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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r 02. 2023

브런치 불파게티

양쌤의 another story 40

‘돌밥돌밥’에 지친 엄마는 늦잠 자고 일어난 아들에게 소리쳤다.

 “네가 밥 좀 해라.”

 속옷 차림에 까치집 짓고 나오던 아들은 흔쾌히 대답하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뭐 찾아?”

 “뭐 있나 보는 거야.”

 “채소는 감자, 양파, 당근, 호박, 파, 버섯, 파프리카. 있을 건 다 있어.”

 “그래?”

 할 줄 아는 거라곤 김치볶음밥밖에 없는 아들이 감자 칼을 찾아들고 불안하게 감자를 깎았다.

 “뭐 해 줄 건데?”

 “불파게티.”

 응? 짜파구리는 들어봤다만, 설마.

 “불닭이랑 짜파게티랑?”

 “응.”

 오빠가 웬일로 저러나 하던 딸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금? 이 아침에? 음, 난 시리얼 먹을래.”

 “난 먹을래. 불파게티 좋아.”

 

 엄마는 텅 빈 위장이 뒤집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꼭 먹어야겠단 각오를 다졌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아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겠느냐 말이지. 먹을 수 있다마다.     

 기름에 채소를 볶는 소리는 경쾌하고 냄새도 그럴싸했다. 한우 채끝살이 없으면 어떤가? 요리 경력이 하찮으면 어떤가? 엄마 눈엔 그저 사랑스런 아들의 뒤태만 보일 뿐.

 정오를 향해 가는 늦은 아침. 엄마는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길 수 있을까?      

 

 불파게티가 하얀 그라탕기에 얌전히 올라앉았다.

 ‘있는 건 다 털어 넣었군. 요놈을 먼저…’

 큼직한 감자를 깨무는 순간, 앗! 감자에 이가 박혔다. 양파와 당근도 감자 못지않게 쌩쌩한 식감이 아주 기가 막혔다. 면은 유·수분 부족의 형상을 한 채 탱탱함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었다.

 딸은 오빠의 성의를 봐서 한 젓가락 맛을 봤고, 아들은 본인이 저지른 요리에 무책임하게 면발만 골라 먹었다. 엄마는 채소가 아까워 파프리카와 당근은 어떻게든 먹고, 감자랑 양파는 전날 저녁에 먹고 남은 된장찌개에 넣고 끓였다.      

 

 때는 2020년의 봄, 코비드 19로 삼식이가 되어버린 다 큰 남매의 밥상을 차리는 것은 예상치 못한 시련이었다. 아침 먹기 무섭게 점심 메뉴를 물어보는 애들 때문에 아무리 허접한 밥상이라도 매일 메뉴를 고민해야 했다. 인터넷 검색도 열심히 하고 더 자주 장을 보러 갔다. 그 바람에 쪼그라들던 엄마의 존재감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별 반찬 없는 엄마의 밥상조차 헌신적인 사랑의 상징이 되었고, 백수 엄마의 확실한 무기가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매운 짜장 라면 하나 먹는데 냄비에 궁중팬에 주걱, 도마, 칼, 면기, 앞접시, 젓가락, 포크, 그라탕기까지 설거지가 산더미였지요. 가스레인지 주위에는 시커먼 소스와 기름이 여기저기 튀었고요.

  네. 아들이 먹고 튀었습니다.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거지요.

  앞으로는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아.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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