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야
나의 머릿속은 항상 나에 대한 압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돈을 그렇게 쓰고 싶니'
'너 어제 샀잖아'
'그만 먹어' 등..
(비속어는 제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목요일인가 나의 공황이 또 찾아왔다.
처음엔 직장에서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 기대에 충족해야 한다는 부담인가 보다고 믿었다.
하지만 공황이 계속될수록 이 일 하나가 이렇게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또다시 나는 부모 앞에 섰다.
부모에게 잘 보여야..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아야 욕을 먹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나를 점차 옥죄고 있었다.
나의 청소년부터 20대 초반까지,
부모는 무수히 많이
나의 친형제를 욕했다.
나의 형제는 꽤나 성격이 불같았고 부모가 자신에 대한 욕을 눈앞에서 한다면 분명 받아칠 게 뻔했다.
(당연한 거지만 말이다.)
그런 형제의 성격을 고려하여 나의 부모는 그의 뒤에서 욕을 했다.
그 뒤에는 내가 있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있는 공간에서 부모는 나의 또 다른 형제 험담을 했다.
수위 높게.
거진 10년 동안.
나는 내 형제의 욕을 들으면서 나도 공범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욕하는 것에 대해 나도 방임하고 있는 죄라고 믿었다.
시간이 좀 오래 지난 후에 부모에게 내 앞에서 그를 욕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해야 했다.
사과는 듣지 못했다.
그런 부탁을 하고 나서도 나는 내가 폭력을 당했다고 못 느꼈다.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부모가 그간 그를 욕했던 걸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그가 얘기했다.
'그럼 결국 네가 그 심한 말들을 들은 거잖아.'
사실이었다.
그제야 나는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 일을 한참이나 잊고 지냈다.
나는 내 형제를 뒷담 화한 부모에 대한 원망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부모가 형제의 험담을 한 것에 대한 영향도 없다고 믿고 지내왔다.
최근에 부모가 나의 형제를 뒷담 화한 것처럼 내가 그 심한 말들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원망보다는 아차 싶었다.
물론 현재 나는 너무 어리고 그렇기에 청소년기가 지난 지 10년이 지났다고 해도
여전히 내 인생의 절반을 차지한다. 따라서 그 기간의 영향은 아직은 나에게 크다.
나의 친한 친구가 끊임없이 하던 말 중에 하나가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이다.
나는 부모의 폭력적인 환경에 항상 놓여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폭력은 학습된다 하지 않던가.
부모의 험담을 열심히 배워 나는 나에게 쓰고 있었다.
부모가 험담을 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 나는 같이 듣는다.
> 부모의 심기를 거스르면 나도 저렇게 욕을 먹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 스스로를 먼저 욕해 내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고 미리 스스로를 혼낸다.
마치 주사 맞을 부분을 때리는 것처럼 (몰론 이는 혈관을 더 잘 보이기 위해 하는 행동 같지만 말이다.)
그렇게 남은 건 나를 가시나무틀 같은 곳에 넣으며 계속해서 압박하는 것이다.
그 강박은 나를 피나게 하고 터지게 했다.
터지면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터지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변했을지 오히려 더 두렵기도 하다.
예전에 내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압박을 한 상담사 분께 말씀드린 적 있다.
그분이 그랬다.
'혹시 그런 마음의 소리는 ㅇㅇ씨의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내 안의 얘기인데 당연히 내 생각이라고 믿었다.
이제는 그 상담사분의 말이 이해가 간다.
내 목소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