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세일즈 업무 1 - 뉴욕에서 부동산 중개 보조하기

by 버블림

(위 글을 먼저 읽으면 이해가 쉽습니다.)


New York Moves(앞으론 그냥 '무브스'라고 하겠다)에 소속된 이상, 세일즈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또 아무리 렌트 걱정이 없었다곤 하지만 무급으로 뉴욕에서 버틸 순 없었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세일즈를 뛰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지 기껏해야 반년이고 외국인 친구가 많지도 않아 영어가 아직 한참 부족한 내가 광고를 올리고 고객, 빌딩과 영어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계약까지 끌고가야 한다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사이먼이 자기가 도와줄테니까 천천히 해보자고 격려를 해줬고, 나도 영어 실력을 키운다는 생각으로 페이스북과 헤이코리안(미 동부 최대 한인 커뮤니티)에 광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광고와 응대


미국의 페이스북에는 우리나라에는 지원하지 않는 마켓플레이스(Marketplace)라는 기능이 있다. 페이스북의 중고나라다. 당근에서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듯 여기서도 부동산 매물의 광고를 올리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도 거의 5년만에 비활성화시켰던 페이스북 계정을 되살리고 New York Moves의 Real Estate Salesperson이라는 소속과 직책을 추가한 후 광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광고 자체는 사이먼이 준 템플릿으로 올리면 그만이다. 대신 어떤 건물의 어떤 매물을 올릴지가 관건인데, 매일매일 건물이 웹사이트에 올려주는 입주 가능한 집이 달라지고, 집의 크기나 채광, 층수, 뷰 등 조건에 따라서 가격도 서로 다르다. 따라서 수시로 건물들의 사이트에 들어가 가격이 적당한지, 가벽을 세우기에 적합한 구조인지, 또 앞서 말한 조건들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적인 매물인지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예전에 사진을 찍어놨던 매물인 경우 그 사진을 쓰고(무브스와 미생의 드라이브에 투어를 갔던 모든 아파트의 사진이 저장되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 가서 사진을 찍은 뒤에 광고를 템플릿에 맞춰서 알아서 느낌 있게 올리면 된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 매물의 특장점을 잘 강조하는 것이다.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는 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마스터룸만큼 넓은 플렉스 룸을 가지고 있는 방일수도, 혹은 집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옵션으로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 in-unit 세탁기/건조기는 뉴욕에서 엄청난 메리트이기 때문에 꼭 놓치지 말고 강조해야 한다.


이제 광고를 올리면 손님들로부터 메시지, 페이스북 메시지, 카카오톡, 메일 등 다양한 창구로 문의가 온다. 물론 이 중에서 실제로 투어까지 이어지는 건 5명 중 1명 정도이고, 계약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투어를 한 손님 20명 중 한두명이 될까 말까이기 때문에 설레발은 금지이다. 내가 세일즈 초반 문의 하나하나가 다 계약까지 이어질 것 같은 기대감에 손님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자했다가 깨달은 사실이다. 어쨌든 문의가 오면 알아보고 있는 지역, 예산, 직장이나 학교 등 간단한 정보를 주고받고 투어 스케줄을 정한다. 이 과정에서 뉴욕의 flexing 문화를 잘 모르거나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방인줄 모르는 등등 추가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열심히 설명해주면 되는데, 세일즈도 처음인 내가 이걸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답에 확신이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손님들 입장에서는 내가 못미더운게 당연했고, 못미더운 브로커와 집을 알아보는 것만큼 불안한 일도 없기에 세일즈 일에 익숙해지고 첫 딜(계약)을 성공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아마 한 달?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세일즈의 고충


세일즈를 하면서 느낀 건데, 마케팅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쉬운게 없었다. 특히나 이건 어쨌든 특별한 스킬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까 참 나름의 고충이 크고 나랑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많은 클라이언트들을 동시에 응대해야 한다는 영업이라는 일의 본질이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한다. 나도 나름대로 카페, 식당, 봉사활동, 심지어 군대까지 포함해서 손님이나 민원인을 대하는 일을 꽤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데, 부동산 세일즈는 언제든지 손님이 연락을 해 질문을 할 수 있고, 그때마다 나는 이 사람에게 맞는 집과 사진을 찾아야 했다. 빨리 대답해주지 않으면 도망갈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폰으로 오는 모든 연락에 예민해지다 보니 병행하고 있던 기획이나 마케팅 일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사이먼도 세일즈를 할 때는 다른 일 스탑하고 세일즈만 해야 된다고 말해주더라.


특히 열심히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니 너무 답답했다. 그동안 했던 일들은 어쨌든 가만히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드는 일이었다. 그것이 서비스든 콘텐츠든 논문이든 과제든. 그런데 이건 정말 핸드폰을 붙잡고 손님을 대하는 게 대부분인 일이고, 물심양면 열심히 해도 다른 마음에 드는 브로커나 매물을 찾아 도망가버리는 일이 일상이다 보니 작업이 결과와 기록으로 남고 항상 진전이 있었던 그동안의 일과 너무 달랐다.


또 다른 문제는 전화와 영어였다. 빌딩의 Leasing Office(임대사무소)에 직접 연락해 투어를 예약하고 입주 가능한 방들의 리스트를 물어봐야 했는데,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가끔 전화할 일이 있었다. 보통 메일 답장이 늦거나 우리가 급하게 문의를 해야할 때, 옆에서 지켜보는 사이먼이 늘 "그런건 그냥 전화해야 훨씬 빨라요"라며 전화로 직접 물어보라고 했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에선 전혀 없던 콜 포비아가 도져서 전화를 걸기 전에 속으로 인사말과 질문을 몇 번을 반복해서 되뇌었는지를 모른다. 다행히 하는 대화가 거기서 거기라서 금방 익숙해졌고, 이게 연습이 되어서 꼭 일이 아니더라도 식당 등 다른 곳에 영어로 전화해야 하는 상황이면 망설이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누를 정도는 되었다.


뉴욕은 넓고 좋은 집은 많다

하지만 재밌는 일도 많이 있었다. 우선 당연하게도 자연스럽게 뉴욕의 곳곳을 걷고 뛰면서 경험할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귀국할 때쯤 나는 웬만한 뉴요커만큼이나 뉴욕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서울에 7년째 살고 있으면서 서울에 대해 알게 된 정도보다 뉴욕에서의 6개월 거주와 세일즈로 알게 된 정도가 훨씬 크다. 좀 꼴불견이긴 하지만 이런 로컬 뉴요커 부심을 쌓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뉴욕 여행 가실 분은 연락주세요. 로컬 맛집 대기중)


그리고 무브스와 미생에서 주로 럭셔리한 대형 임대아파트를 중심으로 중개를 하다 보니 뉴욕의 좋은 건물들을 많이 들어가볼 수 있었다. 아파트 내 헬스장, 포켓볼, 수영장은 기본이었고 실내 농구코트와 스크린골프, 심지어는 볼링장까지 있는 경우도 봤다. 서울에도 당연히 있겠지만 대형 아파트단지보다는 고층의 레지던스 위주로 발달한 뉴욕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메니티를 갖춘 아파트들이 정말 많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퀸즈의 롱아일랜드시티(Long Island City)에 있는 빌딩들이다. 뉴욕의 송도같은 곳이라 대부분이 신축이고 거리가 대체적으로 맨해튼에 비해서 깨끗하다. 무엇보다 Hunters Point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는 방향의 유닛들은 정말 뉴욕시 최고의 뷰를 자랑한다. 맨해튼과 교통도 지하철로 5분 거리라서 루즈벨트 아일랜드 다음으로 살고 싶은 곳이었다.


img.jpg 투어할 때마다 감탄만 나왔던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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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파트들의 어메니티 사진들. 볼링장은 정말 부러웠지만 렌트가 좀 많이 비쌌다..


물론 이런 빌딩들을 구경하는 게 마냥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이런 곳에 살기 위해선 한 달에 얼마를 내야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뉴욕은 세금도 어마어마하게 떼는 것으로 아는데 어디서 그 돈들이 나오는지 참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건강한 마인드는 아니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일하다가 만난 유학생들의 부모님 직업이 궁금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또 아파트나 건물만 보면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이 건물의 월세는 얼마인지 확인하는 직업병도 생겼다. 그러다 보니 정말 세상 모든 게 다 숫자와 돈으로 보였고, 나도 모르게 돈에 점점 집착하게 되었다.


물론 난 내가 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당시 겪었던 감정과 힘든 마음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누군가에겐 내가 그런 존재일 수 있다는 걸 그때도 지금도 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로 내 삶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더 짜증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엔 속물적으로 변해가는 내가 너무 싫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매 끼니마다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싸게 먹으려고 아등바등 처절하게 살아가는데 누구는 월세 몇 백만원짜리 원베드룸 아파트에 혼자 사는걸 보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런 생각들이 들지 않는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제와서 말하는거지만 뉴욕 생활이 나에게 썩 즐거운 기억은 아니다! 교환때부터 시작해 돈을 아끼려고 매일같이 파스타를 해먹었는데, 일주일 내내 알리오올리오만 먹었을 땐 진짜 내가 뉴욕에 사는지 이탈리아에 사는건지 싶었다. 이때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알바를 구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 역시 한국이 최고야' 싶다가도,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찾느라 앨범을 다시 뒤지다보면 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애증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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