고보면 어마어마 한 것인데 말이다.



최근에 ‘불’�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불의 온도, 불을 전달하는 도구의 온도, 그 도구가 만들어지는 온도, 재료의 온도..불의 시작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도구가 만들어지고 세상이 발전했다는 것이 머리로가 아니라 마음에 와닿았다. 계속하여 요리에서의 불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요량이다. 정말 왜 집 가스불에서는 밥이 촉촉한데, 공간 인덕션 밥은 마르는지 말이지!


202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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