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도 세상은 돌아간다

내일의 태양은 무조건 뜬다

by 비누방울

어느날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쌤이랑 얘기하다 울뻔했다.

다시는 그 헬스장 가지 못할 뻔했다.

진짜 헬스장에서 울컥한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우울증에 걸리며 나는 살이 쪘다. 남들은 식욕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잘만 먹었다. 오히려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게 되어 더 많이 살이 쪘다. 25키로 이상 쪘다. 당연히 몸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보다는 헬스장을 찾았다. 문제는 피티를 아무리 해도 내가 살을 뺄 의지가 0인 상태여서 식단이 다 망가졌다. 작년 6월부터 피티를 했지만 그 어떤 트레이너를 만나도 나는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내 의지가 0이니까 어쩔 수가 없다.


지금은 다시 본가로 돌아와 새로운 헬스장에 등록했다. 여기서도 피티를 했는데...결과는 역시나 의지 0인 나에게 변화는 없었다. 근데 이번 트레이너는 좀 특이했다. 내가 처음에 살을 빼겠다고 다짐한 건 언니의 결혼식 때문이었다. 그 결혼식에서 내가 축사도 해야하는데 너무 살이 찐 상태로는 사람들 앞에 서기 싫었다.

그 이유를 계기로 운동을 하는데 트레이너가 그랬다.

"외부동기가 아닌 내적동기를 찾아보는게 어때요?"

'아, 이 트레이너 독심술하나'

사실 그 때 언니의 결혼식은 그냥 나에게 점점 중요성을 잃은 이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언니 결혼식을 목표로 살을 빼는 게 더 의지가 없어지고 있던 와중이었다.

나 또한 내적 동기가 필요하다고 느낀 지점이었다.




내가 너무 식단을 지키지 않고 거의 파괴해 버리니까 트레이너는 나와 얘기를 시도 했다. 그는 혼을 내지도 다른 방법을 강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 말이 뭐냐면 내 삶을 긴급, 긴급하지 않은 일,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로 4분할 해 나누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 1순위 이며 여기에는 건강, 수면 등이 해당된다고 한다. 2순위는 긴급하고 중요한 일 예를 들어 시험, 취업 준비 등이 있다. 3순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이다. 나에게 3순위는 언니의 결혼식이었다. 4순위는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예를 들어 유투브 보기 ott 시청 등이다.


이렇게 인생을 나누며 그는 나에게 3순위의 일을 목표로 다이어트를 하니 당연히 의지가 생기지 않을 거라 했다.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목표를 잘 못 잡은 거라고 했다. 그는 1순위가 내적 동기에 적합하다고 했다.


또, 마인드 맵도 그렸다. 내가 행복을 위해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 행복을 가운데 두고 점점 가지치기 하며 중요하다 생각하는 걸 문장으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이 우울증 환자는 건강, 행복이 1순위가 아니었다. 그저 우울증이 1순위 였다. 나의 감정을 보존하고 방어하는 일이 1순위 였다.

그래서 스트레스성 폭식은 감정을 지키기에 아주 꽤나 괜찮은 방법이어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의 눈물포인트는 그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 1순위들이 언제부터인가 내 인생에서 밀려났다는 걸 인식했을 때이다. 우울 진단을 받고 한창 불안하던 시절부터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행복과 건강 등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우울증이 다 치료되면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행복을 찾고 유지하고 건강을 되찾는 건 또 다른 길이었다. 다시 그 길로 걸어가야 했다.

우울이 끝난다고 만사 오케이 인생 자동 행복 시작은 아니었다.

몰론 나의 우울은 끝나지 않았지만말이다.




이걸 헬스장 상담실에서 트레이너랑 얘기하며 인식했을 땐 어느새 나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였다.

하지만 1달 다닌 헬스장에서 트레이너에게 나의 병력을 얘기할 필요는 없기에 우울은 얘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그냥 갑자기 눈시울 불거진 사람이 되었다. 눈물이 흐르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돌아와서 생각했다. 그 동안 저 멀리 다른 곳에 던져져 있던 행복을 말이다. 참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 뒀다.

예전에 상담사랑 얘기했던 이야기가 우울증 환자들이 겪는 힘든 일 중에 하나가 우울이 끝나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 당장 우울에서 벗어나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도 바뀌는 건 없다고. 그냥 내일의 태양이 뜨고 똑같이 학교를 가고, 출근을 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누가 우울증 끝났다고 케이크를 사주는 일도, 세상이 축하해 주지도 않는다.

내가 우울해도 세상은 멈추지 않고 너무 잘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