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님은 오지 않으니까
진짜 내가 두려워하던 게 나였을까.
근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을까.
자기 자신이 두려운 사람이 있을까.
나의 공포는 어두운 방에 길게 드리운 문의 그림자처럼
점점 길어지는 외부에 존재하는 두려움이 나를 찔러댔던 게 아닐까.
그 그림자를 피해 나는 안으로 들어가고 곪았던 게 아닐까.
내가 무서워했던 게 부모뿐이었을까.
형제를 뒷담 화하는 부모
부모를 뒷담 화하는 형제
서로가 싫은 가족들
두려웠던 건 사람들의 평가일까
살찐 나를 평가하는 눈들
서로를 평가하는 가족들
그게 참 갑갑하고 무서웠는데
왜 나는 그걸 내 안으로 들고 왔을까.
나를 평가하기 시작했을까.
아 맞다 대비, 준비, 방어였지.
왜 나는 살기 위한 생존 수단이 그거밖에 없었을까.
착해서.
남에게 상처 못 주니까 나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20대 후반까지의 내 삶은 미래가 없이 지금 당장의 생존이 급했다.
그리고 그 삶은 안에서 곪은 나를 밖으로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내 탓을 하는 건 자기 방어였고 습관이기도 했다.
사실 편했다.
싫고 불편했음 진작 바꿨을 것이다.
계속 뭔가 이상한데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눈을 가리면 평화가 온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평화가 오면, 집안에 평화가 오면 나는 다시 상처받을 일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가족의 평화가 깨지는 게 무서웠을까. 아님 평화가 깨지는 게 내 탓일'까봐' 무서웠을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 소중한 것들이 나로 인해 사라질까 봐 무서웠었나.. 나의 신념, 나의 소중한 것들이 내가 책임지고 지키면 가정은 무너지지 않고 나는 영원히 그 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어야 살 수 있었다. 희망은 나의 내일을 만들고 나를 살게 했다. 항상 생각했다. 집의 지붕이 무너지는 데 그 안에 있는 사람 중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쪽벽에 금이 가는데 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
나는 보호받지 못했다는 내 과거가 싫었다. 불완전한 인간 같았다. 결함이 있는 인간, 마치 부품 조각이 하나 없어서 출고도 되지 못하는 상태의 장난감. 아이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장난감. 꼭 그거 같았다. 지금은, 나든 부모든 누가 불완전하든 상관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해피엔딩이 아니라 그 잘잘못을 따져서 이제 와서 무얼 하나 라는 기분이다. 보호받지 못한 채 자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 채워지지 않을 결핍이니까 이제와서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또한 과거의 상처를 한마디로 축약해 버리는 게 싫었다. 그렇게 길게 고통받았는데 말이다. 현재는 뭐랄까... 억울한 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굳이 그걸 내 정체성으로 까지 가져오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과거의 상처는 이제 내 인생에 한 페이지면 이젠 충분하다.
그리고 이제 난 더 이상 고장 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계속 고장 난 척하면서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지금까지는 고장 난 부분을 메우는 게 사랑이라 믿었는데.... 나의 결핍을 채우면 그게 사랑이라 믿었다. 결핍은 또한 인간관계를 여는 통로 역할을 했다. 결핍이 있어야 서로 붙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구원자가 되어야만 관계가 형성되는 줄 알았다. 아마 나 자신과의 관계도 그랬다. 나는 결핍이 있고 그걸 내가 끊임없이 해결해 주는 그런 관계. 그런 관계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현재는 나를 굳이 막 사랑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나의 존재를 오롯이 인정하면 하는 게 나의 일 순위인 거 같다. 사실 알고 있다. 어딘 가에서는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누구한테 정답을 구하지 않고 나 스스로에게서 답을 구해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