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획을 하면서 생기는 개발팀과의 불협화음이 처음엔 내가 일을 못해서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해보니 협업 방식과 과정 자체가 문제였다. 뭐 이것도 일을 못한다면 못한 거겠지만.. 우리의 작업 방식은 기획팀(나랑 사이먼)이 미국에서 일하면서 ‘아 이거 필요하겠다!’ 싶은 것들이 있으면 우리끼리 기획한 다음에 개발팀에 만들어주세요 하는 식이었는데, 당연히 기분도 나쁠뿐더러 개발팀 입장에서는 왜 만들어야 하는지 공감도 잘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또 당시 개발팀은 미생 외 외주 작업도 하고 있었다. 개발팀은 그래서 새로운 걸 만들어야겠다고 둘이서 결정하고 통보하지 말고 처음 기획회의를 할 때부터 같이 회의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일정을 조율해 나가면 좋겠다고 말해줬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서 나랑 사이먼은 뭐.. 할 말이 없었다.
문제는 사공이 많아지니 배가 산으로 갔다는 점. 사소한 것이라도 의견이 다르니 좁혀가는 과정에 시간이 너무 많이 소모되었다.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 미감 등 다양한 요소들이 모두 다르니 정답이 없는 문제였고, 사이먼의 푸쉬에 마지못해 결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밤새서 만든 디테일한 요소들에 반대의견이 나오니 당연히 이런 과정이 달갑진 않았다. 감정이 상한 건 전혀 아니지만 반복되는 ‘정답이 없는’ 논의에 조금 지쳤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객관적인 정답을 찾아 해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정답은 당연히 사용자에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회의를 할 때에도 세일즈를 뛰면서 들었던 고객의 경험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근거였다.
그래서 사용자 설문조사를 기획했다. 기획 작업뿐만 아니라 미생의 마케팅과 세일즈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집을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와 과거의 집 구하기 경험, 기숙사 생활의 만족도와 기숙사에 사는 이유, 집을 찾을 때 사용하는 서비스 등등.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사이먼이 말렸다. 우리가 학생회 행사에 참여해서 미생을 설명하고, 설문 QR을 보여주면서 그 자리에서 해달라고 부탁하는 방식이었어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으면 안 됐기 때문에.. 아무튼 사용자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수집되지 않으면 이렇게 작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획이 생각보다 할게 너무 많았다! 개발팀에서 늘 나와 사이먼에게 했던 말은 ‘큰 그림을 그려줘라’라는 말이었다. 작업하다가 새로운 게 치고 들어오지 않도록 제발 미리미리 꼼꼼하게 기획하고, 혹시나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빨리 공유해 달라는 얘기였다. 동시에 디자이너님은 나에게 ‘여기에 들어가는 주소 형식 좀 알려주세요’, ‘글자가 칸을 넘어갈 땐 어떻게 할까요?’, 등등 디테일한 질문들을 수없이 던져줬고, 그때마다 사이먼과 나는 급하게 회의해서 정해야 했다.
개발팀과 디자이너님을 탓하는게 아니다. 이 모든 건 나의 역량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고, 기획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 실제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선 기획에서 첫 단추를 얼마나 잘 끼우느냐가 매끄러운 협업과 훌륭한 프로덕트로 이어졌고, 이걸 깨달은 뒤로 나는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개발팀의 ‘큰 그림’과 디자이너의 디테일한 질문 모두 내가 꼼꼼하게 모든 사소한 부분들까지 캐치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평소에 나는 꽤나 꼼꼼한 사람이어서 이런 일이 이게 싫지는 않았다. 학회를 하면서 다같이 장표를 만들 때에도 내가 속도는 가장 느렸지만 검토할 때 가장 고칠 부분이 없기도 했다. 꼼꼼하고 풍성한 기획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뿌듯함도 느꼈다. 문제는 시간!! 속도가 생명인 스타트업인데, 기획에서부터 이렇게 속도가 늘어지니 전체 스케줄이 딜레이 되었다. 또 나 혼자 결정하기 애매한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결정할까? 이럴 때마다 유저에게 A/B 테스트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사이먼은 기획 작업을 나에게 일임하고 세일즈에 올인한 상황이었어서, 참 고독하고 힘든 프로덕트 디자인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