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그대도 괜찮지 않은가

by 비누방울

'비정상도 정상입니다'를 우울하지 않다는 이유로 끝냈지만 그래도 우울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매일 오던 공황은 사라졌고 극심한 불면의 밤들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비정상도 정상입니다에서 여러 번 언급하고 썼지만 나는 부모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어떤 가정보다 평균이상으로 화목하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들과 더 이상 싸우고 해결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사이좋게 지낸다. 그들을 사랑하고 말고 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렸을 때는 나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을 하는 엄마와 그 모든 것을 방임하는 아빠가 너무 싫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뀌길 염원하여 매일 소리치고 울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울며 소리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바뀌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는다. 또한 엄마는 더 이상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지 않으며 아빠는 조금 더 유해졌다.


자취생활을 할 때 틈만 나면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하고 그게 아니어도 전화하고 그냥 전화받고 울고 하는 등 난리를 쳤다. 그리고 본가로 다시 돌아와서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집과 부모는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그걸 알아차린 건 어느 밤이었다. 분명 내 침대에 누워있고 옆에 안방에는 부모가 자고 있는데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나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안방에서 자고 있는 엄마를 깨워 안겨 울고 싶은 가? 나의 대답은 아니었다. 모든 걸 품어 주고 항상 날 기다려주는 희생적인 엄마는 나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엄마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하지만 진짜 위험한 순간에는 항상 당신이 제일 먼저일만큼 연약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항상 진짜 내 곁에 있는 엄마가 아닌 상상 속에서 엄마를 찾아 헤맸다. 웃기기도 하다. 똑같은 겉모습의 엄마를 머릿속에서 찾아 헤매지만 정작 진짜 내 옆에 엄마에게는 관심이 없다.


내가 엄마에게 완벽함을 바랐던 건 맞는 것 같다. 희생적이고 날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강한 엄마를 바라왔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가 강할 순 없다. 특히 나의 엄마는 더더욱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의 엄마는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대로 멈추고 오직 자신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엄마의 생각에 자식은 없다. 예를 들면 과거에 엄마가 암에 걸려 수술할 때였다. 엄마는 21살의 내가 아주 예쁘게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자신에게 붙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엄마에게는 내가 버팀목이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내가 21살의 어린아이인 건 잊으셨다. 그 맘 때쯤 형제의 우울증도 심해졌다. 한 번은 새벽에 그가 고층인 우리 집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다짐한 날이었다. 그는 그 마른 몸으로 거실 베란다 창가에 앉아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동생인 내가 걸려서 다시 내려와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나는 새벽에 화장실 가다가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그려려니 보다 했을 텐데 그날따라 나도 나의 형제 옆에 앉았다. 그는 많은 얘기를 하며 자신은 죄인이기에 죽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우리의 이야기 소리에 나온 엄마는 그저 옆에서 같이 울며 그에게 네가 왜 죄인이야라며 달랬다. 그렇게 그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저녁에 나는 아빠에게 그의 자살시도 소식을 얘기했다. 아빠는 알겠다고 답했다.

또 한 번은 밖에서 놀다 집에 온 그의 기분이 너무 안 좋았는지 방에서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들어올 때부터 소리치던 그의 모습에 놀란 엄마는 그의 방 문을 잡고 울고 있었다. 아빠는 마치 신경질 난다는 듯이 혹은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듯이 방에 들어갔다. 나는 거실 벽에 붙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무수히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어느 때도 ㅇㅇ아 괜찮니? 널 신경 못 써서 미안하다 너도 놀랬지 등의 나를 신경 쓰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나의 형제가 자살시도를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보호의 대상이 아닌 또 다른 버팀목일 뿐이었다.


한 번쯤은 그들에게 자신들보다 먼저 지켜줘야 할 아이였음 했다. 나는 이 생각을 항상 품고 지냈다. 언젠가는 혼자인 나에게 부모라는 백마 탄 왕자님이 다가오길. 언젠가는 그들이 위험한 순간에 자신들보다 나를 생각하길 바랐다. 동시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사람은 바뀌지 않기에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같이 품고 있었다.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최근 까지도 다식금 나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부모 즉 현실의 외로움에 치일 때는 그렇게 처절하게 울었다. 이 우주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듯한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켜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근데 문득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건강하고 나의 부모도 건강하고 재력도 있다면 걱정할 게 무엇일까. 심리적으로 부모가 없다는 게 그렇게 크게 힘들어할 지점인가. 분명 과거에는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현실에 지쳐서 인지 심리적으로 기댈 사람이 없어도 크게 상처가 되지 않는다. 예전에는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 때면 그렇게 자살충동이 높아졌다. 날 위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사실에 우울해하기엔 너무 할 게 많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기댈 곳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우울증으로 인한 폭식으로 살이 엄청 찌고 겨우 유지하던 직장은 포기하고 월 200도 안 되는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30대여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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