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적은 대로 초기에는 사이먼과 함께 마케팅 전략 및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열심히 논의하면서 세일즈 업무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슬슬 미생이라는 서비스와 팀에 적응이 되면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뜯어고쳐야겠다고 마음먹는데, 왜냐면 진짜 당시엔 어플이 너무 안 예뻤었고, 사이먼은 세일즈 뛰느라 바빠서 이걸 고칠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사이먼도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반영해 줬는데, 당시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유저의 시선에서 객관적인 피드백을 많이 던져줘서 그런 것 같다.
처음에는 고쳐야될 것 같은 디자인이나 시스템상의 오류들을 노션에 적어서 공유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뭐 사이먼은 당연히 공감했지만 내 제안엔 '어떻게 고쳐야 할까'가 빠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간단하게나마 ppt로 기획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무급으로 할 정도였으니 확실히 이땐 열정이 넘쳤다. 다음은 내가 맡은 몇 가지 작업들이다.
미생 어플의 가장 메인이 되는 사용자 여정(User Journey)은 집 또는 같이 들어갈 룸메이트가 필요한 사용자가 지도상에 뜬 매물의 숫자 버튼을 눌러 매물 사진을 확인하고, 사진이 마음에 들면 직접 보기 위해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어플에는 '집을 찾는 행위'와 '룸메이트를 찾는 행위'를 구분해 놓고 '렌트' 탭과 '룸메이트' 탭 두 개를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유저 입장에서 렌트와 룸메이트라는 두 버튼만 보고 뭐가 뭔지 이해도 되지 않았고, 둘 다 버튼을 클릭했을 때 지도가 뜨는 건 똑같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렌트는 룸메이트와 함께 거주할 경우 방 별로 가격이 달라지는 'price breakdown'이 표시되지 않은 원래의 가격이 표시되었고, 룸메이트는 나눠진 가격과 어떻게 방을 나눌 수 있는지 방의 레이아웃(평면도)상에서 표시가 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존의 일반 침실(Regular room/True room)과 가벽을 세워 만든 방(Flex room)끼리 100달러 차이가 나게 나누고, 화장실이 딸린 침실인 마스터룸(Master room)과 일반 침실은 150달러 차이가 나도록 가격을 나눴다. 그리고 레이아웃에서 마스터룸, 레귤러룸, 플렉스룸을 색깔로 표시해 줬다. 렌트는 건물 웹사이트에서 크롤링해 오면 되는데, 이건 그렇지 않았다. 사이먼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사이먼이 바빠서 이걸 못하니까 룸메이트 탭이 거의 죽어있다시피 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굳이 렌트와 룸메이트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룸메이트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이고, 마음에 드는 집을 먼저 찾은 후에 그 집에 같이 살 룸메이트를 구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이다. 즉 렌트 탐색 과정이 더 포괄적이다. 나는 이럴거면 그냥 렌트에서 매물을 눌렀을 때도 가벽을 세우고 룸메이트와 같이 살 수 있는 방일 경우 breakdown 된 가격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고, 그 즉시 사이먼에게 보여줄 기획서를 작성했다.
경영학회에서 장표 만들 때 했던 것처럼 제안 근거와 기대 효과를 적었고, 구체적인 로직과 예상되는 UI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작업에 선행되어야 하는 가격을 나누고 레이아웃에 방을 보여주는 price breakdown(나랑 사이먼은 이걸 '방 찢기'라고 불렀다) 노가다를 밤새 졸면서 100개 정도 해갔다. 사이먼도 원래 공감하고 있던 문제라서 당연히 내 생각에 동의해 줬고, 내 열정에 감동도 했었다 ㅋㅋ. 물론 개발팀의 다른 작업 때문에 바로 반영되진 않았지만 나와 사이먼의 숙원사업이었던 렌트&룸메이트 통합은 추후 미생 2.0 업데이트에 반영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작업은 본격적인 서비스 기획자 및 PM으로서 일을 시작했던 '건물 리뷰 페이지'의 업데이트 작업이었다. 사이먼은 이 리뷰를 활성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실제로 그 건물에서 살고 있다고 인증을 받은 사람들의 생생한 리뷰가 사용자의 탐색 과정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이것이 미생만의 특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뉴욕대 학생회와 연계해서 학생들이 지금 살고 있는 건물과 기숙사의 리뷰를 받으려고 계획했지만, 문제는 기존의 리뷰 기능에 문제가 좀 있었다. 과정이 너무 길고 복잡해서 유저가 이탈하기 십상이었고, UX 라이팅도 조금 어색했다. 우선 내놓은 mvp인 만큼 이런 디테일까지는 사이먼이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칭 디테일 광인 나는 리뷰를 받기 전에 좀 고쳐놔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플을 예쁘게 만들어두어야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프리랜서 디자이너분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기획)와 디자이너분이 함께 와이어프레임을 완성하면 이걸 바탕으로 개발팀에게 공유하는 프로세스가 자리잡기 시작했고, 나는 기획, 디자인, 개발팀의 모든 회의에 참여하며 스케줄과 소통을 조율하는 PM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맡았다. 내가 전부터 하고 싶던 '서비스 기획'을 드디어 현업자들과 함께 제대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의 일은 전에 사이먼에게 야매로 만들어서 보여준 기획 작업과는 차원이 다른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나 스스로도 이렇게 제대로 해보는게 처음이과 30대 개발, 디자이너 분들과 협업하고 소통하는 게 좀 쫄려서 처음에는 기가 많이 죽었었다. 다른 팀원분들이 날 무시하거나 하대한 것은 전혀 아닌데 어쨌든 내 기획안에 대해서 피드백을 줬고 나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체감하며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뭐 어쩌겠나! 다음 회의 때 이런 작업이 처음이라서 조금 버벅거릴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면 열심히 잘해보겠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고, 개발팀장님께 전에 일하면서 받았던 기획서 공유를 부탁드렸다.
이후에는 보내주신 기획서들을 많이 참고해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내가 봤을 땐 조금 올드한 스토리보드들이었지만 이런 근본을 익혀놔야 나중에 더 빠르게 작업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다. 전체적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았다.
기획 회의
디자이너 및 개발팀에 기획회의 내용 전달 후 디자이너님과 카톡으로 실시간으로 피드백 주고받으며 피그마로 와이어프레임 전달받음
PPT로 스토리보드를 제작하여 개발팀 회의 때 설명 및 공유. 문서 이력, 기능 개요, 플로우차트, 와이어프레임, 버튼별 상세 기능 및 필요 데이터 설명 포함
일부 공개하면 이렇다. 이외에도 2.0 업데이트 때 반영이 된 [방 저장하기], 프로모션에 필요했던 [추천인 입력], 세일즈 에이전트가 직접 미생 어플에 매물을 추천하는 [미생 추천 리스팅] 등 여러가지 신규 기능들을 자발적으로 혹은 사이먼의 요청으로 만들면서 기획자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